한인들이 주로 영위하는 시드니의 청소업 사회,문화,교육

호주의 한인사회에는 청소를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꽤나 많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하였다. 남들이 꺼려하는 청소를 한다고 해서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세계가 그리 건강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사회가 적절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적절한 사회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호주에서 청소는 적절한 수익이 보장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미 너무 과도한 경쟁으로 인하여 매우 낮은 임금에 고생만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 나라의 법이 정한 시간당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고생만 많이 하는 일이 되었다. 특별히 시드니의 청소일은 이제 그리 수지맞는 일이 아니다.


과거 호주의 한인들에게 청소는 힘들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물론 누구나 꺼려하는 일이어서 그만큼 구하기 쉬운 일이었고, 적절한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점차 많은 한인들이 청소에 종사하였고, 나름 그 분야에서 부를 축적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많은 한인들이 유입되면서 마땅히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면 모두 청소에 종사하게 되고, 점차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경쟁이 시작되면 점차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어떤 일이나 과도한 경쟁의 국면에 들어가면 법적 규제를 넘나드는 무리를 하는 일이 생긴다.


물론 과당경쟁이 아니라도 이미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탈법행위들이 있었을 법 하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나머지를 자신이 갖는 일에 누가 뭐라고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에도 한참 모자라는 돈을 지급하는 일이 관행처럼 퍼진다. 또 처음 Contract를 채결할 때 4시간짜리였던 일을 3시간으로 줄여서 Pay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하는 일도 점점 늘어난다. 무리하게 뛰어들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악조건에서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간단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학비자로 와서 학비에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조금이나마 가계에 부담을 덜 주려는 동기에서 악조건이라도 받아들여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 절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인건비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것도 그렇게 해서 겨우 생활을 꾸려가는 경우라면 모르겠으나 상당한 수준의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경우라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나라의 법률이 정한 기준에도 미달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생활고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고 누리려 한다면 누구라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무슨 일이든 금도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청소를 업으로 하는 이른 바 업계의 금도도 최소한 이 나라가 정한 법률의 테두리쯤이 되어야한다. 거기에 미달하는 방식의 욕심은 금도를 넘은 것으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물론 변명의 여지가 있다. 첫째, 그렇게 나쁜 조건을 제시해도 와서 일할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변명할 수 있다. 둘째,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경쟁이 심해져서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그럴싸하다. 또 Full time job이 아닐 경우 최저시급을 지킬 의무가 없다며 정당성을 주장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변명들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보통은 그렇게 법의 테두리를 넘나들어야 되는 일이라면 그 일에 뛰어들지 말아야 옳다. 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자신을 합리화하는 일은 더욱 인간적이지 못한 처사이다. 경쟁이 심화된 것도 이미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금도를 넘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비판도 들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종종 한국기업들이 외국의 입찰현장에서 경쟁하는 일화들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의 기업들은 담합을 하거나 서로 돕지만 한국의 기업들은 죽자 사자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관계에 그리 합치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기업들이라고 애국심을 발휘해서 자국기업들과의 경쟁을 회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합리한 일이다.


경쟁을 하되 금도를 넘어 법의 경계를 넘나들지 않는다는 것을 외부에서 한국기업의 눈으로 바라볼 때 마치 담합을 하거나 자국기업 간의 경쟁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이 자국기업들과의 경쟁에 나서서도 금도를 넘어 과도한 경쟁을 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과거 우리기업들이 매우 낮은 금액으로 입찰에 나서서 외국기업들을 이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을 언론이 대서특필하거나 칭찬하곤 했었다.


그 때마다 업계에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들은 보란 듯이 이윤을 남기곤 하였다. 그 비결은 바로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Know-how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도급자들에게 출혈납품을 강요할 수 있는 먹이사슬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정치권력과의 결탁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의 재벌기업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며 달려온 우리의 기업들이 지금까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잘나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뭔가 부당한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기고 나면 곧 바로 누군가 더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공격하기 마련이다. 그 동안 그러한 경쟁력을 믿고 연구개발에 투지하지 않았다면 시장에서의 퇴출을 피할 수 없다.


누구도 금도를 넘어서 이기려 한다면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이기고 난 후 과연 계속 방어를 해야 하고 방어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금도를 넘는 일이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일부를 제외하고 한국의 재벌들이 처한 문제점이 그렇고, 시드니의 한인사회에서 청소 업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넘어버린 금도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서로 너무나 각박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모두 자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악착같이 먹고사는 일이라면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말고 박수를 쳐줘야 한다.


하지만 너도나도 뛰어들어 밥벌이를 하다 보니 경쟁이 생겨나고 그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의 경계선을 넘는다면 그 선에서부터 부당한 일이다. 또 처지가 곤궁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일을 한다면 인륜에도 반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정당하게 일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일에 뛰어들어서 경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다들 어려운 처지의 교민사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은 모두에게 득 될 것이 없다. 때로는 정당한 방법을 벗어나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도 서로를 살리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대다수가 최대한 정당한 방법으로 사업을 영위하려고 노력하고, 금도를 넘지 않았을 것이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일부의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법을 어기는 일이 생기고, 그 것이 부메랑처럼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사연많고 비싼 나의 호주운전면허증 my stories

필자는 한국에서 15년 이상을 사고는 물론이고 벌점도 없이 운전하다 이민을 왔다. 물론 이민생활에 있어서는 초보자이다. 지난 5월 28일 아침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후 이제 막 정착하려고 노력하는 새내기일 뿐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운전면허증을 가지고 3개월은 합법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권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사진이 들어간 신분증이 없어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라도 면허시험에 실패하면 Learner's License를 받아야 하기에 상당히 위험부담이 있는 결정이었다.

 

한국처럼 운전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운전을 했다는 점에 기대어 용감하게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호주의 운전면허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Knowledge Test부터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인터넷으로 연습을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첫 12문제에서는 좀 틀려도 문제가 없지만 후반부의 30문제 중에서는 2문제만 틀리면 무조건 탈락이다.

 

RTA에 찾아가서 접수를 하고 Knowledge Test에 응시했다. 중간에 입력실수를 해서 긴장했지만 더 이상의 실수는 없었고 겨우겨우 합격했다. 곧 바로 Learner's License를 받을 것인지 Driving Test 접수를 할 것인지 묻는다. 물론 바로 접수를 했다. 3주 후에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곧 바로 지인을 통해 운전 교습하는 분과 연락해서 연습을 해 두었다. 시험당일 또 다시 연습을 하고 시험에 응했다. 엄청난 긴장이 엄습함을 느꼈다. 만일 떨어지고 나면 아이들 Pick-up도 할 수가 없다. 2KM나 되는 거리를 아이들이 걸어서 다녀야 하고 쇼핑도 다닐 수 없다. 반드시 합격하지 않으면 안 될 나름의 절박성이 있었다. 한국에서 면허시험을 볼 때처럼 '떨어지면 다시 보면 된다.'는 느긋함은 아예 없었다.

 

과도하게 긴장한 결과 몇 가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점수는 94/103이었으니 합격선인 90점이 넘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사소한 실수가 결국 Fail Item이어서 불합격하고 말았다. 결국 Learner's License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캄캄하고 암담했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새로 다니기 시작한 TATE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새로 시작한 Part Time Job을 시작하자마자 그만둘 수도 없었다. 매일 온 식구가 상당한 거리를 걸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모두 지치고 힘들었다.

 

그나마 걸어서라도 다닐 수 있는 거리에 City Rail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일요일에 교회 가는 문제는 대책이 없었다. Rail road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불순한 마음을 먹었다. 거대한(?) 불법행위를 저지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게다가 아직은 도착한 지 3개월이 안돼서 국제면허증을 제시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안일한 생각이 결국 화를 부르고 말았다.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연히 Round About에서 경찰차를 마주하고 말았다. 우회전을 하니 경찰차가 내 뒤를 쫓아온다. 우회전 깜빡이를 켰는데 동그랗게 회전하는 동안 꺼져 버렸고 경찰이 보는 순간에는 신호 없이 우회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반사항에 대해서 처분을 받을 각오는 했다.

 

그러나 국제면허증을 제시하니 그 것을 가지고 다시 면허내용을 조회해 보는 것이 아닌가? 결국 Instructor없이 운전한 것과 L자 표시를 붙이지 않은 것, 그리고 우회전 깜빡이를 켜지 않은 것까지 합해서 무려 985불에 달하는 거액을 물어야 했다. 그 날 이후로 한동안 운전석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지만 그저 분하고 억울할 뿐 이었다.

 

그 일이 있은 몇 주후에 나는 다시 Driving Test에 응시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예정된 8월 25일 드디어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다. 사연 많고 비싼 면허증을 손에 쥐고 느꼈던 그 회한의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5월 28일에 도착해서 채 3개월이 안 되는 8월 25일에 면허를 취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정에서 이미 너무 많은 출혈을 한 셈이다.

 

만일 내가 면허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면 나는 합법적으로 8월 27일까지는 운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괜히 응시해서 화를 자초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 나라의 면허관련 법 규정에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합법이었을 행위가 뭔가를 시도하다 실수를 하니 곧 바로 불법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Learner's License를 가지고 혼자서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운전한 나 스스로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거액의 벌금을 지체 없이 곧 바로 납부하였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불이익을 가져오도록 만드는 법 제도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뭔가 시도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불리하다는 것은 동기나 유인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 것이 특히 바람직한 일이라면 확실히 그런 제도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일부국가 출신들은 곧장 자국의 면허증을 인정받고 있는 점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물론 각 국가와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이 나라가 정한 주체적 제도나 규정을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고치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운전면허의 취득이 쉬운 것으로 알려진 나라의 면허는 인정하면서 한국처럼 나름 까다로운 면허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 데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호주라는 나라에게 제 4대 교역상대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게 한국은 매우 중요한 상대국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한국이 필수적 자원을 많이 수입하는 것이기에 교역의 필요성은 한국이 더 많이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이 엄청난 교역량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걸 맞는 상대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이런 일이 단지 운전면허 문제에만 국한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과연 이 나라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또 양국 간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자유무역협정이나 지리적 거리등 특수한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형평성의 문제는 남는다. 교민사회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여기서 좀 더 노력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노력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필자의 경우처럼 어리석은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의 위상을 깎아내릴 뿐이다. 이 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법제도를 최대한 정확히 알고 준수하면서 문제가 있다면 그 것에 대하여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고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종종 인기 없는 이 나라의 야당 당수가 한국의 대통령과 비교되는 것을 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과연 우리는 이 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가 아닐까 싶다.

            

 

 

 


호주의 교육이 한국과 다른 점은? 사회,문화,교육

겨우 58%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사회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있다. 호주의 학생들 중 12학년까지 마치는 비율이 겨우 58%라는 것이다. 물론 각 주별로 편차도 꽤 큰 편이다. Tasmania는 37%, ACT는 82%, NSW는 51%, Queensland와 South Australia는 59%, 그리고 Victoria는 57%이다.

신기한 일이다. 교육체계가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다는 호주에서 이렇게 12학년을 마치는 비율이 낮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각 주마다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그렇다. 호주의 수도가 있는 ACT의 경우 예외적으로 높은 편이고, Tasmania의 경우 극단적으로 낮다.

이민자들의 경우 12학년까지 마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임을 감안할 때 실제로 본래의 호주사람들은 훨씬 더 낮은 비율만이 12학년을 마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12학년을 마친 사람들이 모두 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진학률을 이보다 훨씬 낮은 비율이 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추론해보자. 첫째 이유는 아마도 대학을 나오는 것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유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0학년을 마치고 TAFE에서 기술을 배운 후 일을 하는 기술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큰 회사에 취직한 사람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할 유인이 적은 것이다.

둘째, 학생들이 공부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부모나 학교나 모두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한국, 중국, 인도에서 온 이민자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또 12학년까지 마치고 대학을 가도 특별히 유리할 것이 많지 않다는 점도 작용하였겠지만 부모나 학교의 선생님들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는데 상당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셋째, 12학년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아니라도 다른 진로를 계획하기에 용이한 교육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TAFE에서 기술을 익히고 산업현장에 나가서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후에 성인이 되어서라도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면 늦게라도 대학에 갈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할 필요는 별로 없어 보인다.

10학년만 마치면 언제든지 TAFE에서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있고, TAFE에서 공부를 마치면 대학진학도 가능하다. 참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있을 뿐 아니라 진로를 바꾸는 것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주라는 나라의 대학진학률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

반면 한국의 경우는 호주와 정반대이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호주로 말하면 12학년을 마치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다. 물론 대학이나 학과별로 철저히 서열화가 돼 있다.

전문대학이라도 12학년을 마치기 전에는 진학할 방법이 거의 없다. 아무리 공부하기 싫어도 모든 학생이 12학년을 마치도록 강요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늘 시험과 경쟁에 시달리며 한 명이라도 더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면 학창시절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느냐에 따라서 경제적 계급이 정해진다. 높은 수능점수로 상위권 대학의 상위권 학과를 나온 사람들에게는 높은 임금과 생활의 안정이 주어진다.

반면 공부를 하기 싫어서 좀 덜 하거나 공부가 아닌 다른 적성을 가진 사람은 그 만큼 저절로 불이익이 따른다.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 강도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의식까지 고통을 가중시킨다. 모든 것을 걸고 공부에 매달려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이겨야 할 유인이 무척 강한 것이다.

이미 그 것을 체득하여 알고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날마다 시간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희생을 무릅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옆자리에서 친하게 지내야할 친구가 항상 경쟁자로 인식되는 사회는 확실히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그렇게 각박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후 성인이 되어서도 끝없는 경쟁 속에 노출된다. 직장의 동료를 이기고 더 나은 승진기회를 얻어야 하고 더 좋은 보직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먼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마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교육열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겠으나 확실히 지금의 한국교육은 문제가 많다. 도무지 사람 사는 세상이라 말하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비단 이 문제가 교육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가 바로 학부모들의 가처분 소득을 자녀들의 사교육에 모두 쏟게 만들어 소비할 여력을 앗아 간다. 사교육비 부담은 또 낮은 출산율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인구구조가 기형화되어 가는 것은 곧 닥칠 미래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몇 명 안 되는 젊은이들이 수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곧 도래할 것이다.

사회구조를 바꿔야 해결될 문제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교육 과열의 문제나 낮은 출산율 문제를 무작정 국민의식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가 국민에게 그렇게 동기를 부여하고 있으면서 그 결과 나타난 것을 가지고 국민을 탓하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다. 풀기 어려운 일이라도 근원적인 처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낮은 임금과 멸시를 받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이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사무실에 앉아 편하고 안락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나 공공기관부터 채용의 관행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학력이 아니라 실력에 의해서 인재를 채용하고, 필요에 맞는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첩경이 될 것이다.

둘째, 사회적 요구에 맞는 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거나 잘할 수 있는 부문의 기술을 익혀서 그 방면의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한다. 경쟁하다 탈락한 사람만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흥미와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 배워서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교육재정을 더욱 확충하고 훌륭한 시설과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기술학교는 고등학년을 마쳐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학교만 졸업하고도 들어가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는 개인 간의 과도한 교육경쟁이 각자에게 유리할 것이 없는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가나 공공기관의 채용기준을 바꿔서 기술학교 출신을 우대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도 모두 대졸자를 채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에서 대졸자가 아닌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은 비정상

확실히 선진국에 비하여 한국의 교육열은 과도하다. 불과 58%만이 12학년을 마치는 호주에서도 한국인 이민자나 유학생들이 그 비율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또 이곳까지 와서도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서 사교육에 열을 올린다. Selective에 보내려고 초등학생들이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써가면서 과외를 한다.

이 나라가 공부를 많이 해서 사회에 진출한 경우보다 좋은 기술을 일찍부터 배워서 사회에 진출한 경우가 더 유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교육에 집착한다. 여기에는 냉철한 계산을 떠나 뭔가 사고의 방식이 따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실질을 숭상하기 보다는 폼 나는 허상을 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의 교육열은 과도할 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구석이 있다. 공부를 하고 싶거나 소질이 있는 학생은 공부를 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12년은 너무 과도한 시간의 낭비가 아닐까? 그 것을 좀 더 줄여서 꼭 필요한 것을 배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거라는 생각이다.

학생들은 옆자리의 친구를 이겨야할 경쟁상대가 아닌 친구로 대할 수 있고, 학부모는 아이들의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소질을 발견하고 개발하도록 돕는 사회가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급격한 노령화의 문제도 과도한 사교육비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가 건강하게 지속가능한 사회일 것이다. 죽어가는 휴머니즘도 그렇게 되면 다시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민선이 뭘 그리 잘못했다는 것일까? 사회,문화,교육

배우 김민선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로부터 피소를 당한 모양이다. 이 일에 대하여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매우 점잖은 말투로 피소된 여배우를 나무란다. 그에 대하여 배우 정진영이 나서서 반론을 한다. 또 변희재씨가 나서서 배우 정진영에게 잘 알지 못하면 함부러 나서지 말라고 했고, 다시 배우 박중훈은 자신이 정진영보다 지적수준이 더욱 낮다면서 지적수준이 안되면 자기의사표현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반박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청산가리만큼 위험한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면 그 업체의 대표는 고소하기가 좀 어려울 것이다. 만일 도축과정과 검역과정에 문제가 생겨나서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들어와서 식탁에 오른다면 청산가리만큼 위험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없는 쇠고기만 철저히 골라서 들여 온다면 전혀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 이쯤되면 이 글에 대한 수입업체 대표의 입장은 더욱 난감해질 것이다. 소송은 커녕 심지어 자기 편인지 반대편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 김민선이 한 발언은 명확히 허위사실이거나 아니면 정확히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정확한 사실이고 어떤 경우에는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축과정과 검역과정이 완벽히 작동한다 하더라도 그 것은 청산가리와 같이 위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면 전제조건과 결론이 모순이므로 허위사실이다. 아무리 어린 여배우라 하더라도 그렇게 완벽하게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가 얻을 커다란 이윤획득 기회를 박탈했다면 아마도 손해배상은 아니라도 공식사과 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김민선이 미국산 쇠고기를 청산가리에 비유한 것을 보고 그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회피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판단해 보건데 그 말로 인하여 먹으려 하다가 마음을 바꿨을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녀를 무척 좋아하는 팬이라면 혹시 그녀의 말을 금과옥조로 믿고 따랐을지 모르나 과연 그러한 사람들로 인하여 상실한 업체의 이윤이 수억원에 달할 수 있을까?  

차라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조건을 전면허용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보여준 앞뒤가 맞지않는 행태를 보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바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하여 신뢰가 가지 않아서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어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그럴 뜻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피소대상은 다름아닌 이명박 대통령과 농림부 장관 및 통상교섭 본부장이 돼야 할 것이다.

만일 그 녀의 발언이 허위사실이어서 업체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아마도 앞으로는 국어의 문법도 바꿔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또 그 과정에 과장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그런 비유법과 과장법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좀 더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경우와 상대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가 승소를 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비유법과 과장법을 극도로 조심하면 살아야 할 것이다.

전여옥 의원의 충고

전여옥 의원의 충고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업체를 편들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피소를 당하여 당혹스러운 어린 여배우를 진정으로 걱정하여 하는 충고일까? 아마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하여 촛불이 일어났고 그 것에 대한 반감을 이 일을 계기로 풀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집권여당의 국회의원 쯤 되는 사람이 곤란한 일을 당한 어린 여배우에게 그런 식의 충고를 하는 것은 거의 조롱으로 해석될 일이다. 나와 반대되는 입장에 서더니 참 안됐다. 그러게 입 좀 닫고 있지 그랬어? 이런 식의 조롱말이다.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과 같은 꼴이 아닌가? 아뿔싸! 비유법과 과장법을 함부러 쓰다가는 큰일 날 텐데 조심해야 겠다!

게다가 배우를 공인이라 규정하는 것은 합당한 일일까? 배우는 공공의 이익에 종사하기 위한 직업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서 영화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기를 얻으면 자연스럽게 여러사람에게 영향을 좀 끼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익을 추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공인딱지를 붙여서 입을 막으려 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설혹 공인이라 하더라도 사적인 영역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맞지 않을까? 아직도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라면 말이다.

변희재씨의 궤변

위의 이유에서 배우 정진영의 반론은 매우 상식적이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공인이라면 적어도 공익에 종사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처럼 공인인 사람이 또 어디에 있으랴? 정말 국회의원들은 함부러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변희재씨의 정진영에 대한 반박은 그 편 사람들에게는 매우 통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고 지적능력에 의문이 있는 사람들은 함부러 반론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니 얼마나 통쾌한 주장인가? 지적능력이 훌륭하면 좋은 일이다. 나쁠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본인의 지적 능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지적능력이 그리 높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이 나서서 함부러 반론을 제기하다니...또 지적능력이 높은 분에게 큰 불경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 아닐까? 아무래도 아주 똑똑한 사람들만 말을 하고 주장을 펴고 그래야 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인가?

우매한 지적능력으로 이해하기로는 민주주의란 누구나 동등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 것이 잘못된 상식일까? 지적 능력이 모자라서 시대의 변화를 잘 읽지 못하고 아직 민주주의 타령을 하고 있나? 지금 이시대는 그러한 과거의 상식과 많이 달라진 것일까?

나 또한 배우 박중훈 씨처럼 지적능력이 높지 못해서 이런저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변희재씨! 얼마나 공부하고 지적능력을 배양하면 당신처럼 말을 해도 상관이 없을까? 당신의 지적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좀 소상히 설명해 보시구려. 참 어려운 세상이 도래한 모양이군. 아무나 나서서 대통령을 **놈, *새끼라 하던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대통령도 아닌 그냥 쇠고기를 가지고도 말을 함부러 해서는 안되다니...시대변화에 적응하기가 어렵긴 어렵구만!

에이미트, 김민선, 전여옥, 정진영, 변희재, 박중훈...

평소에 그다지 영화를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김민선이라는 여배우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이름과 동시에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녀를 편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진영, 박중훈 모두 그리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니다. 하긴 따지고 보니 좋아하는 연예인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일에 관한한 나는 김민선과 정진영 그리고 박중훈의 편에 서고 싶다. 어쩐지 그 들의 지적수준이 나와 가까워 보여서이다. 자신이 왜 고발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여배우, 정치인 나리께서 점잖게 나무라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박하는 배우, 유명한 보수논객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헷갈려 하는배우가 훨씬 내 생각과 상식에 어울리는 듯하다.

정권이 바뀐지 이제 1년반 쯤 되어 가는데 여전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를 향수하는 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시는 사장님, 집권여당의 국회의원, 보수논객님 들의 사고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아니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이제 시대는 뭔가 지적능력이 훌륭한 사람들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혹시 이 글도 지적수준도 낮으면서 함부러 촐랑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그렇다고 뚫린 입을 어쩌란 말인가?

나의 가족사에 투영된 8.15 해방의 의미 역사,민족,평화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린 시절 나의 눈에 아버지는 무척이나 나약하고 무능하게 보였다.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어려운 형편에 늘 외지를 방랑하다 1년에 한번 집에 들를까 말까 했을 뿐 아니라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활동은 거의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가난에 찌든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드러누워 시름시름 앓더니 불과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그 때의 내 나이가 겨우 12살이었다. 아직 아버지를 여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리고 철이 없었다. 물론 그리 슬퍼하지도 않았으며 종종 가난을 물려주신 아버지를 원망하며 지냈다.

 

딱히 정해진 수입원이 없었던 터라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사무실의 급사로 취직을 해야만 했다. 친구들이 교복 입은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좌절감은 상당기간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아버지는 원망이 아닌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나와는 14년 터울인 누나에게 아버지의 과거에 대하여 들은 후로는 항상 짠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징용에 끌려갔다 8.15해방과 함께 돌아오셨다는 것이다. 또 돌아와서는 자신이 마치 조국에 죄라도 지은 양 부끄러워 고향의 일가친척을 모두 등지고 떠나왔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지가 당신의 과거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일은 본 일이 없다. 가슴에 상처와 한으로 남았을 과거사를 자식인 나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것이리라.

 

단발령과 창씨개명 거부 그리고 점점 기우는 가세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없던 외할아버지께서 데릴사위로 삼으셨다. 지역에서는 나름 존경받는 유학자(儒學者)이던 외할아버지는 꽤나 넉넉한 농토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농사일을 하던 머슴이 10여명이나 되었다니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아버지를 사위로 맞이할 즈음엔 이미 가세는 기울고 허명만 남은 상태였다.

 

외할아버지는 성격과 기질이 상당히 꼬장꼬장한 분이었던 모양이다. 단발령도 거부하고 창씨개명도 거부했으니 일제가 손봐야 할 주요대상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수탈은 이런 집에 더욱 가혹했을 법하다. 추수해서 곡식을 좀 숨겨놓기라도 하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내서 빼앗아가곤 했다는 것이다. 머슴들의 새경을 주고 가족들이 먹을 것도 변변히 남기기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일하던 머슴들 중에는 상머슴이 한명 있었다. 묘하게도 그 상머슴의 집안은 날로 풍족해지기만 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 집은 해방이 되고나자 이미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형편이 되어 있었다. 뚜렷한 근거는 없으나 우리 집 비밀곡간을 밀고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뭔가 옳지 않은 일을 한 대가로 부를 축적했다며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합리적이지 못한 의심인 것이다.

 

그렇게 몰락해가는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와서 아버지는 1947년 아들을 보게 되었다. 또 두해 지나서는 딸을 낳았다. 바로 나에게는 형이고 누나이다. 형은 1947년생이다. 그렇게 태어난 형은 열 살을 겨우 넘긴 나이에 남의 집 생활을 해야 했다. 형이 일하던 방앗간 집이 바로 외할아버지 집에서 상머슴 생활을 하던 그 분의 집이었다.

 

나는 그런 우리의 가족사를 모르고 자랐다. 그 방앗간 집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애기씨'이라 칭하고, 어머니는 그 분에게 항상 '아짐'이라 칭했지만 그 호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성장한 후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설명해주셨다. 바로 머슴살이 하던 집의 부인이나 집안 살림 해주는 분에게 '아짐'이라는 호칭을 하고, 주인댁의 딸에게 '애기씨'라 칭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집안의 누구도 그 집을 질시하거나 경원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집안과는 항상 친근한 관계로 지내왔으며 도움을 받은 일도 적지 않았다. 타인들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우리가족은 그 분들의 근면하고 성실한 생활에 근거하여 그 분들의 부가 정당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한과 가세가 이울어가는 그늘에는 어김없이 일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지가 징용에 다녀온 후로 가슴에 안고 살아가던 회한과 분노가 바로 일제로 인한 것 이었고, 외할아버지가 꽤나 넉넉한 가산을 모두 잃고 가난해진 것도 일제에 대한 비협조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전도된 역사와 가치관

 

우리집안에는 일제와의 항일전쟁에 나선 독립투사도 없고, 독립군을 지원하거나 국권 회복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깊은 좌절과 가난을 대물림해왔다.

 

하물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가족이 희생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어떨까? 가산을 모두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내놓은 분들은 또 어떨까? 후손들은 가난을 대물림하며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대로 기득권을 누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우리가 국권을 상실했던 기간, 바로 그런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삶이 고통으로 점철된 분들이 있었다. 바로 정신대 할머니들이다. 여전히 일본정부는 그 분들의 고통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하고 있다. 그 분들의 고통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일제의 만행과 우리의 나약했던 국력의 탓인 것이다. 그 분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희생을 당하고도 모든 고통을 스스로 지고 살아가도록 만든 국가와 우리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제는 그 잔혹했던 식민통치의 역사를 부인하고 하나씩 지워나가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종종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등장한다.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일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해방 후에도 사회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며 대물림하고 있다. 심지어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을 자랑스럽게 여길 뿐 아니라 조상들의 친일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려고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가 흘러가서는 안 된다. 또 다시 대한민국에 누란의 위기가 다가올 때를 상상해보자. 누가라도 나서서 자신을 희생하며 국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전도된 역사와 가치관을 학습하지 않았는가? 저항하면 대대로 가난과 고통을 물려받으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것과 순응하고 협력하면 수많은 기득권과 부를 누리고 세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의 과제

 

그래서 역사는 전도된 기록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독립투사는 독립투사로 기록되어야 한다. 친일파는 친일파로 기록되어야 한다. 독립운동은 명예로운 역사적 기록이어야 한다. 친일은 부끄러운 역사적 기록이어야 한다. 일제의 폭압에 희생당한 분들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따스하게 껴안고 보살펴야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내부에서조차 역사가 전도되어 흘러가고 있는데 일제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친일파의 후손들을 단죄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슨 연좌제를 부활하자는 것도 아니다. 또 그렇게 할 방법도 없다. 독립지사의 후손들에게 엄청난 금액의 경제적 보상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 또한 그리 가능하지도 않으며 합당하지도 않다. 조상은 조상이고, 후손은 후손일 뿐이다. 시급한 것은 역사를 바로 기록하는 일이다.

 

다시 우리가 누란의 위기를 맞았을 때 누구라도 나서서 우리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서 싸우는 것이 명예롭고 옳은 일임을 역사에 기록하는 일이다. 또 민족을 배신하고 반민족적 행위를 하는 것이 부끄럽고 해서는 안 될 일임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그래야 힘 있는 자에게는 굴종하고 불의와 타협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는 정의롭고 옳은 상식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것을 위해서 우리는 전도된 역사를 정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전도된 역사라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고통 속에서 평생을 신음하신 분들을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따스하게 보살펴 드려야 한다.

 

이제 64년째 되는 광복절을 맞아 우리가 서둘러야 할 일이다. 이런 일을 해내지 못하면 진정한 광복은 아직도 멀었다. 그래서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내 가족사를 이렇게 노출해가며 이번 광복절을 맞이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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