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한인사회에는 청소를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꽤나 많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하였다. 남들이 꺼려하는 청소를 한다고 해서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세계가 그리 건강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사회가 적절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적절한 사회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호주에서 청소는 적절한 수익이 보장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미 너무 과도한 경쟁으로 인하여 매우 낮은 임금에 고생만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 나라의 법이 정한 시간당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고생만 많이 하는 일이 되었다. 특별히 시드니의 청소일은 이제 그리 수지맞는 일이 아니다.
과거 호주의 한인들에게 청소는 힘들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물론 누구나 꺼려하는 일이어서 그만큼 구하기 쉬운 일이었고, 적절한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점차 많은 한인들이 청소에 종사하였고, 나름 그 분야에서 부를 축적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많은 한인들이 유입되면서 마땅히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면 모두 청소에 종사하게 되고, 점차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경쟁이 시작되면 점차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어떤 일이나 과도한 경쟁의 국면에 들어가면 법적 규제를 넘나드는 무리를 하는 일이 생긴다.
물론 과당경쟁이 아니라도 이미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탈법행위들이 있었을 법 하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나머지를 자신이 갖는 일에 누가 뭐라고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에도 한참 모자라는 돈을 지급하는 일이 관행처럼 퍼진다. 또 처음 Contract를 채결할 때 4시간짜리였던 일을 3시간으로 줄여서 Pay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하는 일도 점점 늘어난다. 무리하게 뛰어들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악조건에서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간단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학비자로 와서 학비에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조금이나마 가계에 부담을 덜 주려는 동기에서 악조건이라도 받아들여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 절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인건비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것도 그렇게 해서 겨우 생활을 꾸려가는 경우라면 모르겠으나 상당한 수준의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경우라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나라의 법률이 정한 기준에도 미달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생활고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고 누리려 한다면 누구라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무슨 일이든 금도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청소를 업으로 하는 이른 바 업계의 금도도 최소한 이 나라가 정한 법률의 테두리쯤이 되어야한다. 거기에 미달하는 방식의 욕심은 금도를 넘은 것으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물론 변명의 여지가 있다. 첫째, 그렇게 나쁜 조건을 제시해도 와서 일할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변명할 수 있다. 둘째,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경쟁이 심해져서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그럴싸하다. 또 Full time job이 아닐 경우 최저시급을 지킬 의무가 없다며 정당성을 주장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변명들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보통은 그렇게 법의 테두리를 넘나들어야 되는 일이라면 그 일에 뛰어들지 말아야 옳다. 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자신을 합리화하는 일은 더욱 인간적이지 못한 처사이다. 경쟁이 심화된 것도 이미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금도를 넘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비판도 들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종종 한국기업들이 외국의 입찰현장에서 경쟁하는 일화들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의 기업들은 담합을 하거나 서로 돕지만 한국의 기업들은 죽자 사자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관계에 그리 합치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기업들이라고 애국심을 발휘해서 자국기업들과의 경쟁을 회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합리한 일이다.
경쟁을 하되 금도를 넘어 법의 경계를 넘나들지 않는다는 것을 외부에서 한국기업의 눈으로 바라볼 때 마치 담합을 하거나 자국기업 간의 경쟁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이 자국기업들과의 경쟁에 나서서도 금도를 넘어 과도한 경쟁을 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과거 우리기업들이 매우 낮은 금액으로 입찰에 나서서 외국기업들을 이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을 언론이 대서특필하거나 칭찬하곤 했었다.
그 때마다 업계에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들은 보란 듯이 이윤을 남기곤 하였다. 그 비결은 바로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Know-how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도급자들에게 출혈납품을 강요할 수 있는 먹이사슬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정치권력과의 결탁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의 재벌기업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며 달려온 우리의 기업들이 지금까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잘나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뭔가 부당한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기고 나면 곧 바로 누군가 더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공격하기 마련이다. 그 동안 그러한 경쟁력을 믿고 연구개발에 투지하지 않았다면 시장에서의 퇴출을 피할 수 없다.
누구도 금도를 넘어서 이기려 한다면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이기고 난 후 과연 계속 방어를 해야 하고 방어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금도를 넘는 일이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일부를 제외하고 한국의 재벌들이 처한 문제점이 그렇고, 시드니의 한인사회에서 청소 업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넘어버린 금도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서로 너무나 각박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모두 자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악착같이 먹고사는 일이라면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말고 박수를 쳐줘야 한다.
하지만 너도나도 뛰어들어 밥벌이를 하다 보니 경쟁이 생겨나고 그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의 경계선을 넘는다면 그 선에서부터 부당한 일이다. 또 처지가 곤궁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일을 한다면 인륜에도 반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정당하게 일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일에 뛰어들어서 경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다들 어려운 처지의 교민사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은 모두에게 득 될 것이 없다. 때로는 정당한 방법을 벗어나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도 서로를 살리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대다수가 최대한 정당한 방법으로 사업을 영위하려고 노력하고, 금도를 넘지 않았을 것이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일부의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법을 어기는 일이 생기고, 그 것이 부메랑처럼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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