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교육이 한국과 다른 점은? 사회,문화,교육

겨우 58%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사회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있다. 호주의 학생들 중 12학년까지 마치는 비율이 겨우 58%라는 것이다. 물론 각 주별로 편차도 꽤 큰 편이다. Tasmania는 37%, ACT는 82%, NSW는 51%, Queensland와 South Australia는 59%, 그리고 Victoria는 57%이다.

신기한 일이다. 교육체계가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다는 호주에서 이렇게 12학년을 마치는 비율이 낮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각 주마다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그렇다. 호주의 수도가 있는 ACT의 경우 예외적으로 높은 편이고, Tasmania의 경우 극단적으로 낮다.

이민자들의 경우 12학년까지 마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임을 감안할 때 실제로 본래의 호주사람들은 훨씬 더 낮은 비율만이 12학년을 마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12학년을 마친 사람들이 모두 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진학률을 이보다 훨씬 낮은 비율이 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추론해보자. 첫째 이유는 아마도 대학을 나오는 것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유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0학년을 마치고 TAFE에서 기술을 배운 후 일을 하는 기술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큰 회사에 취직한 사람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할 유인이 적은 것이다.

둘째, 학생들이 공부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부모나 학교나 모두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한국, 중국, 인도에서 온 이민자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또 12학년까지 마치고 대학을 가도 특별히 유리할 것이 많지 않다는 점도 작용하였겠지만 부모나 학교의 선생님들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는데 상당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셋째, 12학년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아니라도 다른 진로를 계획하기에 용이한 교육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TAFE에서 기술을 익히고 산업현장에 나가서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후에 성인이 되어서라도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면 늦게라도 대학에 갈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할 필요는 별로 없어 보인다.

10학년만 마치면 언제든지 TAFE에서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있고, TAFE에서 공부를 마치면 대학진학도 가능하다. 참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있을 뿐 아니라 진로를 바꾸는 것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주라는 나라의 대학진학률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

반면 한국의 경우는 호주와 정반대이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호주로 말하면 12학년을 마치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다. 물론 대학이나 학과별로 철저히 서열화가 돼 있다.

전문대학이라도 12학년을 마치기 전에는 진학할 방법이 거의 없다. 아무리 공부하기 싫어도 모든 학생이 12학년을 마치도록 강요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늘 시험과 경쟁에 시달리며 한 명이라도 더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면 학창시절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느냐에 따라서 경제적 계급이 정해진다. 높은 수능점수로 상위권 대학의 상위권 학과를 나온 사람들에게는 높은 임금과 생활의 안정이 주어진다.

반면 공부를 하기 싫어서 좀 덜 하거나 공부가 아닌 다른 적성을 가진 사람은 그 만큼 저절로 불이익이 따른다.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 강도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의식까지 고통을 가중시킨다. 모든 것을 걸고 공부에 매달려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이겨야 할 유인이 무척 강한 것이다.

이미 그 것을 체득하여 알고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날마다 시간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희생을 무릅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옆자리에서 친하게 지내야할 친구가 항상 경쟁자로 인식되는 사회는 확실히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그렇게 각박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후 성인이 되어서도 끝없는 경쟁 속에 노출된다. 직장의 동료를 이기고 더 나은 승진기회를 얻어야 하고 더 좋은 보직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먼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마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교육열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겠으나 확실히 지금의 한국교육은 문제가 많다. 도무지 사람 사는 세상이라 말하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비단 이 문제가 교육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가 바로 학부모들의 가처분 소득을 자녀들의 사교육에 모두 쏟게 만들어 소비할 여력을 앗아 간다. 사교육비 부담은 또 낮은 출산율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인구구조가 기형화되어 가는 것은 곧 닥칠 미래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몇 명 안 되는 젊은이들이 수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곧 도래할 것이다.

사회구조를 바꿔야 해결될 문제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교육 과열의 문제나 낮은 출산율 문제를 무작정 국민의식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가 국민에게 그렇게 동기를 부여하고 있으면서 그 결과 나타난 것을 가지고 국민을 탓하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다. 풀기 어려운 일이라도 근원적인 처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낮은 임금과 멸시를 받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이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사무실에 앉아 편하고 안락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나 공공기관부터 채용의 관행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학력이 아니라 실력에 의해서 인재를 채용하고, 필요에 맞는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첩경이 될 것이다.

둘째, 사회적 요구에 맞는 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거나 잘할 수 있는 부문의 기술을 익혀서 그 방면의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한다. 경쟁하다 탈락한 사람만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흥미와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 배워서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교육재정을 더욱 확충하고 훌륭한 시설과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기술학교는 고등학년을 마쳐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학교만 졸업하고도 들어가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는 개인 간의 과도한 교육경쟁이 각자에게 유리할 것이 없는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가나 공공기관의 채용기준을 바꿔서 기술학교 출신을 우대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도 모두 대졸자를 채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에서 대졸자가 아닌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은 비정상

확실히 선진국에 비하여 한국의 교육열은 과도하다. 불과 58%만이 12학년을 마치는 호주에서도 한국인 이민자나 유학생들이 그 비율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또 이곳까지 와서도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서 사교육에 열을 올린다. Selective에 보내려고 초등학생들이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써가면서 과외를 한다.

이 나라가 공부를 많이 해서 사회에 진출한 경우보다 좋은 기술을 일찍부터 배워서 사회에 진출한 경우가 더 유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교육에 집착한다. 여기에는 냉철한 계산을 떠나 뭔가 사고의 방식이 따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실질을 숭상하기 보다는 폼 나는 허상을 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의 교육열은 과도할 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구석이 있다. 공부를 하고 싶거나 소질이 있는 학생은 공부를 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12년은 너무 과도한 시간의 낭비가 아닐까? 그 것을 좀 더 줄여서 꼭 필요한 것을 배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거라는 생각이다.

학생들은 옆자리의 친구를 이겨야할 경쟁상대가 아닌 친구로 대할 수 있고, 학부모는 아이들의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소질을 발견하고 개발하도록 돕는 사회가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급격한 노령화의 문제도 과도한 사교육비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가 건강하게 지속가능한 사회일 것이다. 죽어가는 휴머니즘도 그렇게 되면 다시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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