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7일 보따리를 싸들고 시드니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내와 이제 5학년인 딸아이 그리고 1학년짜리 아들 녀석까지 함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착잡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지만 이미 정해진 길이었으니 출발을 미룰 수는 없었다. 초보들의 이민생활은 그리 유쾌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셈이다.
시드니에 있는 지인이 미리 구해둔 민박집에 도착해서 보따리를 내려놓으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나는 왜 가족들을 내리고 이렇게 먼 남의 나라까지 왔을까? 가슴속에 회한이 일어날 정도였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 나라에 영어도 못하면서 정착할 수 있을 런지도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잘 적응해서 생활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할까? 도무지 걱정거리만 태산이었다. 게다가 겨울로 다가서는 이곳의 날씨는 왜 이렇게 추운지 예상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웠다.
사실 지난 11월 말경에 초기입국을 겸해서 2주간 시드니를 여행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것이 우리가족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 때 우리는 난생처음 대한민국의 국경을 벗어나는 경험을 했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잦은 시대에 촌스럽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여행하며 느끼던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 밤낮없이 울어대는 새들의 지저귐도 모두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친절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참 사람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살기 위해서 이곳에 오고 나니 전혀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초기정착을 위해 가져온 몇 푼 안 되는 돈을 예치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을 때 느릿느릿한 업무처리는 답답함 그 자체였다. 한국의 은행들이 순식간에 많은 업무를 처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PC방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며 또 놀랐다. 아니 한국보다 선진국인 호주의 인터넷이 이렇게 느릴 수가 있는가? 왜 훨씬 훌륭한 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 호주보다 후진국일까?
그런 느린 속도의 문제는 그나마 견딜만한 일이었다. 중고차를 하나 사려고 돌아다니며 구경하다보니 가격이 너무 비싸서 놀랐다. 한국에서는 거의 폐차할 정도의 연식에 운행거리도 상당한 차가 새 차와 별로 차이가 없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렌트할 집을 구하려고 집 구경을 다니면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별로 넓지도 않고 그리 깨끗하지도 못한 집들이 주당 500불에 육박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리해 보였다. 과거의 렌트 경력과 지불한 영수증을 요구하고 레퍼런스를 요구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한마디로 처음 온 사람으로서는 거대한 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언어장벽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내가 과연 정착하여 살아갈 수 있을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견딜 수 있었다. 여러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먹을 것은 물론 춥다고 이불과 난로를 갖다 주셨다. 식기들이며 생필품을 끊임없이 퍼다 나르기도 하였다. 자신의 바쁜 일을 차치하고 나를 돕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준 분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곳에서의 시작은 극심한 악몽이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특별히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여러 사람의 신세를 져가면서 중고차를 사서 등록하고, 집을 얻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전화와 인터넷을 연결하고, 한국에서 이삿짐을 받고, Tax File Number를 신청해서 받고, Medicare Card를 발급받고, Centre link에 등록하고, 짐을 정리하고, 가전제품도 좀 사고 하니 그나마 정착할 준비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하나하나가 많은 시간이 걸렸고 쉽게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운전면허도 따야하고, 생업도 찾아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를 익혀서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어야한다. 게다가 항상 비싼 렌트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아직 무슨 일도 시작하지 못한 처지여서 달랑달랑한 생활비 통장을 보며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마땅히 생활비를 충당할 방법을 찾기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멀쩡한(?) 직장에 다니며 그럭저럭 생활을 잘 꾸려갈 수 있었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직장을 쫓겨나지만 않으면 생활에 크게 문제가 없이 살아갈 수가 있었을 텐데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을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일까? 정말 아이들에게는 이민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남들과 달리 사교육 시키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키우고 교육할 길이 있지 않았을까? 이민생활에 대한 회의는 지금도 종종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을 해보며 애써 자위하며 산다. 만일 한국에서 내가 실직한 상태로 2개월째 놀고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생활의 피폐함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비는커녕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을지 모른다.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을 테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회사의 재무담당 임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훨씬 대우가 못한 직장을 얻으려 하더라도 잘 안 될 것이 뻔하다. 한국사회는 그런 면에서 경직성이 심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한국에 이민 온 외국인이라면 또 어떨까? 아마도 한국말을 잘 못하고는 살아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영어권 출신이라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라면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을 것이다. 과거에 비하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외국인에게 대단히 불편한 나라이다. 한국에 살면서 마주친 외국인들에게 나 자신도 그리 친절하거나 따스한 태도로 대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처우를 해서 분노를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렇게 보면 확실히 이 나라는 훌륭하다. 나처럼 별다른 대책도 없이 무모하게 이민을 온 사람에게도 Family Benefit 이라며 돈도 주고 이런저런 교육받을 기회도 준다. 아프면 치료도 해준다. 아이들의 교육비도 정부가 부담하지 않는가? 게다가 외국인이라고 심하게 차별하는 경험을 아직은 하지 못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특별히 이 나라가 부러운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장애인 학생 한명의 이동편의를 위해 정부재정으로 대대적인 공사를 해서 학교 내에 이동로를 만들어 준다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설계된 시설들이 바로 그것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매우 높은 세율로 세금을 부담하고 있으며,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래도 고소득층이 나서서 자신들이 손해를 본다며 항의하지 않는다.
문득 한국에서 장애인 학교나 고아원, 양로원은 물론 임대아파트만 지으려 해도 해당지역 주민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반대시위를 하던 일이 떠오른다. 자신들의 집값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약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그 무엇을 저지하고 나서는 일이 다반사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너무나 이기적인 동기로 공동체의 이익을 저해하는 것이다.
재산이 많거나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부담해서 약자들을 보호하자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곧장 좌파로 규정하고 심하면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런 방식으로 규정하자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모두 좌파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닐까? 좌파는 무조건 나쁜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상의 자유와 같은 것은 도무지 존중할 생각이 없는 사회이다.
선진국들에 비하여 경제적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조금씩 늘려가는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직업이나 신분에 대한 경직된 사고도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아마 생전가도 그런 꿈은 허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꿈이라도 그렇게 꾸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민인가보다. 여기까지 와서도 한국생각만 하고 있다. 이민 초보자여서일까? 호주에 대한 애정은 아직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이 나라의 약자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들이 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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