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는 국가보안법과 매카시 선풍 사회,문화,교육

 

국가보안법은 무서운 법이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노력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법에 의하여 처단되었다. 물론 북한의 지령에 의해 움직이는 간첩도 많이 잡았을 테지만 민주화 세력의 입을 막는 데 악용된 사례가 너무도 많았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법조항이 귀에 걸면 귀걸리요,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곤 하였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점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이 법은 금과옥조와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국가보안법이 있었기에 북한의 남침과 적화통일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보안법은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신성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수 많은 독소조항과 함께 권위주의 정권의 강력한 공안탄압의 무기가 돼 왔다. 첫번째 문제점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헌법에는 국민 누구나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설혹 그 것이 사회통념상 옳지 않은 것이라도 그러한 사상을 억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개인의 사상을 사실상 통제해왔다.

둘째, 죄형법정주의에 충실하지 못하다. 법에 의하여 처절받을 죄목은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돼야 한다. 또 그러한 범죄에 대한 처벌 또한 법이 최대한 엄격하게 정해둬야 마땅하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그렇지 못하다. 가장 쉬운 예로 찬양고무죄가 있다. 국가보안법이 반국가 단체로 정하고 있는 북한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고무하는 것을 범죄로 정하고 있다. 무엇이 찬양인지, 무엇이 고무하는 행위인지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현실성의 결여이다. 남북은 상대방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은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으면서도 대화의 상대가 되었다. 만일 국가보안법상 통신, 회합, 잠입, 탈출 등을 금지한 조항을 엄밀히 적용하면 처벌받아야할 대상은 부지기수이다.

박정희 정권의 지시로 북한을 방문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노태우 정권의 명으로 방문한 박철언 전 정관, 김일성이 죽기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한 김영삼 정권의 관계자, 고 정주영 회장, 박근혜 전대표, 김대중 전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모두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였다. 남북관계의 현실과 괴리가 심각한 법률이 아닐 수 없다.

넷째, 반인륜적 법률이다. 국가보안법은 불고지죄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만일 간첩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에 고발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조항이다. 자식을, 부모를, 친구를, 배우자를 스스로 고발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것은 반인륜적이다. 수사당국이 책임있게 수사하여 범죄행위를 밝히고 처벌해야 할 것인 데 그것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형사적 처벌까지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논란

우리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엄혹한 독재정권의 시절에도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냉전과 색깔론 공세로 인하여 국가보안법의 폐지논란은 큰 반향을 얻지 못하였다. 특별히 권위주의 정권들이 이어 내려오는 동안 폐지논란 자체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03년 본격적으로 논의가 일었다. 심지어 한나라당 조차 일부 독소조항을 개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의석 과반수를 점하고 있던 열린우리당과 소수당인 민주노동당은 적극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반대에 직면하여 본격적인 논의가 차단되었다. 심지어 상임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물리적으로 논의를 차단하기도 하였다.

결국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가진 세력이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폐지가 안된다면 일부 개정이라도 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의회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의회의 무능을 다시 한번 만방에 과시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때를 지나고 나서는 아무도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법률에 의하여 간첩죄 등을 처벌할 근거가 충분하다. 또 내란을 막고, 내란선동을 막을 법적 근거도 충분하다. 하지만 국제엠네스티도 권고한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물건너가고 말았다. 이제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의제로 논의조차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은 충분히 제기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법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는 계기는 마련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상 국가보안법이 대부분 사문화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살았으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폐지논란의 유일한 성과가 바로 이부분에 있다 할 것이다.

다시 살아나는 매카시와 국가보안법

정권이 바뀌고 점차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있다. 이미 절명하기 일보 직전인 국가보안법이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국민의 사상을 규율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있다.

원정화 간첩사건은 정황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나 국가보안법이 아닌 다른 형법상의 범죄구성 요건도 충족하고 있으니 시비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연세대 오세철 교수등 사회주의 노동자 그룹은 철저히 국가보안법 사범이다. 또 지금 압수수색을 당하고 구속을 당하는 민간통일운동 단체의 경우도 우려스럽다.

누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가 법에 의하여 심판되고, 누가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강조한 탓에 처벌을 피할 수 없는 분위기는 좀 묘하다. 이쯤되면 국가보안법은 완벽하게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동안 죽은 것이 아니라 숨죽이고 고개를 숙였을 뿐 여전히 무서운 예전의 위력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인터넷 상 만연하고 있는 좌파빨갱이론도 국가보안법의 부활에 발맞춰 활발해졌다. 물론 좌파빨갱이론의 진원지는 이 땅의 수구세력이다. 또 메이저 언론이다. 지금의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정권이다. 분명 국민의 뜻에 따라서 집권하였던 지난 10년의 집권세력을 싸잡아 좌빨이라 매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수십년전 미국에서 불었던 매카시 선풍을 떠올리게 된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고,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하면서 우리는 두가지의 망령에 지금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매카시가 바로 그 것이다. 심지어 관제데모에 앞장서던 수구적 단체들에게 정부보조금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단체들은 보복이라 느낄만한 탄압과 공포를 체험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부활한 국가보안법과 매카시의 망령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이시대에 시대착오적 공안정국이 조성되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억압하여 패퇴시킬려는 음모는 아닐까? 갑자기 시대가 수십년을 거꾸로 흐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권에 불만을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추가루 탄 물로 콧구멍에 테러를 당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에 생명을 빼앗긴 박종철 열사가 떠 오른다. 어떻게 이리 짧은 시간에 시계를 거꾸로 돌렸을까? 능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과 매카시가 다시 살아나니 공영방송은 오히려 숨을 죽이고 정권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들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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