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무현 전대통령이 민주주의 2.0에 민주당에 대한 쓴 소리를 올렸다. 민주당이 호남의 지지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영남의 개혁세력도 포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장 박지원 의원이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어조로 반박를 하였다. '배은망덕'한 발언이라고 하였고, 또 민주당을 망친 사람으로 노무현 전대통령을 직접 지목하였다. 누가 옳은가?
지역구도 정치의 폐해
여전히 한국의 정치구도를 가르는 핵심변수는 지역구도이다. 잠시 희석되어 가는 듯 하던 지역구도가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서 다시 부활하는 느낌마저 있다. 특히 영남, 호남, 충청을 각기 분점하는 지역 3국지를 재현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지역구도의 문제점은 대단히 심각하다. 우선 지방자치에서 지역구도가 만들어낸 문제들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지방의회까지 영나은 한나라당의 싹쓸이, 호남은 민주당의 싹쓸이, 충청은 자유선진당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각기 상대지역에서는 거의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단체장과 의회가 같은 집안끼리 서로 사이좋게 이권을 나눠 먹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들이 속한 정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지역민의 이익과 지역발전 보다는 그 들의 이익이 우선시된다. 그런데 아무도 견제할 사람이 없다.
의회는 또 어떤가? 각 지역별로 특정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한다. 의회의 여야구도는 곧 지역대결의 구도가 되고 있다. 국익과 국리민복을 챙겨야할 국회의원들이 각기 자신들의 지역적 이익을 챙기느라 바쁘다. 지역별 이해가 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곧 바로 정당간의 대립이 발생하고 극한 투쟁과 정쟁을 유발한다. 의회의 생산성이 매우 낮은 이유중 하나가 바로 지역구도이다.
또 소선거구제 하에서 실시되는 지금의 총선은 영남과 호남을 막론하고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다. 상대당은 희망자가 없어 그 지역에 공천조차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천을 받기 위해서 온갖 로비와 불법이 난무하고 있다. 정당의 공천장이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대선은 가장 지역간의 대결이 심각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부분이 문제가 되는 점은 인구차이에 의한 승부이다. 영남을 대변하는 후보는 패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수도권은 각 지역출신 인구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수도권과 영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유권자를 합해도 영남 유권자의 수에 비해 턱없이 적다. 결국 영남후보 불패의 구도를 미리 정해두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지역구도의 정치가 만드는 폐해는 정책대결의 실종이다. 각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서로 정책으로 대결하며 발전해야 국익에 이롭다. 그런데 지역구도가 우선하는 정치는 정책대결의 필요성도 정책의 차별화도 의미가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구도에 천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정치, 정책대결이 실종되는 정치를 우리는 언제까지 용인해야 할까?
민주당이 이기는 길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구도에 기대는 한 승산이 없다. 호남을 제외한 지방선거의 패배, 총선에서 소수당이 될 수 밖에 없는 한계,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현실을 극복할 길이 없다.
이제 수도권의 인구비율마저 호남출신이 영남에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호남의 이농이 일찍 시작된 관계로 이제 호남출신 이농자들은 대부분 2세나 3세로 넘어갔다. 그 들은 호남에 대한 연고의식이 거의 없다. 사실상 수도권에서도 민주당이 지역구도를 가지고 이길 수는 없다.
지금 민주당이 처한 한계는 바로 지역구도이다. 지역구도가 장벽으로 존재하는 한 민주당은 지방선거, 총선, 그리고 대선에서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선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민주당이 대선을 이기려면 몇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호남의 몰표를 얻고, 충청에서 압승을 해야한다. 게다가 수도권에서 5%정도의 차이로 이기고, 영남표를 적어도 25%는 빼앗아와야 한다. 그 중 하나라도 중촉하지 못하면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런 조건으로 선거구도를 만들 방법은 그리 마땅치 않다. 결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1997년에는 김대중 후보가 호남표의 95%를 얻었다. DJP연합으로 충청에서 많이 이겼다. 영남에서 이인제 후보가 400만표 이상을 이회창 후보로부터 빼앗았다. 외환위기로 수도권에서 5%를 이겼다. 2002년도 마찬가지이다. 호남에서 몰표, 행정수도 이전공약으로 충청권 압승, 영남출신 후보여서 영남표를 25%얻었다. 이회창 후보의 병역문제 등으로 수도권에서 역시 5%이상 이겼다.
그런 구도를 민주당이 다시 만들어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지역구도에 안주해서는 결코 안된다. 그 것을 허무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또 지역구도를 훨씬 넘어서는 가치를 들고 나와서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야만한다. 해답은 정책대결에서 찾아야한다.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과 서민의 이해를 확실히 대변하는 것이 첩경이다.
소수의 특권층과 여론주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나라당을 이기는 길은 지역대결 구도에 있지 않다. 지역구도는 민주당에게 독이 될 뿐이다. 충청이나 영남이나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세력이라면 모두 결집시켜야한다. 또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함께하던 세력은 모두 포용해야 한다. 개별 정치인들의 이해를 위해 지역구도를 붙잡고 있어서는 도무지 이길 수 있는 길이 없다.
노무현의 고언에 박지원이 발끈하는 이유는?
국회의원이나 현실 정치인들은 항상 자신의 정치생명에 관심의 촛점을 두게 된다. 한국 정치에 있어서 지역구도는 넘어서기 어려운 거대한 벽으로 여전히 위력적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그 것에 순응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지역구도의 틀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설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이 발끈하고 나서는 이유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의 유일하게 그러한 벽에 겁없이 도전한 정치인이다. 민정당이 대구와 경북을 대변하고, 통일민주당이 부산과 경남을 대변하며, 신민주 공화당이 충청을, 평화민주당이 호남을 대변하는 시대가 있었다. 이 때 그는 통일민주당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김영삼의 3당합당이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민주화 세력을 호남으로 고립시키는 일이라며 반발하여 합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수차례 낙선을 겪지 않으면 안됐다. 호남정당 후보로 영남에서 출마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쓴 잔이었다. 이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국민이 그 것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가 지역구도에 대하여 남달리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개인적 이력에서 그는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것 만이 항구적으로 이기는 길이라는 소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에 그러한 견해를 말한 것이다. 그 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것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 여러차례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공개천명한 바가 있다.
물론 민주당에 소속된 현실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아픈 쓴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이다. 특히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지역구도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지적이다. 박지원 의원의 격한 반응도 아마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닌지 짐작이 간다. 또 생각이 다르면 반박을 할 자유도 또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더 집착할 가능성이 높은 현실 정치인보다는 이미 정치를 졸업한 전직 대통령의 소신이 더 객관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때로는 쓰더라도 옳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정치가가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원인을 전직 대통령의 탓이라며 원망하는 것은 좀 볼썽 사납다. 누가 보더라도 지역구도의 정치는 지양하는 것이 옳다.
짧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서 옳은 지향점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경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호남지역의 몰표만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당이 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더더욱 겸손하게 가치지향의 정치를 향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소신을 반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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