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감세안은 표퓰리즘의 전형이다. 경제

 

집권세력의 감세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갖가지 근거를 대며 감세정책만이 국가경제를 나락에서 살릴 것처럼 주장한다. 야당시절 세금폭탄론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추억때문일까? 2008년 9월 1일에는 사상최대의 감세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아직은 감세폭탄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해서 걱정이 엄습한다.

감세는 좋은 것인가?

정서적으로 감세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감세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당연히 감세로 인하여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또 감세가 분명 국민의 세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 반면에 국가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감세가 정밀하게 계획되지 않은 채 실시되면 국가재정의 파탄을 야기할 수도 있다. 좋아보이지만 반드시 큰 비용을 감수하고 실시해야 하는 정책이다.

미국의 경우 감세(Tax-cut)을 Tax-relief라 부른다. 바로 Cut이라는 단어의 어감보다는 Relief라는 단어의 어감이 훨씬 선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감세정책이 공화당이 주로 사용하는 단골메뉴였고, 공화당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선정한 용어이다. "자르다"라는 말보다는 "구제"라는 말이 훨씬 착하게 들린다. 이러한 하나의 용어에도 정치적으로 치밀한 계산이 담겨있는 것이다.

과도한 세금은 분명히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바꿔 말하자면 과도한 세금은 낮추는 것이 경제적 효과적이다. 과도한 세금과 과도한 복지는 경제활력을 떨어뜨리고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이 분명하다. 실업자가 놀면서 받는 보조금이 일해서 벌 수 있는 소득과 같다면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놀면서 소득이 상당부분 감소하더라도 기꺼이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감세도 정도의 문제이다. 복지축소도 정도의 문제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은 경제적 풍요만으로 다 채울 수 없다. 국민소득이 세계최고 수준인 미국에서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이 그렇고 한국도 그렇다. 이 세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복지수준이 유럽의 선진국에 비하여 매우 낮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복지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국가경제를 발전시킬지는 모르나 한사람 한사람은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이다.

유럽의 몇몇 선진국은 과도한 세금과 복지로 유명하다. 소위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구호가 걸맞을 정도이다. 국민소득도 높고, 거의 완벽하게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하지만 과도한 세금과 복지가 경제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어서 지금 이문제가 고민으로 대두되고 있다. 스웨덴 같은 나라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최고 65%를 넘어가던 소득세율도 낮추고 과도한 복지도 일부 축소하고 있다.

과도한 세금과 과도한 복지는 축소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부족한 세금과 부족한 복지는 높이는 것이 좋다. 감세는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과도하게 세금을 많이 걷는 곳에서 감세는 매우 좋은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 감세는 매우 좋지않다. 나라마다 각기 처한 현실이 다르기에 단순하게 감세가 좋은지 증세가 좋은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는 감세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9.1 감세정책.

지금 정치권에서 감세를 둘러 싼 논쟁이 한창이다. 소득세율 인하, 법인세율 인하, 양도세 일부 조정, 상속세 및 증여세의 인하등 거의 전방위적으로 세금을 인하하였다. 역진성을 가진 부가가치세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부자가 고율의 세금을 내고, 저소득층이 낮은 세율로 부담하는 직접세를 깎겠다는 것이다. 서민이나 재벌이나 똑같은 세율로 부담하는 세금은 그대로 두었다. 이래서 부자를 위하는 감세라고 비판을 받는 것이다.

첫째, 소득세의 세율을 각 구간마다 2%씩 낮췄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과표 8,000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100만원당 2만원의 혜택을 입게된다. 반면 면세점 이하의 저소득층에게는 단 한푼의 혜택도 없다.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는 아무런 혜택을 볼 수 없는 감세정책이다.

둘째, 법인세율을 2% 낮췄다. 법인이 올린 세전이익이 1억미만이면 13%, 1억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하여 25%을 부담한다. 각 법인의 매출액에서 법인세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차감하고도 1억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경우는 얼마되지 않는다. 물론 수조원의 법인세를 납부하는 대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1억 이상의 이익을 내기가 무척 어렵다. 이 역시 대기업과 재벌에게 엄청난 혜택이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셋째, 양도세의 경우도 그렇다. 일가구 일주택의 경우 일정요건만 갖추면 양도소득세가 면제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6억원 이상의 고가주택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면제하지 않았었다. 이 기준을 9억으로 상향한다는 것이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6억원을 넘는 고가주택이 얼마나 있고, 그런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 강남지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넷째, 상속,증여세의 경우도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상속이나 증여할 재산을 가진 사람을 누가 서민이라 하겠는가? 보통 거주하는 집 한채를 가지고 있다가 사망하는 경우 상속세를 단 한푼도 내지 않는다. 배우자가 상속받는 경우 5억원의 기초공제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정책이다. 결국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 편의를 위한 친재벌 정책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발표한 9.1 감세정책은 기득권층에게 혜택을 집중하는 부자들을 위한 조치일 뿐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서민들은 더욱 열악한 복지로 고생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감세인가?

우려되는 후유증.

무려 향후 몇년간 2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이번 감세안이 우려스럽다. 국가재정의 파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서민들의 더욱 극심한 고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치밀하게 계산하고 실시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국가재정의 건전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해외에서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의심하는 순간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다. 지금 외국인 자금이 엑소더스의 행렬을 이루는 현상도 이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정이 부족하면 공기업을 헐값에 매각하여 충당해야 할 것이다. 그 나마 다 매각하고 나면 다른 충당방법이 없고, 국채를 발행해도 인수할 사람이 없어진다. 정말 아찔한 일이다.

국가재정이 부족할 때 공기업의 매각이나 국채발행이 아닌 충당법은 예산을 삭감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나마 알량한 복지예산이 가장 먼저 삭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것도 부족하다면 국방예산까지 삭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서민들의 삶을 정부가 보호해줄 능력을 상실할 뿐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데 쓸 돈도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공기업 매각을 믿고 무리한 감세를 밀어부친다면 공기업 매각대금조차 모두 소진한 수년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IMF외환위기시 우리는 많은 국부유출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을 적지 않게 매각하였다. 또 그나마 건전한 재정상태로 인하여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충격을 상당부분 흡수하였다. 국가재정의 규모를 대폭 줄이고, 공기업을 모두 매각한 후에 위기가 닥친다면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감세정책은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금을 깎아 준다고 하면 우선 기분이 좋아진다. 심지어 세금을 한푼도 안내는 서민들조차 마치 자신이 혜택을 볼 것처럼 착각하고 환호하는 일이 있다. 심한 경우는 전기사용료, 수도사용료를 전기세나 수도세라 부르며 세금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감세가 마치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깎아주는 것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또 우파학자들이 압도하는 한국의 경제학계가 주장하는 논거에 물들여진 측면이 있다. 세금을 깎아주면 가계는 가처분 소득이 늘어서 소비가 살아나고, 기업은 투자여력이 생겨서 투자가 살아날 것이라는 논리이다. 또 그렇게 되면 고용도 늘고 저절로 저소득층도 혜택을 입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미 충분한 가처분 소득이 있는 고소득층에게 가처분 소득을 더 늘려줘도 소비가 살아날 가능성은 낮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를 더 늘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저축이 늘거나 해외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기업도 이미 감세로 혜택을 입는 경우는 투자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만 이윤창출의 기회가 없어서 투자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서민대중의 교묘한 착각을 일으키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정책의 선택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바로 이러한 정책이 포퓰리즘의 전형인 것이다. 감세(Tax-cut)를 세금구제(Tax-relief)라 칭하며 선한 것으로 꾸몄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특히 외환위기를 자신들이 만들고도 그 것을 극복하는데 전전긍긍하던 지난 정권들을 세금폭탄이나 좌파정책이라고 매도하던 행위의 연장선상이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이라 비판하던 논리를 정책으로 실현하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정권들은 그런 분배개선을 위한 정책을 별로 한 것이 없다. 또 그러한 분배의 기능은 조세가 가지는 본연의 기능중 하나이기도 하다. 교묘한 표퓰리즘이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것은 국민과 국가적 불행이다.

진정으로 선량한 감세를 하려면 방법이 전혀 달아야한다. 재벌의 총수나 우리같은 서민이 똑같은 세율로 부담하는 부가가치세 같은 것을 깎아야 옳다. 기득권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정권을 차지한 세력이 그 기득권층의 지지를 유지 또는 복원하는 수단으로 국가재정의 근본을 흔들어선 안될 것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특정한 세력의 이익을 만들어주고 국가재정을 파탄내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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