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의 사장으로 선임된 구본홍씨에 대한 노조의 반대기류에 변화조짐이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캠프출신이어서 노조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날치기 주주총회를 통해서 사장이 되었으나 노조의 출근저지로 정상업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노조가 태도변화를 보이고 있다는군요.
노조의 구본홍 사장 반대논거.
노조는 구본홍씨가 대선에서 기여한 공으로 사장자리를 얻게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했습니다. 언론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선거때 특정세력의 편을 들고, 그 공으로 다시 언론계의 요직에 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 종사자들이 그런 사례를 보면서 선거 때마다 나서서 특정세력에 줄서고 공을 세우려 한다면 언론은 또 다른 정치판이 되고 말 것이라는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언론특보로 이름을 올렸던 서동구씨가 KBS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노조의 반발을 부른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때 노조의 반발로 결국 임명 7일만에 서동구씨는 스스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특정한 정치세력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이미 중립적 포지션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서동구씨의 사례는 결과적으로 언론의 중립성확보에 기여한 것입니다.
좋은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깡그리 무시하고 무차별 낙하산 인사를 단행했거나 추진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 위원장에 최시중씨를 임명하였고, 방송광고공사 사장에 양휘부씨가, YTN 사장에 구본홍씨가 임명되었습니다. 언론인들의 정치권 줄서기를 더더욱 부채질하는 일입니다. YTN 노조의 구본홍씨 반대논거는 그런 면에서 매우 합당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방송의 중립성 문제입니다. 국민은 방송을 통해서 특정 정권의 홍보를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방송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견제해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판단은 국민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제약을 시도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폭거입니다.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된 자들이 방송을 장악하는 경우 그러한 객관성과 중립성은 무너지게 됩니다. 보도내용은 물론 편성에 있어서 사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사람은 무척 드물 것입니다. 특히 인사권을 가진 사장의 의중에 거슬리는 보도와 편성을 고집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노조가 구본홍 사장을 반대한 것은 당위성이 높습니다.
노조와 사장의 대화.
그렇게 구본홍 씨를 반대해온 노조가 구본홍 씨와 대화의 석상에 앉은 것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단 대화를 나누는 것이 사장을 실체로 인정하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시작한 것은 뭔가 서로의 입장차를 조율하여 타협할 의지를 보인 것에 다름이 없습니다.
결국 대화는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구본홍 사장은 보도와 편성에 대하여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과 경영에만 전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조는 찬반을 투표에 부치기로 하였습니다. 거의 절반은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보도와 편성에 관여하지 않고 경영에 전념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장기간 파행을 지속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또 노조의 반대로 구본홍씨가 물러난다 하더라도 결국 누군가 또 다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노조가 고육지책으로 대화에 나섰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화가 결국 구본홍 사장의 실체를 사실상 인정한 꼴이 되었습니다. 또 노조의 찬반투표가 연기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완전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조가 얻은 것은 보도와 편성에 대한 불관여 선언입니다. 낙하산 인사의 부당성은 완전히 철회한 꼴입니다. 두가지 명분중 더 중요한 낙하산 인사의 부당성이 희석되었습니다.
또 보도의 중립성이라는 것도 상호 약속한 것처럼 잘 지켜질 것으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인사권을 가진 사장이 보도와 편성에 영향을 끼칠 방법은 다양하게 남아 있습니다. 사장의 정치적 성향에 반하는 보도를 한 기자와 편성 담당자에게 보복인사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장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장의 눈치를 살피는 일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경영에만 전념한다는 것도 애매한 일입니다. 방송사의 경영이란 보도와 편성이 핵심입니다. 그 것을 제외한 경영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결국 경영행위라는 이름으로 보도와 편성에 영향을 끼치는 일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대화를 통해서 얻은 것이 그리 없어 보입니다. 구본홍 사장은 자신의 사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YTN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YTN의 보도는 점차 이명박 정권의 비위에 맞는 방향으로 변화해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장이 구본홍씨라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급격한 보도내용의 변화나 편성상의 파격은 보이지 않을 테지만 서서히 변화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국민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정권의 홍보를 듣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4시간 보도 전문채널이 정권을 교묘히 홍보하는 일을 생각하면 암담한 일입니다. 결국 정권이 원하는 낙하산 인사의 목적은 모두 달성하는 것이죠.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기자들이나 PD들은 알게 모르게 인사에서 불이익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력한 노조의 반발을 일으킬 정도로 무리한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정권을 비호하는 일에 앞장서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일은 YTN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전개될 다른 방송관련 요직의 낙하산 인사에 있어서도 좋지않은 전례로 남을 것입니다. YTN이 정권의 방송장악의 선례로 작용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만개했던 대한민국의 언론자유가 급격히 위축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의 투쟁과정에서 YTN노조가 보여준 결연한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아쉬움을 느낍니다. 과연 지금 전개되는 그러한 형식적 보도와 편성에의 불개입 선언이 최종 목적이었나요? 고생을 많이 하고도 어쩔 수 없는 한계로 그렇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많이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 땅에서 언론자유의 수호는 어떻게 이루어야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선거때면 정치권에 줄서서 기여하고 후에 공직을 선물로 받는 이런 일은 언제까지 계속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낙하산 인사도 종종 인정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사의 인사조차 그렇게 노골적 편향성을 지닌 인물들로 채워진다면 민주언론의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YTN노조 여러분! 과연 그 길이 최선일까요?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결과에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노조의 구본홍 사장 반대논거.
노조는 구본홍씨가 대선에서 기여한 공으로 사장자리를 얻게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했습니다. 언론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선거때 특정세력의 편을 들고, 그 공으로 다시 언론계의 요직에 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 종사자들이 그런 사례를 보면서 선거 때마다 나서서 특정세력에 줄서고 공을 세우려 한다면 언론은 또 다른 정치판이 되고 말 것이라는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언론특보로 이름을 올렸던 서동구씨가 KBS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노조의 반발을 부른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때 노조의 반발로 결국 임명 7일만에 서동구씨는 스스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특정한 정치세력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이미 중립적 포지션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서동구씨의 사례는 결과적으로 언론의 중립성확보에 기여한 것입니다.
좋은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깡그리 무시하고 무차별 낙하산 인사를 단행했거나 추진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 위원장에 최시중씨를 임명하였고, 방송광고공사 사장에 양휘부씨가, YTN 사장에 구본홍씨가 임명되었습니다. 언론인들의 정치권 줄서기를 더더욱 부채질하는 일입니다. YTN 노조의 구본홍씨 반대논거는 그런 면에서 매우 합당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방송의 중립성 문제입니다. 국민은 방송을 통해서 특정 정권의 홍보를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방송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견제해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판단은 국민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제약을 시도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폭거입니다.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된 자들이 방송을 장악하는 경우 그러한 객관성과 중립성은 무너지게 됩니다. 보도내용은 물론 편성에 있어서 사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사람은 무척 드물 것입니다. 특히 인사권을 가진 사장의 의중에 거슬리는 보도와 편성을 고집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노조가 구본홍 사장을 반대한 것은 당위성이 높습니다.
노조와 사장의 대화.
그렇게 구본홍 씨를 반대해온 노조가 구본홍 씨와 대화의 석상에 앉은 것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단 대화를 나누는 것이 사장을 실체로 인정하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시작한 것은 뭔가 서로의 입장차를 조율하여 타협할 의지를 보인 것에 다름이 없습니다.
결국 대화는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구본홍 사장은 보도와 편성에 대하여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과 경영에만 전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조는 찬반을 투표에 부치기로 하였습니다. 거의 절반은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보도와 편성에 관여하지 않고 경영에 전념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장기간 파행을 지속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또 노조의 반대로 구본홍씨가 물러난다 하더라도 결국 누군가 또 다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노조가 고육지책으로 대화에 나섰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화가 결국 구본홍 사장의 실체를 사실상 인정한 꼴이 되었습니다. 또 노조의 찬반투표가 연기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완전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조가 얻은 것은 보도와 편성에 대한 불관여 선언입니다. 낙하산 인사의 부당성은 완전히 철회한 꼴입니다. 두가지 명분중 더 중요한 낙하산 인사의 부당성이 희석되었습니다.
또 보도의 중립성이라는 것도 상호 약속한 것처럼 잘 지켜질 것으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인사권을 가진 사장이 보도와 편성에 영향을 끼칠 방법은 다양하게 남아 있습니다. 사장의 정치적 성향에 반하는 보도를 한 기자와 편성 담당자에게 보복인사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장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장의 눈치를 살피는 일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경영에만 전념한다는 것도 애매한 일입니다. 방송사의 경영이란 보도와 편성이 핵심입니다. 그 것을 제외한 경영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결국 경영행위라는 이름으로 보도와 편성에 영향을 끼치는 일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대화를 통해서 얻은 것이 그리 없어 보입니다. 구본홍 사장은 자신의 사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YTN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YTN의 보도는 점차 이명박 정권의 비위에 맞는 방향으로 변화해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장이 구본홍씨라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급격한 보도내용의 변화나 편성상의 파격은 보이지 않을 테지만 서서히 변화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국민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정권의 홍보를 듣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4시간 보도 전문채널이 정권을 교묘히 홍보하는 일을 생각하면 암담한 일입니다. 결국 정권이 원하는 낙하산 인사의 목적은 모두 달성하는 것이죠.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기자들이나 PD들은 알게 모르게 인사에서 불이익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력한 노조의 반발을 일으킬 정도로 무리한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정권을 비호하는 일에 앞장서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일은 YTN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전개될 다른 방송관련 요직의 낙하산 인사에 있어서도 좋지않은 전례로 남을 것입니다. YTN이 정권의 방송장악의 선례로 작용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만개했던 대한민국의 언론자유가 급격히 위축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의 투쟁과정에서 YTN노조가 보여준 결연한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아쉬움을 느낍니다. 과연 지금 전개되는 그러한 형식적 보도와 편성에의 불개입 선언이 최종 목적이었나요? 고생을 많이 하고도 어쩔 수 없는 한계로 그렇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많이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 땅에서 언론자유의 수호는 어떻게 이루어야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선거때면 정치권에 줄서서 기여하고 후에 공직을 선물로 받는 이런 일은 언제까지 계속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낙하산 인사도 종종 인정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사의 인사조차 그렇게 노골적 편향성을 지닌 인물들로 채워진다면 민주언론의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YTN노조 여러분! 과연 그 길이 최선일까요?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결과에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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