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19일
10대들의 항변, 충분한 이유있다.
10대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지금처럼 적극적 의사표현에 나선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지금 10대들의 항변을 들으면서 3.1독립운동이 상기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유관순 열사의 당시 연령이 10대였다는 관계때문일 것이다. 해방 후 4.19의거도 어린 학생들의 참여가 있었다. 그러나 매번 성인들이 주도하고 10대들이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유신반대 투쟁도 그렇고, 5.18광주에서도 대학생들이 앞장섰다. 1987년 6월항쟁은 대학생들의 시위에 넥타이 부대로 일컬어지는 직장인들이 참여했을 뿐 10대들의 참여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10대들의 참여는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10대들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주도하고 참여를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이 뒤따라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왜 이렇게 주도적으로 나선 것일까?
첫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지금의 정치지형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다. 그 들은 투표권이 없어서 투표조차 하지 못했지만 어른들이 지금의 정부를 선택했고, 그 결과 자신들에게 위험이 초래된 것이다. 어른들의 선택에 대한 불만이 지금 폭발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안겨준 어른들의 진지한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둘째, 어른들에 의하여 강요된 자신들의 처지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노출한 것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사교육을 받으며 정신없이 선행학습에 내몰린 처지를 그들은 분명히 돌아보고 있다. 분명 그들이 성장하는 우리사회의 환경은 비정상이다. 그동안 깨닫지도 못한 채 내몰려온 자신들의 생활모습을 돌아보며 어른들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어른들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셋째, 함량미달의 정부가 한계점에 달한 10대들을 강하게 자극한 것이다. 급식을 먹어야 하는 그들에게 제한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은 한계점을 넘는 행위이다. 0교시 부활, 야간자율학습, 영어몰입교육, 방과후 학교의 학원참여등 수 없이 많은 정책들이 10대들의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그 들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다. 정권의 어설픈 정책에 대한 참회가 필요하다.
넷째,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접속한다.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량은 물론이고 깊이도 거의 제한이 없다. 그 들은 어설픈 어른들보다 더욱 깊이있고,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에 그들은 어른들에 못지않은 정보를 접하고 분석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다섯째, 언론의 거짓과 왜곡을 그들은 꿰둟고 있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가 광우병위험이 높다며 비판하던 언론이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광우병 위험이 없다고 홍보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거짓말하는 언론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이 논술에 대비하기 위하여 많은 신문사설을 읽었다는 점도 눈치를 챈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여섯째, 그들은 논술을 공부하며 시사문제에 대한 논리적 사고에 근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이 접하는 정보에 대하여 분석능력이 향상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그들은 한번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 수입문제에 대한 비판적 논술을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10대들의 항변은 상당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들을 탄압하려 하거나 철모르는 휩쓸림으로 치부해선 더욱 거센 저항을 부를 뿐이다. 그들은 나름의 정리된 정보와 분석을 통해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업시간에 불러내서 집회신고에 대하여 추궁하는 어설픈 방식으로 그들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고단한 생활을 이해하고 그들이 좀 더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방법이다. 방법이 찾기 어렵고 지난한 일이라면 적어도 어른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 옳다. 그들은 이미 멋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잘못된 선동에 의하여 휩쓸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운동권 학생들을 '의식화된 학생'이라 칭하는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운동권이 아닌 학생은 무의식적인 학생이란 말인가? 참 우스운 일이었다. 당시 부모들은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이 의식화되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독재자들의 추악한 폭압에 순응하여 출세나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자식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은 타박할 일이 아니나 정의를 버리고 불의에 타협하라 가르친 것은 분명 옳지는 못한 것이었다.
지금 10대들의 촛불집회를 386세대인 부모들의 영향이라 분석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가 사회정의를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는 것까지 독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475세대에 비하여 자녀들의 사고방식에 다른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만 부모의 교육이 핵심동인일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다르다면 자녀들의 그러한 비판의식을 강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10대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전히 어린아이이거나 철부지만은 아니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차라리 철부지로 느껴진다. 그들 나름의 정보습득과 분석력이 상당히 갖춰져 있다. 그들의 항변은 상당히 이유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항의를 받고 있는 것은 비단 정권만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생활을 강요한 모든 어른들을 향해서 그들은 지금 호소하고 있다. 이제 어른들의 그들의 요구에 응답할 때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어떤 답변을 할 것인가?
유신반대 투쟁도 그렇고, 5.18광주에서도 대학생들이 앞장섰다. 1987년 6월항쟁은 대학생들의 시위에 넥타이 부대로 일컬어지는 직장인들이 참여했을 뿐 10대들의 참여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10대들의 참여는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10대들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주도하고 참여를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이 뒤따라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왜 이렇게 주도적으로 나선 것일까?
첫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지금의 정치지형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다. 그 들은 투표권이 없어서 투표조차 하지 못했지만 어른들이 지금의 정부를 선택했고, 그 결과 자신들에게 위험이 초래된 것이다. 어른들의 선택에 대한 불만이 지금 폭발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안겨준 어른들의 진지한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둘째, 어른들에 의하여 강요된 자신들의 처지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노출한 것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사교육을 받으며 정신없이 선행학습에 내몰린 처지를 그들은 분명히 돌아보고 있다. 분명 그들이 성장하는 우리사회의 환경은 비정상이다. 그동안 깨닫지도 못한 채 내몰려온 자신들의 생활모습을 돌아보며 어른들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어른들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셋째, 함량미달의 정부가 한계점에 달한 10대들을 강하게 자극한 것이다. 급식을 먹어야 하는 그들에게 제한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은 한계점을 넘는 행위이다. 0교시 부활, 야간자율학습, 영어몰입교육, 방과후 학교의 학원참여등 수 없이 많은 정책들이 10대들의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그 들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다. 정권의 어설픈 정책에 대한 참회가 필요하다.
넷째,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접속한다.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량은 물론이고 깊이도 거의 제한이 없다. 그 들은 어설픈 어른들보다 더욱 깊이있고,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에 그들은 어른들에 못지않은 정보를 접하고 분석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다섯째, 언론의 거짓과 왜곡을 그들은 꿰둟고 있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가 광우병위험이 높다며 비판하던 언론이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광우병 위험이 없다고 홍보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거짓말하는 언론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이 논술에 대비하기 위하여 많은 신문사설을 읽었다는 점도 눈치를 챈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여섯째, 그들은 논술을 공부하며 시사문제에 대한 논리적 사고에 근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이 접하는 정보에 대하여 분석능력이 향상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그들은 한번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 수입문제에 대한 비판적 논술을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10대들의 항변은 상당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들을 탄압하려 하거나 철모르는 휩쓸림으로 치부해선 더욱 거센 저항을 부를 뿐이다. 그들은 나름의 정리된 정보와 분석을 통해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업시간에 불러내서 집회신고에 대하여 추궁하는 어설픈 방식으로 그들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고단한 생활을 이해하고 그들이 좀 더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방법이다. 방법이 찾기 어렵고 지난한 일이라면 적어도 어른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 옳다. 그들은 이미 멋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잘못된 선동에 의하여 휩쓸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운동권 학생들을 '의식화된 학생'이라 칭하는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운동권이 아닌 학생은 무의식적인 학생이란 말인가? 참 우스운 일이었다. 당시 부모들은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이 의식화되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독재자들의 추악한 폭압에 순응하여 출세나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자식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은 타박할 일이 아니나 정의를 버리고 불의에 타협하라 가르친 것은 분명 옳지는 못한 것이었다.
지금 10대들의 촛불집회를 386세대인 부모들의 영향이라 분석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가 사회정의를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는 것까지 독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475세대에 비하여 자녀들의 사고방식에 다른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만 부모의 교육이 핵심동인일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다르다면 자녀들의 그러한 비판의식을 강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10대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전히 어린아이이거나 철부지만은 아니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차라리 철부지로 느껴진다. 그들 나름의 정보습득과 분석력이 상당히 갖춰져 있다. 그들의 항변은 상당히 이유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항의를 받고 있는 것은 비단 정권만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생활을 강요한 모든 어른들을 향해서 그들은 지금 호소하고 있다. 이제 어른들의 그들의 요구에 응답할 때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어떤 답변을 할 것인가?
# by | 2008/05/19 17:02 | 사회,문화,교육 | 트랙백 | 덧글(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비용전혀없습니다!
아래주소를 클릭해서 무료신청하세요
http://english.redirectm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