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세력의 몰락과 향후 과제 정치

1. 현실에 대한 인식과 평가.

1>정치 구조적 현실

-지역구도의 고착화

전통적인 영호남간의 지역구도는 부분적으로 희석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한국정치의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구도 정치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장애물이다. 한나라당이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정권을 탈환한 원동력도 바로 지역주의의 힘이다. 통합민주당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하나의 정당으로 만들어진 원동력 또한 호남의 지역주의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구도는 정치적으로 호남의 쇠퇴를 의미한다. 즉 전통적으로 호남의 지지를 받아오던 민주화 세력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개발독재의 시기에 산업입지로서 영남의 발전은 이농현상을 완화 및 늦추는 역할을 했다. 반면 호남은 산업화에서 철저히 소외되면서 이농현상이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영남의 유권자 수는 호남과 충청권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게 되었다. 일찍 이농한 호남출신의 후손들은 호남에 대한 연고의식이 희박하다. 그 들은 이미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고향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영호남의 대결, 민주화 세력과 수구세력의 대결에서 호남과 민주화 세력이 패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신행정 수도이전과 부동산 시장의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새로운 수도권 지역주의가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이 확실히 한나라당의 아성이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결국 영남과 수도권을 차지한 한나라당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다. 통합민주당은 다시 호남지역주의에 기대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회창을 중심으로 충청권을 할거하는 새로운 지역정당이 만들어졌다. 또 다시 호남 당, 충청 당, 영남+수도권당의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화를 추구하던 세력, 호남의 지지를 받던 정치세력은 절박한 위기를 맞고 있다.

-새로운 Leadership과 정치적 Agenda의 부재

과거 민주와 독재의 대결이 정치의 지형을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절에는 도덕성이나 다른 가치관을 접어두고 일단 민주화를 위해서 특정한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양심세력이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권위적 리더가 탄생한 것이다. 그 들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뭉쳤고, 강력한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들의 옳지 않은 정치행태조차 민주화를 위해서 덮어주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제 형식적 의미의 민주화는 만개하였고, 그들도 이미 대통령을 역임하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들이 받았던 철통같은 지지는 누구도 승계할 수가 없었다. 일인 지배적 정당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창출하는 데에 아직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열린 우리당이 창당하면서 내세웠던 상향식 정치는 정치인들의 욕심에 의하여 좌초하고 말았다. 일인지배 정당의 구조를 상향식 구조로 바꾸는 것이 실패하였다. 유력 정치인들의 야합에 의해서만 정당이 존립할 수 있는 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정치인들에게는 장사가 안 되는 상향식 정당이 불편하기 때문에 허물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 지금의 통합 민주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이 국민에게 명분 없는 이합집산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더욱 국민의 지지를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헌상한 것이다. 이제 각급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는 물론 중앙정부도 한나라당의 차지가 되었다. 곧 이어 있을 총선에서 의회권력마저 한나라당이 완전히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화 세력은 의미 있는 견제세력으로도 존립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내몰려있다. 이제 민주화 세력은 국민의 뇌리에 없다. 그 것을 대체할 새로운 Agenda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2>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른 현실

-외환위기의 후유증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하며 우리의 경제구조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원하지 않던 타율적 변화가 대부분이었다. 소위 말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강요되었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을 최대한 확대하는 방식의 개방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순기능으로 작용한 점도 적지는 않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어느 정도의 제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대마불사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기업들의 경쟁력이 제고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여전히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수많은 실업자를 쏟아냈고, 중소기업들이 한계기업들이 줄줄이 도산을 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던 사람들이 소규모 자영업을 하게 되었다. 자영업자의 비율이 보통 선진국의 경우 5~10%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자의 비율이 30%를 넘었고,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자영업을 하다가 망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또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이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국민의 70%가 비정규직 이거나 자영업자라는 주장도 있다. 당연히 중산층의 몰락과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의 고용관행도 많이 변했다. 과거와 달리 신입사원을 교육훈련을 통해 양성하지 않고 당장 업무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력사원만 채용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이다. 대형 유통업이 제약 없이 확대되며 재래시장과 동네 소규모 자영업이 망해가고 있다. 유권자 들은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모두 지난 10년을 집권한 민주화 세력이 무능해서 그렇다고 원망하고 있다. 도무지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길이 없어 보인다.

3>대중적 인식의 한계

항상 서민들은 삶이 어렵지 않고 순탄한 때가 없었다. 늘 고단하고 어려운 것은 항상 서민대중의 몫이었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서민들을 이용했을 뿐 진정으로 서민을 위하여 정치적 어려움을 감내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차선이나 심지어 차악을 정치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민도는 그리 훌륭한 수준이 아니다. 지역주의에 매몰된 투표행태를 보이는 것도 국민이다. 외환위기를 겪고도 그 것을 초래한 정치세력을 다시 강력히 지지한 것도 역시 국민이다. 심지어 잘잘못에 대한 기본적 판단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지역구도에 안주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여 항상 지역주의 정당을 만들어내는 것도 국민이다.

지역구도와 정치자영업자들의 카르텔이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누고 협잡하는 꼴을 보면서도 그들을 여전히 지지하는 것이 오늘의 한국정치 구도를 만들어낸 주범이 아닐 수 없다. 또 역사적 맥락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정치세력에게 여전히 한국의 정치를 좌우하게 만들었다. 친일청산을 피곤한 과거사로 치부한다. 독재세력에 대한 징치도 반대여론이 높다. 지역 구도를 복원하는 방식의 정계개편을 국민이 요구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서민대중이 당연히 지지해야할 진보정당은 3%의 지지율에 머물고 쇠락하는 중이다.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도 무시하고 지역 주의적 투표행태를 보이는 국민은 좋은 정치를 향유할 수가 없다.

시장에서 경쟁적 열위에 놓인 자신들의 처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시장자율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유는 정부가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세와 복지의 축소가 당연한 세계적 추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양극화는 성장을 추구하면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앞뒤가 정연한 논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지만 적어도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좋은 정치는 정치인들이 그저 만들어 바치는 것이 아니다. 민도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4>종합적 현실평가

한국의 정치는 지역구도가 가장 큰 상수이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를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방식은 아직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모두 지난 10년의 집권세력이 무능한 탓으로 여겨지고 있다. 민도는 더 성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양심적 투표성향은 사라지고 집단 이기적 동기의 투표가 늘어가고 있다. 이제 옳은 것에 대한 지지보다는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는 모습조차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정치는 10년 전으로 퇴행하였다. 지역구도의 이익을 가장 많이 누리는 세력이 중앙과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서민들의 삶을 피폐한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으려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득세하였다. 잠시의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한 민주화 세력은 국민의 외면을 피할 수 없는 처지이다. 암담하지만 지금은 고소영 정권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의 집권 10년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였다. 외환위기로 벼랑에 내몰린 한국경제를 다시 지속가능한 성장추세로 되돌려 놓았다. 또 제왕적 대통령제의 시대를 끝내고 권위주의를 걷어 냈다. 정권과 언론의 상호 견제가 작동했으며, 청와대가 당을 지배하고 당은 거수기 역할을 하던 일인보스 정치를 탈피한 것도 민주화 세력의 공이다. 여론의 반전을 위해 밤낮없이 꺼내들던 단기적 경기부양책을 억제하고 견뎌낸 것도 중요한 치적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데 실패한 것은 사실이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국민의 지지상실은 실패로 여겨질 뿐이다. 민주화 세력의 실패는 독재자의 후예들에게는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그러한 과정에서의 획득물이다.

2. 민주화 세력 몰락의 원인.

1>정치 환경적 원인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한 민주화 세력은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정치구도를 정하는 핵심적 요소가 지역구도이고, 인구구조상 영남을 기반으로 삼는 수구세력을 이길 수가 없었다. 사실상 지난 10년의 집권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외환위기로 민심이반이 극심했고, DJP연합과 수도권의 승리가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영남에서의 이인제 효과까지 더해진 결과이다.

참여정부도 역시 영남출신 후보, 신행정수도 건설공약, 거기에 외환위기 책임론의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요약하면 한나라당의 큰 실정과 호남과 충청을 묶어내며, 수도권에서 근소하나마 승리해야 한다. 또 영남의 표를 일부 흡수하거나 분산시켜야 이기는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변수가 동시에 작동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지역 구도가 살아있는 한 한나라당은 어떤 선거도 도저히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민주화 세력이 불가능해 보이는 집권을 했던 시기이다. 당연히 그러한 제약 속에 탄생한 정권들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선거가 끝나면 국민의 여론은 곧장 비판적 입장으로 표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사회의 다수파가 정권을 상실했다는 자성 속에 정권을 흔들고 비난하는 데 몰두하였다.

게다가 신행정수도의 건설은 수도권 기득권 세력의 위기의식을 자극하였다.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말도 안 되는 경국대전을 운운하며 위헌판결까지 내려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의 민심이 모두 등을 돌리고 말았다. 공약자체는 옳았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인구의 50%가 살고 있는 수도권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치부되면서 수도권에서의 지지기반을 상실하였다.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화두도 역시 반드시 필요하지만 수도권의 민심이반을 초래한 것이었다.

결국 지역 간의 이해 조정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했고, 지역구도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 민심이반의 큰 원인중 하나이다. 민주화 세력이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존재했던 것이다. 지역구도의 극복을 위해 전력투구하지 못한 구여권 전체가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지역구도 속에서 안주하는 동안은 영원히 한나라당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점차 악화될 수는 있어도 개선될 단초가 없다.

2>언론 환경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대체로 대언론 관계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환경이었다. 수구언론의 본질적 정체성이 민주화 세력과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참여정부는 집권하기 전부터 언론과의 대립이 극심한 상황이었다. 정론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의도대로 왜곡하고 비난하는 데 열중할 뿐 이었다.

외환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동안 ‘한국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거짓말을 하더니 참여정부 5년 동안 한국경제가 곧 망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곤 하였다. 외환위기는 어디로 간 데가 없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한국경제를 모두 말아먹은 양 떠들고 있었다. 그 들의 주술같은 비난이 국민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 들은 심판의 옷을 입고 한나라당 선수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출입기자 들에게 촌지도 주지 않았고, 수구언론 들에게 자주 특종을 주는 특혜도 없었다. 오히려 인터넷 언론이나 지방지까지 동시에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균형을 취하려 하였다. 당연히 수구언론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상실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사건건 뒷거래는 없이 법적대응으로 맞서는 정권을 그 들이 그냥 보고 넘길 리가 없었다. 그들의 기득권이란 바로 권력과의 뒷거래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들의 저주는 국민여론을 움직여서 결국 민주화 세력을 외면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3>정치인들의 탐욕

정치인들의 탐욕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열린 우리당이 뿌리 채 뽑혀서 사라진 대목은 정치인들의 탐욕의 결정판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정동영의 탐욕이다. 김근태도 있었고, 유시민도 있었지만 정동영이 그 결정판이다. 그는 민주당을 깨고 열린 우리당을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지역 구도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정당, 깨끗한 정치, 백년 가는 정책정당, 당원이 주인 돼는 상향식 정당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는 열린 우리당의 최대주주이자 공천권을 거의 독점하였다.

하지만 곧 자신의 욕심을 위해 모든 명분을 스스로 짓밟고 말았다. 총선에서 자파의 대거당선으로 일단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과거의 호남몰표를 그리워했다. 당원들의 간섭을 제거하려 노력했다. 편리하게 호남의 맹주를 차지하고 당원들은 그저 과거의 민주당처럼 동원의 대상이나 되면 그만이었다. 공천장사도 자신들의 것으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차기 대선후보 자리도 완전히 확보하고 싶었을 것이다. 장기적 정치개혁의 과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스스로 짊어진 4대개혁 입법도 잘못 짊어진 짐으로 여겼다. 많은 정치인들을 줄 세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통합론으로 죽어가던 민주당이 소생하자 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선거제도의 개선이 없이는 열린 우리당이 존립하기 어려운 처지였으나 그 것을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선거제도의 개선을 전제로 제시한 대연정론을 계기로 노골적인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총선에서 정부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밀어붙이려다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갈수록 야당과의 전선은 무너지고 총구를 내부로 돌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각료임명에 반발하고, 당원들의 권한을 빼앗는 데 온갖 협잡을 다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점점 차별화를 넘어 결별로 진도를 나가고 말았다. 기간당원들과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하고 다시 모이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결국 스스로 거창하게 내세운 열린 우리당의 창당명분은 짓이겨지고 말았다. 물론 거기에는 김근태 계도 전혀 뒤지지 않고 함께 나섰던 일이다. 그들의 공동의 적은 노무현 대통령과 당에 돈도 내고 시간 보태던 기간당원들이었다. 그렇게 한국 정치사에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던 열린 우리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거기에는 기간당원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던 유시민의 존재도 작용하였다. 대통령이 유시민을 지원할 경우 열린 우리당의 틀 안에서는 쉽게 이기기 어렵다는 계산도 작용하였다. 사실 유시민이 기간당원 제를 고수하려는 것도 그러한 의도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였을 것이다.

결국 김대중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호남 당을 복원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문제는 그 대열에 이해찬이 참여하였던 점이다. 열린 우리당의 뿌리라도 남겨서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 어렵지만 포기해선 안 될 과제였다. 이해찬이 친노세력을 대거 이끌고 들어가면서 열린 우리당은 존립의 근거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유시민이 그러한 당의 소멸을 바라만 보다가 결국 찬성하고 말았다.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임을 말해주는 장면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호남 지역의 몰표와 공천권을 사고팔던 달콤한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들 때문이다. 특히 정동영과 김근태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부정한 정치자금을 모아서 나눠주고, 공천권을 무기로 당을 장악했던 과거의 정치를 벗어난 금단현상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정분리는 성공할 토양이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선거자금도 주지 않고, 공천권도 없는 대통령과 힘겹게 같이할 이유가 없었다. 정치인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탐욕의 다른 이름이다. 그들을 가지고 좋은 정치를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꿈꿀 일이 아니었다.

4>시민의 참여결여

열린 우리당은 그 창당의 명분만으로 평가하자면 대단히 의미 있는 훌륭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기간당원제를 적절히 유지하기에는 너무도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저조했다. 불과 몇 만 명의 기간당원들이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을 붙잡아둘 만큼 위력이 없었다. 그저 불편한 존재로 취급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또 정치인들이 경과규정을 도입하여 동원정치를 하는 것에 어떤 제동도 걸지 못하였다.

열린 우리당의 실패는 바로 정치인들이 탐욕에 고삐를 죌 만큼 충분한 시민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였다. 수십만의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면 정치인들이 그 것을 마구 짓밟거나 훼손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몇 안 되는 당원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을 유보할 정치인은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담보하지 못한 것이 열린 우리당의 중요한 실패원인이다.

5>양극화의 해결실패

지금 서민들은 점점 궁핍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물론 10년 전의 외환위기가 여전히 그 여파를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경제구조를 정확히 꿰뚫어 보기가 불가능하다. 민주화 세력이 국민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외환위기로 인하여 극심해진 양극화에 대한 일정한 해법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 것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그나마 양극화라는 용어 자체도 참여정부에서 부각시킨 것인데 화두를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이나 마찬가지다.

증세를 통하여 재정을 확충하고, 그 재정으로 복지예산을 늘려서 서민들의 한계상황을 해결했어야 한다. 그런데 복지예산은 좀 늘었다고 하지만 너무나 조족지혈이었다. 그리 피부에 와 닿은 수준이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오히려 법인세율은 많이 낮춰졌다. 지금의 법인세율도 지난 2003년 참여정부가 집권한 후에 낮춘 것이다.

한미 FTA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다. 자유무역의 혜택은 대부분 대기업과 기득권층에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협상에 임하기 전에 먼저 준비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혜택을 입을 계층이 자신들의 부담을 대폭 늘려서 피해를 입을 계층에게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공감대가 없이 추진한 자유무역 협정은 결국 양극화를 극심하게 만들 뿐이다. 특히 한미 간의 자유무역 협정의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난 것이다.

양극화라는 화두를 스스로 부각시키고 그 것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탓에 그 양극화의 주범이 되어버린 꼴이다. 양극화가 가장 극심해진 상황에서 당시의 집권세력이 지지를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도시와 농촌,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소득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양극화는 그 책임을 모두 민주화 세력이 지게 되었다.

6>정책실현 과정의 부작용

정책이란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실행되는 과정에서 역기능이 나타난다. 외환위기로 인하여 늘어나는 국민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서 국민의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였다. 카드를 남발하고, 부동산 경기를 부추겼다. 결국 후에 더 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또 다른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 부동산의 가격폭등으로 서민들의 박탈감을 극대화 시켰다. 그러한 부작용은 참여정부를 출범부터 곤란한 지경에 몰아넣고 말았다.

참여정부에서의 정책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양산하였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를 건설하는 당위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토지보상금이 부동산 버블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현지 주민들의 보상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또 각 지방에 건설하는 혁신도시 등도 토지보상금 등이 풀려나가며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였다. 누차에 걸친 부동산 시장대책도 민심의 이반을 낳았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도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여론에 불리한 작용을 톡톡히 하였다.

7>정치적 이상과 대중적 인식의 괴리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민은 일사 분란한 통제사회의 특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이견이 있어서 조율하는 것조차 분열로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이다. 그러한 국민의 눈에 참여정부의 탈 권위주의는 그리 탐탁지 않은 일이다. 여전히 국민의 눈에 대통령은 마치 제왕의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 지고 있다. 당과 정부가 서로 다른 시각의 의견을 가지고 절충하는 것을 혼란으로 본다. 각 권력기관의 행위를 모두 대통령의 의중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국민에게 탈권위주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당에서 각기 다른 주의 주장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조차 오합지졸의 분열로 보이기 십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독립, 당정분리는 모두 국민의 눈에 무능력한 모습으로 보였을 뿐이다.

반면 이명박의 청계천, 서울시 대중교통 체계개편 등은 추진력을 갖춘 지도자의 덕목으로 보였던 것이다. 외환위기의 후유증조차 아직 극복하지 못한 한국경제를 살릴 적임자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선택하였다.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면서도 그를 지지하였다. 그의 도덕성에 의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를 뽑은 것이다.

탈지역주의, 정책정당, 성장과 복지의 균형, 탈권위주의, 지역균형 발전 등은 모두 공염불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시대의 한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정치적 이상이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모두 국민의 인식과는 괴리가 크다는 데에서 민주화 세력의 위기는 현실화된 것이다.

3. 지금 시민사회가 할 일

1>거시적 차원의 운동

-정치참여운동

여전히 국민의 대다수는 정치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그러나 냉소는 정치자영업자들의 더러운 카르텔을 깰 수가 없다. 참여의 공간이 좁더라도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는 지속 돼야 한다.

-지역주의 극복운동

지역주의는 망국병이다. 지역구도를 깨지 않는 한 좋은 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 지역구도에 기대면 정책대결도 없고, 각급의 정치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은 없다. 지금 지방자치가 각 지역별로 일당 독주하는 문제도 결국 지역별 싹쓸이의 결과인 것이다. 지역주의 탈피를 위한 운동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_상향식 정치운동

정치인들만의 카르텔을 깨는 중요한 수단으로 상향식 정치운동이 있다. 국민이 정당에 직접 참여하고 관여하는 것은 정치를 깨끗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권위적 정치 리더가 없는 지금의 정치상황은 리더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상향식 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Manifesto운동

옳은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운동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당선 후 그 공약이 이행되는가의 여부를 평가하는 지속적 감시가 필요하다. 거짓으로 표를 모으고 눈속임하는 정치를 퇴출하는 것이 곧 정치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철새 정치 퇴출운동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를 무력화하는 것이 바로 철새정치이다. 양지를 쫓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정체성을 숨기는 정치인은 반드시 퇴출하는 것이 옳다. 때로는 실정의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건설한 정당조차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태가 용인되어선 결코 좋은 정치를 바랄 수 없다.

-한반도 대운하 반대운동

한반도 대운하는 민족적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각급의 정치를 독식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해 이것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곧 이어 있을 총선에서 과반수는 떼놓은 당상이니 의회가 막아주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범국민적 저항운동이 필요하다.

-반전 평화운동

강대국들의 입장에 따라서 우리는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상존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의 경우처럼 우리에게 전쟁을 강요하는 상황은 종종 있는 일이다. 우리가 평화를 원하는 만큼 우리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옳다.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지역 사회에서 할 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대한 감시활동

이미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지역별로 같은 당 소속의 단체장과 의원들이 서로 이권을 나누고 부정한 행위를 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활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부터 바로잡아 나가면 중앙정치도 그 병폐가 줄어들 것이다.

-지역 정치인에 대한 지지 및 반대운동

안양, 군포, 의왕, 과천에서 국회의원만 5명을 선출한다. 대부분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후보로 출마할 정치인들도 대부분 함량미달이다. 그 들의 잘못된 정치행위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감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안양의 당원 협의회 위원장에 출마해서 당선되자 곧장 탈당을 감행한 모 의원의 경우도 시민들에게 정체를 알려야 한다. 간혹 훌륭한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 출마를 한다면 힘을 모아 지원하는 활동도 의미있는 일이다.

-환경보호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들이 지역마다 적지 않다. 특히 단체장과 의회를 같은 당이 장악한 상태에서는 더더욱 개발업자들과의 결탁에 의한 환경파괴 가능성이 높다.

-지역이기주의에 대한 설득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 임대주택을 지으려 하면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자신들의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럴싸한 다른 이유를 대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곳에 토론과 설득을 위한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

우리 주변에는 생계를 연명하기 어려운 많은 이웃들이 살아가고 있다.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좀 더 밝은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은 날마다 한계상황을 견디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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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qwer 2008/04/24 14:40 # 삭제 답글

    잘 일고 갑니다...정확히 보셨네요.... 민도란 말이 일본 말 아닌가요??? 아닌가??? 어쨌든 우리 대중수준이 저질이지요...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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