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수 없는 헌재의 판결들 정치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기각하였다. 쟁점은 현직대통령이 헌법소원 제기가 가능한지 여부, 야당의 대선후보에 대한 비판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 중앙선관위가 선거중립의무를 준수하라며 수차례 공문을 보낸 행위가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의 여부등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첫째, 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물론 9명의 재판관이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 직위가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헌법적 지위를 유보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이다. 중요한 공직을 담당한 자는 자연인으로서 자신의 권리조차 일정부분 희생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던 논리를 부정한 것이다.

 

둘째, 야당의 대선후보에 대한 비판을 거듭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역시 소수의견이 그와 반대로 나타난 것은 마찬가지이다.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조항이 엄격히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의 대선후보가 제기한 정책이 문제가 있더라도 대통령이 나서서 비판하여서는 안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개인자격과 공직자인 대통령 자격으로 구분짓지 않고 포괄적 금지를 인정한 것이다.

 

셋째, 선관위의 연이은 경고가 개인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억압이 아니고 통상적인 업무의 범위에 속하는 활동이라고 판결하였다. 선관위가 공직자의 선거중립 의무를 엄격히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부분적으로 제한해도 좋다는 판결이다. 즉 선관위는 정당한 업무를 한 것으로 보고 대통령에 대한 경고가 그러한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판결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의 문제점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총 9명이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최근 몇년동안 모두 바뀌었다. 그러나 구성원이 달라져도 판결의 적절성은 전혀 높아지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기각판결, 행정수도 이전법에 대한 위헌판결, 이번에 내려진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대한 판결이 모두 석연치않다. 특히 판결의 시기와 내용이 그시점의 여론과 영합한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판결을 살펴보자.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합법적으로 여당을 도울 수 있다면 뭐든 돕고싶다고 발언하였다. 그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선관위가 지적하였고, 야당들이 압도적 수적 우위를 앞세워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그럼 질문을 받고도 여당이 이기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발언했어야 할까? 그런 발언을 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마음속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일까? 그런 발언이 없다면 국민들이 대통령은 여당편이 아니고 중립이라고 여길까?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런데 헌재는 선거중립 의무에 위반되지만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기각하였다. 앞뒤가 맞지않은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사실상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지만 중대한 것이 아니라고 기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용을 하거나 아니면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판결의 시점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탄핵반대의 여론이 들끓고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의석의 압승을 거둔 뒤 슬그머니 여론에 영합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정수도 이전법에 대한 판결에서는 더더욱 희안한 논리가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아닌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을 근거로 들고, 명확히 성문헌법을 채택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관습헌법론을 펼치기도 하였다. 경국대전은 조선왕조의 법이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법이 아니다. 또 성문헌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관습헌법을 들먹이는 것은 넌센스다. 그러한 판결로 인하여 국토의 균형발전 전략이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새로운 수도권 지역이기주의로 승화돼서 정치구도를 바꾼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재판관들이 모두 수도권에 살아서가 아닌지 의심받기에 충분한 억지스러운 판결이었다.

 

이번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에 대한 판결도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관권선거를 획책하거나 공천권을 공공연히 행사해온 것이 과거 우리의 정치풍토였다. 또 국무회의같은 공식석상에서 여당을 편들고 야당을 근거없이 비판하였다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 지지자들의 모임에서 야당후보에 대한 의구심이나 우려를 표한 정도를 제한할 법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또 야당이 부단히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비난하던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 반론조차 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공정하지 못하다. 또 선거가 끝난 시점에 슬그머니 판결한 것도 정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헌법재판소는 좀 더 신뢰받는 판결을 내야한다.

 

여론의 흐름이나 특정한 집단의 이익이 판단의 기준이 돼선 안될 일이다. 항상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판단하면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헌법과 법률의 조항의 입법취지를 충분히 살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받고 있는지를 살여야할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판결이 난무해서는 신뢰를 받기 어렵다. 특히 헌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신뢰를 잃어선 대한민국의 헌법이 누더기가 되고 말 것이다.

 

다시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에 대하여 살펴보자. 대통령은 분명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켜야한다. 왜냐하면 법률이 그것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헌법에는 모든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담고있다. 따라서 상위법인 헌법을 우선하여 법체계를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률과의 조화를 살펴야 한다.

 

그러한 조화를 위해서는 자연인의 정치적 자유와 공직자의 공적인 업무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또 공적인 업무라 하더라도 일방적인 주장에 대하여 균형있는 반론권은 보장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야당후보들의 정부에 대한 공격에 반론을 펼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또 자연인이 대통령 개인의 자격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에 지난친 제약을 두어선 안될 일이다.

 

사실 공직자의 선거중립 의무라는 것도 매우 위선적인 부분이 있다. 대통령이 아무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여당을 편들 것임을 안다. 설혹 편드는 발언을 하더라도 그러한 발언으로 인하여 선거의 구도가 왜곡될 가능성은 없다. 이미 대통령이 지지를 받고 있다면 여당이 어차피 이길 것이고, 그 반대라면 대통령이 편들어도 여당은 더욱 불리할 다름이다.

 

그래서 결국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조항에 대한 입법의 취지를 따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 관권선거를 획책하고, 정부여당이 가진 유리한 수단들을 동원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고자 만들어진 규정이다. 법을 좀 더 엄밀한 조건으로 해석하면 말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부가 가진 자원을 동원하거나 공무원조직을 활용한 선거운동을 철저히 봉쇄하면 그만이지 모든 공직자의 입조차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무수한 정치적 발언과 자신과 상관없는 선거에서의 자기당 편들기도 모두 막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좀 더 확대해석하면 국회의원도 모두 공직자가 아닌가? 그들이 모든 선거에서 경쟁당을 비난하고 자신들의 당을 자랑하는 행위조차 금지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정치적 행위를 막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막아서도 안된다. 그들이 국가의 자원을 부당히 동원하거나 활용한 경우만 금지할 명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에 대한 반론조차 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선관위의 처사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불공평한 것이다. 당연히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이 중립인가? 심하게 말하면 마음먹는 것조차 중립을 위반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조차 처벌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논리적 근거가 박약한 판결을 하면 헌법재판소의 신뢰는 거듭 추락할 뿐이다. 특히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시기를 조절하거나 억지스러운 근거를 끌어다 붙여선 안된다.

 

법이 분명히 규율하여 금지한 것이 아니라면 모든 국민의 정치적 자유는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마구 유추해석하여 금지하면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정치행위가 거의 없다. 부디 앞뒤가 논리정연한 헌재의 판결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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