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자살 공화국

누구에게나 인생은 견디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삶을 완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극심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 저절로 자살에 대한 동경이 생길 위험도 높아질 겁니다. 세상에사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고 하지만 종종 삶의 고통을 견디기보다 포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들 중에서 자살률이 부동의 1위입니다. 매우 부끄러운 기록이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아까운 인명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국민이 느끼는 고통지수가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많아져서 그럴 겁니다. 모든 세대에 걸처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청소년들은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하며 잠시의 짬도 없이 공부를 합니다. 누구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잠시의 방심은 나락으로 추락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극심하게 서열화된 사회구조속에서 경쟁에서 친구를 이겨야 살아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직장도 가지가지이고 직장내에서의 위치도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학력도 천차만별이며 철저히 서열화되어 있습니다.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태어나자마자 경쟁을 시작합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20대와 30대의 자살률도 매우 높습니다. 최근에 더욱 높아지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과거처럼 기업들이 청년들을 많이 데려가서 가르치고 훈련하여 사용하지 않습니다. 당장 기업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선호합니다. 그 만큼 일자리를 하나 얻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일자리의 질적 차이도 너무 극심합니다. 여전히 평생고용이 보장되거나 높은 연봉을 받는 일자리도 있습니다. 낮은 임금에 언제 짤릴 지도 모르는 불안하고 질낮은 일자리도 있습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청년들의 고통이 극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중장년 층의 자살률도 역시 심각합니다. 가족부양에 대한 부담, 배우자와의 갈등으로 인한 고민, 자녀의 교육에 대한 걱정이 압박을 가합니다. 직장에서는 평생고용의 관행이 허물어지고 점차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성인병으로 인한 사망률도 높고,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입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모든 고통을 견디기 보다 피하고자 마음먹는 경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됩니다.

 

노년층의 경우 사회가 적절한 보호를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자녀들의 부양에 대한 의무감도 많이 약화되어 방치되는 노인이 많습니다. 자연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실 건강상의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절한 수입원이 없고, 자녀들은 부양할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으며, 병고에 시달리다 보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생겨날 것입니다.

 

자살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리국민의 유전적 형질과 관계된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만의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요? 사실 군사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자살률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서서히 높아지다가 외환위기로 폭증하였고, 지금까지 별로 줄지않고 있습니다. 유전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시대상황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 적절하겠죠?

 

물론 독재가 자살률을 낮췄다거나 민주화가 자살률은 높였다는 엉뚱한 해석을 하는 분들은 없기를 바랍니다. 종종 우연의 일치를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하여 잘못된 주장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그러한 단순무식한 단정으로 우리의 어려움은 가중될 뿐입니다.

 

원인은 극심한 경쟁구조라고 봅니다. 문민정부 이전의 대한민국은 명확한 개도국으로 국제사회의 보호대상이었습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만불도 안되던 시기입니다. 시장개방의 압력도 그리 높지 않았으며, 대외적인 개방의 정도가 매우 낮았습니다. 문민정부 시절에 1만불을 넘으면서 OECD에 가입을 했습니다. 당연히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맞는 시장개방을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세계화를 정권이 오히려 적극 추진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차별적 경쟁에 우리 모두가 노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르과이 라운드로 농산물이 노출되고, 공산품 시장도 점차 열지 않을 수 없게 됐죠. 게다가 자본시장도 곧 개방을 피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정권은 우리의 자본시장을 개방하기 전에 먼저 해외투자의 길부터 열었습니다. 대우같은 재벌은 단자사를 통해서 외화를 차입하고 무차별적 해외투자에 나섰습니다. 정권은 국민소득을 1만달러 수준에서 유지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환율을 방어하였습니다. 그 결과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대변혁을 맞게 됩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대비한 구조조정에 나섰습니다. 연구개발과 기술의 혁신보다는 손쉽게 사람을 해고하였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노숙자가 폭증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생겨납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사회안전망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참여정부는 사실상 비정규직 문제등을 해결하지 못하였고, 부동산 가격의 안정에 실패하였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날 길은 학력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교육 시장은 더욱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대책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매우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사회구조의 변혁이 필요합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약육강식의 경쟁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책입니다. 노인들의 생계를 돌봐야 합니다. 실직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중장년층을 정부가 보호해야 합니다. 청년들의 실업에 대한 처방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은 완화되어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고 복잡한 일입니다.

 

그 해답은 우선 정치에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보수정권으로는 국민의 자살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국민의 진보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우선 해소해야 합니다. 막연한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는 정치인들을 우선 퇴출시키는 것이 시급합니다. 보수정권의 경쟁확대로는 자살하는 국민을 줄일 수 없습니다. 국가의 가장 긴급한 의무인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어렵습니다. 진보정치를 키워야 합니다.

 

세금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세금을 많이 부과하면 기업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성장률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률이 좀 낮아지더라도 곧 죽게될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동안의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이 좀 더 부담하여 삶이 경각에 달려있는 약자를 보호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니 벌써 너무 늦었습니다.

 

시장의 자율은 경쟁의 심화를 의미합니다.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개입하여 해소해야 합니다. 정부가 좀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하려면 필연적으로 더 많은 재정의 지출이 필요하고 그 것을 충당하기 위해서 증세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지금 무너진 내수기반도 결국 극심한 경쟁의 결과로 심화된 양극화의 한계점을 의미합니다. 수출 하나로 경제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사교육의 병폐를 없애야 합니다. 사회가 학력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개인의 창의력을 사는 데까지 발전해야 합니다. 대학을 한 줄로 세우고 앞줄부터 사회가 데려다 쓰는 방식으로는 모두의 불행을 키울 뿐입니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죽이고,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아 허덕이게 만들 뿐 아니라 사교육비를 대기 위하여 부모들도 함께 불행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사교육으로 선행학습을 많이 받은 학생은 사실 경제적 가치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주거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공공주택의 보유물량을 대폭 늘려서 서민들의 주거를 해결해야 합니다. 엄청난 재정이 소요되는 일이지만 국민의 삶에 가장 필수적인 주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평생 집 한채 사고 그 대출금을 갚으며 허덕이다가 실직이라도 하게 되면 삶이 막막해 집니다. 그렇게 공공부문의 역할을 늘려 나가면 시장에서의 부동산 가격도 안정되고 기업들의 원가부담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서구의 선진국들이 과도한 사회복지로 인하여 경제적인 활력을 상실한 것도 교훈으로 삼을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복지의 과다로 고민하는 나라는 매우 행복한 나라입니다. 그것을 일부 축소하거나 줄여서 경제를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정착된 시스템이 약자들을 여전히 보호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지과다가 염려되는 서구에서 우향우가 유행이라면 우리는 그들이 서있는 왼쪽으로 한동안 좌향좌를 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는 우향우를 외칠 단계가 아닙니다.

 

자 이제 서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해줄 국가의 건설에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투표하십시요. 그리고 정치인들을 잘 감시하십시요. 그 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항상 지켜보셔야 합니다. 서민들의 삶을 보호하는데 관심이 없다면 과감하게 외면하십시요. 그 것이 자살률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나는 일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자살률 1위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부끄럽지는 않으신가요? 이제 과감하게 진보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니 너무 늦었습니다.

by 비토세력 | 2007/11/16 13:52 | 사회,문화,교육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sbadco.egloos.com/tb/393824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