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과 오르가즘의 정치학.

어린시절 프로레슬링을 보면서 환호하던 기억을 가진 분들이 적지않을 것입니다. 사각의 링안에서는 물론이고 입장전부터 서로 눈싸움과 기세싸움을 보여주곤 합니다. 링에 오르면 상대선수를 거의 죽이려는 듯한 심한 공격을 나누고 종국에는 수세에 몰렸던 선수가 대반전을 이루며 승리하죠. 가끔은 링밖으로 상대방을 집어던지고 나와서는 의자같은 기물을 들어서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프로레슬링에 어린이들은 열광하곤 했습니다. 텔레비젼이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런 재미있는 것을 볼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김일선수의 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전기불이 들어오고 텔레비젼이 있는 부잣집 친구를 졸라서 따라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인지 "프로레슬링은 쑈다"라는 폭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급격히 흥미를 잃고 프로레슬링을 외면하게 됩니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텔레비젼에서 중계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환호하던 사람들은 왜 프로레슬링을 외면하게 되었을까요? 프로레슬러들은 각고의 노력을 해서 준비한 후 링에 오르고 사력을 다해서 관객의 흥미를 위해 몸을 던지지만 왜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요? 답은 진정성이 없는 쑈라면,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정치를 보면 바로 프로레슬링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호형호제하며 함께 룸쌀롱도 가고 질펀하게 술도 마시며 잘들 놀다가 국회의사당에만 가면 멱살을 잡고 싸우며 철천지 원수같은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평소에는 상생이니 실용이니 하면서 정체성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선거때만 되면 바로 싸움판이 됩니다. 정책적 지향이 거의 비슷해 보이더니 어느날 갑자기 전혀 상종못할 종자들로 상대를 매도하고 맙니다. 그런 과정을 끝도 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프로레슬러들이 동업자로서 서로 우의를 나누다가 링에만 오르면 상대를 죽일듯이 연기하는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말하자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밥벌이는 정치놀음입니다. 따라서 프로레슬러들처럼 나름의 노력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국민이라는 관객에게 환호를 받을 것이고 자신의 밥그릇도 커질 테니까 말입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그들의 연기를 대강 압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연극을 여전히 흥미롭게 지켜보는 국민이 쉬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좀 더 근원적으로 그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요? 그냥 자신의 소신에 따라서 일하면 자괴감도 없고 보람도 느낄 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연기를 해야하는 것일까요?

 

우선 정치가 국민의 삶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어설픈 연극에도 관심을 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뭐 그다지 흥미가 없어도 50%가 넘는 사람들이 전국단위선거에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흥미가 반감된 일에 참여하려니 깊이있는 생각이나 관점이 없이 쉽게 휩쓸리고 심지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연결되는 일이지만 흥미를 잃은 국민을 투표장에 보내고 자신이나 소속정파를 지지하도록 만드는 일이 정치인들의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결국 점점 자극적이고 강력한 투쟁연기를 강화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대통령과 여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심지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전략을 채택하는 것은 바로 흥미를 잃어가는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대통령이 대연정이니 야당과의 협력이니 하면 지지율이 급전직하하다 열심히 나와서 선전포고를 하면 지지율이 올라갑니다. 정치는 싸우는 것이 되는 근원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정치의 본래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국민의 삶을 안돈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단기적인 몰핀처방으로 국민을 마비시켜서는 안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정치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미워하는 정치세력과 시원하게 맞장떠서 난투극을 벌여야 환호와 박수가 터집니다. 그러니 좀더 자극적인 활극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국민은 그런 장면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투표장에가서 표를 찍어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지역감정에 의한 투표나, 세대간의 지지성향이나, 진보와 보수라는 대응축도 그런 틀에서 작동되고 있습니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국민의 변태적 오르가즘을 충족시켜주고 화대로 표를 얻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변태적 욕구를 가지고 정치를 바라보고 화대로 표를 지불하는 한 우리의 정치는 앞으로도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프로레슬링보다 훨씬 하급의 연극에 환호작약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냉정하게 정책적 차이는 무엇인지를 보아야 하고 어느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과 넓게는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는가를 보고 판단하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영남에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가는 서민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 호남에서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반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 그런 종류의 천한 의식입니다. 영남에서 전라도를 공격할 때 시원하다고 느끼신다면 당신의 변태적 성향을 가진 천하디 천한 사람입니다. 호남에서 경상도를 공격하는 정치인이 아주 멋지게 보인다면 당신도 도착증 환자에 가깝습니다. 근거없이 야당과 언론이 대통령을 비방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당신도 곧 오르가즘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여당과 대통령이 반한나라당 연합으로 총공세를 펴자고 근거없이 주장할 때 당신이 짜릿한 쾌감을 느끼신다면 당신도 심한 변태가 맞습니다.

 

소위 개혁세력이라고 자임하던 정치인들이 우리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키가 뭐냐는 물음에 한나라당과의 확고한 전선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야당의 정치인들에게는 반대로 대통령을 죽사발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만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뇌리에는 오로지 국민의 표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변태적인 행위만 반복하는 우리의 정치구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여당과 대통령이 대립하는 모습까지 너무 자주 보게 됩니다. 권력이 없어진 대통령제 아래서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인기없는 대통령을 더더욱 인기가 형편없는 여당에서 공격하여 국민의 오르가즘을 충족할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이제 오르가즘을 추구하는 정치는 끝내야 합니다. 대화하고 설득하고 안되면 표결하고 절차를 준수하는 정치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의 자각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시들해 졌다가 신나게 싸우면 그런 정치인이 멋있어 보이고 희열이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당신의 도착증을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고치지 않고 정치가 건전한 정책대결의 장으로 진보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각성하지 않고 마약에 취한 듯 정치를 바라보며 그들의 정책은 뭐고 정체성은 뭔지 관심도 없고 오로지 카타르시스와 오르가즘만을 추구하면 당신이 이나라의 정치를 망치고 있는 셈입니다.

 

by 비토세력 | 2007/01/26 11:45 | 정치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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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현실정치와 우리의 정치참여와의 방정식
프로레슬링과 오르가즘의 정치학. 본 글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위 글을 쓴 비토세력씨와 그 블로그에 대한 내 애정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관심은 고사하고 언급조차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은 블로그에서, 현실정치에 대한 논리적이고 일관된 주장을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올려주시는 비토세력씨는 저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고마운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이 글을 읽기 전에 위 글을 먼저 읽고 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야기를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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