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이 양극화의 해소를 반대하는 아이러니. 경제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양극화와 저출산을 중요한 미래과제로 제시했다. 물론 이 두가지의 과제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며, 엄청난 재원을 요하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언론들은 세금인상과 조세제도의 개혁을 앞다퉈 보도 하였다.

몇일 후에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당장 증세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하였다.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정권이 억지로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고 증세없이 재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언한 일이 있다.

1. 증세없이 양극화를 해소할 길은 있는가?

물론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제적 현상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증세없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대체로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자는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양극화 해결책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 말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저소득층이 소득이 낮거나 없는 것은 변변한 직장이 없거나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그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면 양극화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고용을 창출할 방법이 역시 마땅치 않다. 지금 박정희 시대처럼 국가권력이 시장을 철저히 장악하고 있어서 기업들에게 채용을 늘리고 투자를 늘리라고 강압할 수단도 없다. 기업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투자 및 고용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뿐이다. 따라서 말은 맞는 말이나 정작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고용도 늘어난다. 기업은 이윤기회가 있는 장소와 시기에 맞춰 투자를 늘린다. 기업들이 내국투자를 하지 않고 따라서 고용이 늘지 않는 것은 국내에 이윤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해외에 많은 투자기회가 있다면 나가서 해외투자를 한다. 자본의 국경이 점점 없어지는 지구촌에는 해외투자의 길도 점점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기업은 국내투자를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창출의 효과는 없다. 대기업은 제품의 생산에 있어서 오토메이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외국산 설비를 들여다 설치하는데 투자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중소기업들은 고용창출의 효과가 높지만 투자를 할 여력도 없고 해외에 이윤기회가 널려 있어서 여력이 있다면 해외로 나간다.

결국 이윤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투자도 고용도 없다. 그렇다면 왜 국내의 이윤기회가 해외에 비하여 적은가? 그것의 원인을 해소하면 모든 것이 풀린다. 첫째는 소비의 위축이고, 소비의 위축은 양극화와 저출산이 원인이다. 둘째, 기업에게 높은 코스트 부담인데, 부동산의 가격과 고임금 및 원자재가격등이다. 셋째, 글로벌 경제와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따라서 해외에 이윤기회가 매력적이고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다.

해외의 이윤기회는 우리의 힘으로 줄이거나 막을 수 없다. 부동산가격도 쉬이 조절되지 않고 임금도 억압할 수 없다. 원자재 등의 가격도 통제가 안된다. 특히 원자재등의 해외조달율이 높은 우리의 사정상 조절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위축된 소비를 살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내수시장의 규모가 워낙 적은 우리나라의 사정상 통일전까지 시장의 규모를 확대할 길이 전무하다. 출산률도 낮아서 점점 소비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많은 인구가 실업상태이거나 비정규직이어서 소비할 여력조차 없다.

양극화, 소비위축, 이윤기회 축소, 투자와 고용악화, 다시 양극화 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을 끊어 내는 방법으로 고용창출을 말하는 것은 악순환의 다음 다음 단계를 처방이라고 제시하는 꼴이다. 따라서, 고용창출이 양극화의 해결책이라는 말의 성찬은 비판받을 일이다.

2. 거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수단은 증세이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그것을 통해서 소비를 늘리며 이윤기회를 확대해서 투자와 고용을 창출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순환의 고리중에 어느 것을 풀어도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바뀔 수 있지만 양극화라는 응어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곧 다시 흐름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투자를 억지로 늘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투자를 늘리려면 차라리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재정지출을 늘려서 양극화를 근원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선순환 구조의 확립방법이다. 물론 재정의 지출이 실질적으로 저소득층에게 효력을 발휘하고 경제에 기여하도록 하려면 임시방편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만으로는 안된다. 항구적으로 존속이 가능한 사업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노인요양 시설을 확충하고 그것에 상시고용의 형태로 사람을 채용하는 일이라면 고용의 창출도 되고 복지혜택으로 소득격차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효율성이 낮다는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한 것이니 집착은 금물이다.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보육교사를 채용하는 것도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과 교육투자를 하는 것도 같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하여 방과후 학교를 학교내에 만들어서 수준높은 상시직 강사를 채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방법은 찾으면 있다. 재원의 확보가 문제이다.

재원의 확보는 증세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부수적으로 연기금의 재원을 직접투자의 방식으로 끌어들이고 수익률을 정부가 보장하는 것이라면 투자원금에 대한 재원의 수효는 줄어들 수도 있다. 세율을 직접 인상하지 않고 탈루되는 세금을 철저히 부과하는 것도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정도는 한참 지나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점을 간과하고 미봉책만을 써서는 안된다.

세원을 확대하고 감면을 폐지하는 것도 세율을 올리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직접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것보다 대상세원의 소득수준이 낮다는 점과 누진효과를 확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효과는 훨씬 못미치는 것이다. 오히려 서민들의 세부담을 늘리는 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

누진률이 적용되는 직접세를 인상하면 세입에서 양극화를 완화하고 세출로 또 한번 양극화를 해소하는 이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직접세의 증세로 양극화 해소의 재원을 마련하고 복지예산을 증액하는 것이다. 다른 대책들은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병행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증세없는 양극화 대책은 별무신통일 것이다.

3. 서민들의 조세저항?

국회가 최근 10년 이내에 수차례의 세율인하를 저질렀다. 미래에 대비하는 재원확충을 해도 시원치 않은데 오히려 재정을 악화시키는 파퓰리즘 입법을 여러차례 단행한 것이다. 그것도 여야가 착착 죽이 맞아서 합의로 처리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양극화의 중요한 원인이 된 측면도 있다. 정치권의 야합이 서민을 죽이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그 동안 우리의 정치가 얼마나 말로만 서민들을 위한다고 외치고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에 종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런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국민들과 지역주의가 원흉이다. 정치인들의 거짓에 속아서 투표한 서민들의 잘못이다. 그동안의 감세를 하지 않았다면 상당한 수준의 재원이 마련되고 복지예산이 이미 지출되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도 증세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은 세금을 부담할 부자들, 고소득층만이 아니다. 세율을 인상해도 전혀 부담이 늘지 않을 서민들이 극력히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그것은 정책의 효과나 파장에 대한 오해를 한 것이거나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서민을 위한 증세와 복지예산의 확충을 서민들이 막아 버리는 일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공제감면을 축소,폐지하면 그것은 서민들에게 매우 좋지않은 결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공제감면은 소득이 낮은 서민들에게도 해당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이런 것에는 서민들의 반발이 증세에 대한 것보다 덜하다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증세를 피할 수 없다면 대국민 홍보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론이 형성되는대로 끌려가거나 따라가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정확히 필요한 재원과 직접세의 증세율을 정하고 그것이 누구의 부담을 늘리고 누구에게 혜택을 줄 것인지를 인식시켜야 한다. 어렵다고 어물쩡 다른 길로 돌아가서는 해결이 안된다. 정면돌파가 답이다.

자신에게 부담이 돌아가지 않고 혜택만 받을 서민들이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매카네즘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거나 사실은 소득이 높은데 서민인 양 하는 가짜일 것이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이해를 시키고, 가짜들의 목소리는 무시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줄 일들을 뒤로 미루는 것은 죄악이다.

국민의 여론을 물을 때는 반드시 각자의 부담과 혜택을 정확히 알리고 해야 한다. 엉터리 설문을 돌리고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악의적 보도를 대하면서 분노를 느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예를 들면 '경제성장'이냐 '민주주의 발전'이냐를 선택하도록 하고 국민은 민주주의가 희생되더라도 경제성장을 원한다고 보도하는 언론의 패악질이 있었다.

야당의 악의적인 정치공세도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증세냐 감세냐를 국민에게 묻자고 한다. 누가 세금을 더 내고 누가 세금을 덜 낼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물으면 100% 감세를 선택하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감세로 줄어들 복지혜택은 누구에게서 빼앗아 오고, 증세로 늘어날 복지혜택은 누구에게 줄 것인지 말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당신은 세금을 더 내고 싶소? 덜 내고 싶소?' 이런 식의 설문으로 조사하자는 것이다. 그들의 악의를 국민이 읽어야 한다.

가끔 야당의 이모 의원은 토론에 나와서 '파이를 더 키울 것이냐? 지금 모두 잘라서 먹어 치울 것이냐?'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참으로 어이없는 질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모두 모여서 동그란 피자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물론 대한민국의 영토만큼 커다란 피자 한판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것은 너무 커서 불편할 뿐이다. 적정한 크기의 피자들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쌓아간다.

열심히 서로 노력하고 분업하여 피자를 만들고 있는데 배고품을 참는데는 한계가 있다. 1억장의 피자를 만들었다면 한 2,500만장 정도를 잘라서 먹고 쉬면서 재충전을 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잘라서 먹어버리면 아까우니 굶어 죽을 때까지 열심히 만들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의 성장론과 분배론은 파이를 키울 것인지 모두 나눠 먹고 말 것인지를 선택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배고파서 더 이상은 파이를 키우는 작업이 불가능하다면 겉 테두리를 좀 잘라서 먹고 힘을 내서 다시 일해야 하는 것이다. 효율성과 형평성, 성장과 분배는 그렇게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해방후 지금까지 효율성과 성장만을 추구했다. 이제 더이상은 그런 방식으로 성장도 불가능하다.

서민들의 조세저항은 설명하고 설득하고 정면돌파할 일이다. 정치적 지지를 상실하지 않으려고 우회하고 돌아가면 수십년이 걸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국민에게 옳바른 경제교육이 필요하다. 성장론자 일색인 우리의 경제학계는 모두 자폭을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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