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폭행사건 연루기. my stories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에게는 아픈 기억이 하나있다. 아프기 보다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하야 옳을 지 모른다. 기묘한 사연으로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유치장 신세를 진 기억이 생생하다.

1. 억울한 폭행혐의.

열일곱살 때의 일로 기억된다. 동네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이 그리 건전하고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침 네명이 어울려서 동네어귀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취객 한 분을 발견했다. 평소 익히 알고 있던 동네의 어른이었다.

상당히 심하게 취한 상태여서 뭔가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에 우리는 쉽게 합의를 하였다.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는 것이 도리일 듯 생각하였다. 그런 순간에 그 분의 젊은 동생이 나타났다. 역시 술에 취해 있었으나 상태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우리보다는 두세살 나이가 많은 그친구는 아마도 대입재수생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그에게 다가섰다. '형님 분이 많이 취하셨으니 모시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을 건네는 순간 눈앞이 번쩍하면서 나는 대로에 대자로 드러눕고 말았다. 이른 바 선방을 맞은 것이다.

당시 체중이 48kg에 불과하던 나는 그의 한 주먹거리도 안되었던 것이다. 선의로 다가섰다가 기습을 당한 꼴이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에 분노를 느낀 다른 녀석이었다. 붉은 벽돌을 한장 들어서 그 친구의 얼굴을 가격하고 말았다. 대형사고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 일로 우리는 졸지에 파출소를 경유하여 경찰서의 유치장 신세를 져야했다. 그리고 거액의 합의금을 나눠 부담하고 겨우 석방될 수 있었다. 나는 한대 얻어맞고 드러누운 것 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한물에 고기'일 수 밖에 없었다.

더욱 억울한 것은 그 때의 기록이 남아서 한참 후인 1980년 삼총교육대에 갈 뻔했다는 것이다. 네명중에 두명은 다녀왔고, 나를 포함한 두명은 도망다녔다. 후에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슬그머니 완화되어 나도 기소유예라는 형식으로 도망자의 신세를 면했다. 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기록이 남아서 손해를 좀 본 적이 있었다.

남들처럼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것도 아니고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다른 친구의 행위이기 때문에 나는 상관이 없다고 발뺌을 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네명이 한명을 폭행해서 심한 상해를 입힌 사건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2. 유시민의 서울대 프락치 사건.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되어 국회는 청문회를 하고 있다. 사소한 흠결이라도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야당의 태도도 무조건 비판만 할 일은 아닐 듯하다. 국민연금의 지역가입자 전환이나 소득공제를 잘못해서 추징당한 일이나 얼마든지 추궁을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1984년에 그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있었던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대하여 다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엄혹한 군사독재정권이 학생운동권을 감시할 목적으로 프락치를 대학에 들여보내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언들이 존재한다.

그것에 대하여 신경이 곤두선 학생들이 일부 가짜대학생들을 프락치로 오해한 것인지 진짜 프락치인지 모르지만 감금하고 구타한 일이 있었다. 그 일로 유시민은 실형을 선고받고 죄의 댓가를 치뤘다. 그가 당시 작성한 항소이유서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을 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당시 사건을 수습하는 현장에 유시민이 있었고, 다른 이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자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인 책임을 유시민에게 물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인 처벌도 이미 다 받았고, 공직담임권이 회복된 상태이다. 너무도 오래전 학생시절의 일이기도 하다. 엄혹한 시대상황의 희생양이 된 측면도 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그가 오히려 당당할 수 있는 측면도 있으며, 자신이 직접 저지른 일도 아닌 것을 억울하게 책임진 측면도 없지 않다.

최근 당시 문공부의 지시와 개입으로 사건을 크게 확대하고 유시민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운 것이라는 증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 출신이 당시를 그렇게 회고하는 증언이 이미 나와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공직에 부적합 사유로 부각하려는 태도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 그 무리들이 용서가 안될 것이다. 심지어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유시민이 직접 폭행을 가했다는 증언은 없지만 그 폭행의 무리속에 포함된 그가 여전히 분노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국의 국회의원들이 그 사건을 들먹이는 것은 영 납득이 안되는 일이다. 그것도 청문회 장에서 흠집내기 위한 시도를 하는 모습이 무척 궁색해 보인다.

3.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물론 폭행을 저지른 당시의 내 친구들과 84년 서울대 학생들의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 누군가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해서 대응하는 폭행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철저히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가끔 범죄의 피의자도 억울한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질러진 일에 대하여 연대하여 책임을 지는 경우라면 그 책임을 지는 것으로도 과도한 댓가를 치른 경우가 발생한다.

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여 반드시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일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만일 내가 겪은 경우처럼 오히려 폭행을 당하고도 동료의 더 심한 폭행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져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생기는 것이 세상사이다.

유시민의 경우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진 일을 수습하려다 억울하게 책임을 뒤집어 쓴 경우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런 시각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이미 나와있다. 그가 22년전에 그렇게 억울한 책임을 감당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직담임권을 제한받을 이유는 없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시 정권의 부도덕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국회의 청문회가 더 이상은 공직후보자를 흠집이나 내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도 간절하다. 차라리 그가 가진 정책적 소신을 가지고 문제점을 비판하고 정말 사실에 입각하여 도덕성도 검증하는 자리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피해자들이 억울한 한을 가지고 증언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야당일각의 모습은 차라리 추태에 가깝다. 그가 당시의 상황에서 자리를 피하여 사법적 처벌을 면했다면 장관으로서 도덕성을 갖춘 것으로 판단할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당시의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그렇게 신뢰할 것이 못되는데 그 일에 대하여 판결내용을 사실로 예단하고 공직후보자를 비방하는 일은 속히 중단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니라도 검증할 것이 얼마든지 있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이 정당화 되어선 안된다. 거대한 폭압정권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의 방법으로 폭력이 행사될 수도 있지만 무고한 시민이 대상이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비방하는 청문회는 국민의 입장에서 더 보아 넘기기가 무척 어렵다. 야당의 좀 더 진지한 자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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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김지한 2009/05/13 23:09 # 삭제 답글

    문장이 수려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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