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시급한 것은 사법부가 아니라 검찰 정치

요즘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에게는 사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고 있는 모양이다. PD수첩의 제작진에 대한 무죄선고를 계기로 사법부를 손보고 싶은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일부 수구단체의 노인들은 대법원장과 법관들에게 테러까지 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PD수첩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하등의 결함이 없고 완벽하게 증거와 논리를 갖춘 판결이라는 점이다. PD수첩이 허위사실을 보도해서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집권세력이 검찰을 시켜 무리한 수사를 했고, 무혐의 의견을 가지고 있던 수사팀을 교체까지 하면서 기소를 했다. 당연히 그 들의 유죄를 증명할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

 

PD수첩의 번역을 담당하던 정지민씨의 증언만이 검찰이 의존한 거의 유일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레사 빈슨씨의 어머니가 발언한 변종 CJD는 통상 vCJD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는 곧 인간광우병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인들이 미국의 소송자료까지 제출하여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밝혔고 재판부는 증거에 근거하여 무죄판결을 한 것이다.

 

판결이 나온 후 집권세력의 대응은 치졸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법관들의 연구모임에 불과한 '우리 법 연구회'를 지칭하여 '하나회'를 운운하고, 마치 판사들이 이념에 물들어서 재판을 하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사법부의 개혁을 운운하는 꼴은 더더욱 가관이다.

 

사법부에 여전히 개혁되어야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한 일이다. 문제는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사법부를 개혁의 대상으로 운위하는 꼴은 볼썽사납다는 말이다.

 

또 '하나회'가 무엇인가? 12.12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던 5공 세력이 그들이다. 그들이 만든 민정당이 다른 야당과 야합해서 민자당이 되었고, 이름을 바꿔서 신한국당이 되었다. 또 그 신한국당이 이름을 바꿔 지금의 한나라당이 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들의 뿌리에 침을 뱉으며 그리 당당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을 기반삼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할 민주공화국이다. 박정희 정권시절 사법부가 정권의 입맛에 정확히 맞는 판결들을 주문 생산하던 추억은 이제 버려야한다. 정권에 반대한다고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고, 때로는 법정에 세워 더러운 죄명을 마구 선사하고 투옥하던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할 일이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갔던가?

 

사법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증거와 사실에 근거하여 판결하는 일은 모두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집권세력만 자신들이 마구 권력을 남용하는데 걸림돌이라 느낄 뿐, 매우 옳고 고무적인 일이다. 오히려 그런 판결을 항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모든 권력기관을 손아귀에 쥐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휘두르고 있다. 검찰, 국세청, 경찰, 국정원 등 지난 정권에서 독립적 지위를 확보했던 기관들이 이제 모두 집권세력의 통치수단이 되고 있다. 조선, 동아, 중앙 등 거대신문은 본래 지금의 집권세력을 편들어 왔고, 그나마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독립성을 찾는 듯 했던 방송들도 이제 집권세력을 비판할 수 없는 처지로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사법부조차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 한다면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다. 무슨 왕조국가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지금 시급한 개혁의 대상은 사법부가 아니라 검찰이고, 국세청이며, 경찰과 국정원이다. 국정원은 이런저런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경찰은 이미 국민을 공권력의 힘으로 제압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국세청은 전직대통령의 측근을 편법까지 동원하여 세무조사하고 결과를 집권세력에게 제공하여 정치적 보복을 도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에 뒤질세라 검찰은 측근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수사하였고, 급기야 전직대통령까지 억지로 수사의 대상에 올렸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측근들까지 모두 잡아들여 형벌을 가하며 전직대통령의 혐의를 밝히려고 갖은 애를 썼다. 날마다 확실하지도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려서 여론재판을 가했고, 결국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간 것이다. 지금도 검찰은 여전히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을 겨냥하고 있다. 정권이 좋아하는 일만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의 검찰이 집권세력에게도 엄혹하게 단죄를 가하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PD수첩의 제작진을 기소한 것도 결국 그렇게 정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검찰의 개혁이 화급한 이유가 담겨있다. 검찰이 그렇게 계속 정권에 봉사하게 된다면 그 결과 국민은 주권을 잃고 정권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검찰이야말로 하루속히 개혁되어야할 대상이며 철저히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야할 대상이다.

 

정권의 구미에 맞는 검찰은 극심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음에도 그저 등이나 두들겨주고, 정권의 주문에 맞지 않는 판결이 좀 나왔다고 사법부를 개혁대상으로 거론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잦아든 사회는 이미 독재국가일 뿐이다.

 

누구라도 나서서 집권세력을 비판할 수 있었던 지난 정권이 그립다. 심지어 지금의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대통령을 마음껏 조롱하고 마구 근거 없이 비난하고도 처벌받은 일이 없었다. 당시 혹자는 대통령 욕하는 것이 국민스포츠가 되었다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집권세력이 바로 차마 듣기에 민망한 욕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자신들은 그러한 자유를 누리더니 이제 집권하고 나서 그런 일은 용인하지 않겠다니 참으로 이율배반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고단한 민초들이 집권자를 마음껏 욕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인 것이다. 사는 것이 고달픈데 그런 비판조차 못하게 입막음을 당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사법부까지 자신들의 입맛에 맞고, 모두 집권자를 찬양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민주공화국을 포기하고 속히 왕정을 선포하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이 씨의 나라가 될까?  아마도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세종시의 건설에 얽힌 정치적 함수 정치

한국의 정치권은 지금 세종시의 수정과 원안추진을 놓고 시끄럽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물론 충청권에서의 득표를 위한 전략적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과밀화와 국토의 불균형 발전은 반드시 해결해야할 시대적 과제이기도 했다.


당시 야당의 이회창 후보는 당연히 이런 공약에 반대했다. 자신의 고향이 충청도였지만 그의 정치적 기반은 한나라당이었다. 바로 수도권의 기득권층과 영남의 표를 결집하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기득권에 반하는 공약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거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나고 행정수도의 이전은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특히 2004년 한나라당과 구 민주당의 연합에 의한 대통령 탄핵으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한 후에는 쉽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바로 수도권의 기득권과 관련한 이해득실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이 강력히 반대했을 뿐 아니라 반대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이명박 시장 측과 가까웠고 지금은 법제처장에 기용된 이 석연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도 수도권에 기득권을 상당히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는 그 기득권을 수호하는 쪽으로 결론이 지워졌다. 성문헌법을 가진 국가에서 관습헌법을 들어 위헌이라 했고, 분명히 조선과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의 경국대전을 들어 한성이 수도라는 것을 헌법사항으로 보았다. 아마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차용한 궤변이었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곧 대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것이 바로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건설이었고, 여야가 합의하여 세종시가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당시의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의원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원도 아닐 뿐 아니라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당시의 이명박 후보는 표가 다급한 나머지 소신과는 달리 세종시를 확실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말하자면 당선되고 나서 말을 확실히 바꾼 것이다. 보통 여야가 합의에 의하여 처리한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다시 집권자의 뜻에 따라 뜯어고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물론 정권의 수정주장에도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행정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 것이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IT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청와대와 부처 간의 물리적 거리가 그리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정치권이 바로 이 이슈를 가지고 정치적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할 뿐이다. 그동안 한국의 선거와 정치구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지역감정이었다. 항상 지역감정만 조장하면 한나라당은 백전백승이다. 영남의 유권자가 충청과 호남을 합한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그러한 신화가 깨지고 말았다.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영남의 표를 철저히 독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997년에는 이인제의 출마로 수백만 표를 빼앗겼고, 2002년에는 영남출신인 노무현 후보에게 또 25%가 넘는 표를 빼앗겨서 거듭 패배하고 말았다. 이제 영호남 간의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는 항상 이길 수가 없음을 자각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100% 승리를 장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수도권과 지방의 대결이 그 것이다.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다면 그 어떤 전국단위 선거도 항상 압승이 보장된다. 수도권의 인구가 전국인구의 5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오히려 세종시의 원안추진이 훨씬 필요해 보이는 이유이다.)


또 한 가지의 문제는 차기의 한나라당 후보경선과 관련된 문제의식이 잠재하고 있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박근혜 의원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순순히 내주기가 싫을 것이다. 세종시 관련 법안은 박근혜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서 당시 여당과 합의해서 처리해준 법안이라는 점에서 뭔가 그 공을 축소할 필요도 느꼈을 법하다. 수도권의 기득권을 중심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충청권의 표를 확실히 챙겨둘 것인가 하는 친이계와 친 박계의 선택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것이다.


본래 처음에는 반대를 했으나 지금은 한나라당을 나와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삼는 정당을 만든 이회창씨도 목소리를 제법 높이고 있다. 바로 충청권을 자신의 득표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과 구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정치적 이득을 위한 계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옳은 것이 무엇인지 결론적으로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기로 유명한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인구밀도는 세계최고의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를 고루 사용하지 않고 좁은 수도권에 모두 모여서 북적대고 있다. 교통이 정체되고 공해가 극심해서 도심에서는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이다. 지방의 인구는 줄고 수도권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과연 그렇게 서울을 중심으로 살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지방은 공동화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모처럼 지방에 가면 노인들만 몇 분이 동네를 지키고 젊은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보기 어렵다. 빈집들이 을씨년스럽게 보일 정도다. 점점 인구가 줄어서 더욱 사람이 살기 어려운 시골마을이 늘고 있다. 앞으로는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전국단위 모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일까?


수도권은 점차 과밀화가 심해져서 경제적인 측면의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특히 높은 주거비와 교통비 및 생활비의 문제는 세계의 어느 도시에 비해도 경쟁력이 떨어질 정도이다. 이런 상태로는 수도권도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부적합한 도시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를 국토의 중심부에 건설하고 점차 지방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역사적 책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시를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하는 것은 수도권의 인구과다가 극심할 뿐 아니라 수도권에 그만큼 많은 기득권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수도권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이 세종시의 건설로 그리 타격을 받을 것도 없지만 막연히 피해의식을 갖고 반대한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부도덕성을 돌아봐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찌되건 단지 자신의 금전적 이득만을 극도로 챙기는 것을 어찌 도덕적이라 하겠는가? 부도덕한 국민은 항상 부도덕한 정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도덕이 유행인가보다.


돈과 정치권력에 기생하는 언론 사회,문화,교육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언론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공기이다. 정치권력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여론을 형성하여 정치구도에 직접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건강한 언론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각 언론기관에 요구되는 도덕적 책임도 엄중할 수밖에 없다. 언론이 그릇된 역할을 수행하면 공익을 해하는 흉포한 흉기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을 세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언론은 최소한의 공정성을 항상 유지하여야한다. 정치가 모든 사회적 이해갈등을 조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언론은 그 과정을 공정히 다루는 심판에 해당한다. 당연히 불편부당한 태도를 유지하여야 마땅한 일이다.


둘째, 정직성이다. 사익을 추구하며 공익을 가장하는 교활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이익을 겨냥하여 교묘한 왜곡을 일삼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런 의도를 숨기고 자신들이 마치 공정한 심판인 양 가장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셋째, 독립성이다. 돈이나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는 그 사회를 송두리째 좀 먹는 일이 되고 만다. 특정한 정치세력과 유착하여 그 들이 유리하도록 하거나, 특정한 정치세력과 과도한 적대감으로 그 들이 불리하도록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흔드는 일이다. 재벌과의 유착 또한 경제정의를 해치고 다수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그 외에도 언론이 갖춰야할 덕목이 많을 테지만 이 세 가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 기준들을 가지고 한국의 주요언론들을 평가하는 일은 무척 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쉽게 이러한 원칙들에 배치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서 정성들여 살펴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신문시장의 70%를 소위 말하는 '조.중.동'이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그 들의 공정성은 어떨까?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잘못된 영어를 사용하여 네티즌들의 비웃음을 산 일이 있다. 공화당 primary에서 패한 줄리아니 전 뉴욕주지사에게 했던 말이다. (Why don't you ask me know-how to win the primary.) 시제도 틀리고 어휘도 부적절한 표현을 했음에도 다음날 동아일보에는 'MB식 영어 소통에 문제없었다.'라고 찬양기사가 나왔다.


반대되는 예를 들어보자. 2002년 12월 19일 대선 당일의 조선일보에는 아주 섹시한 제목의 기사가 떴다. 제목은 '정몽준도 노무현을 버렸다.'는 제목으로 정몽준의 후보단일화 철회 및 지지철회가 지극히 옳은 결정인 것처럼 보도하였다. 지지철회라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 아니라 명분도 이유도 따지지 않고 특정 대선후보가 당연히 버려져야 한다는 식의 보도를 한 것이다. 이런 일 외에도 공정성을 문제 삼을 기사는 매일매일 셀 수도 없이 많다.


또 위의 예에서는 정직성의 결여도 분명히 눈에 보인다. 자신들의 사적이익을 위해서 유리한 정치세력을 편들고 반대쪽을 깎아내리면서도 스스로 거룩한 심판의 모양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심판의 옷을 입고 한쪽 팀의 선수로 열심히 뛰는 모습에서 정직성이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다. 또 그 들의 그런 행태에서 스스로 언론기관의 독립성을 버리고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위해 눈물겹게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제문제로 가서 다시 살펴보자. IMF외환위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지만 당시의 정권이 구미에 맞았던지라 연일 정부가 주장하는 '한국경제 끄떡없다.'를 되풀이 하였다. 이어 정권이 바뀌자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정부를 열심히 비판하며 건전한 언론의 역할을 운운하기도 하였다.


외환위기가 일부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극복되었지만 그 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에는 또 연일 경제파탄 론을 설파하기에 바빴다. 일인당 GDP가 $20,000인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을 불과 몇 천불에서 허덕이는 중국, 인도, 베트남과 비교하며 성장률이 너무 낮다며 마치 정권이 무능해서 그런 것처럼 주장하였다. 물론 당시의 한국경제는 적어도 3%후반에서 5%사이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으며, 이는 선진국은 물론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보다 높은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지금까지 한국의 극심한 경제적 침체를 겪고 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의 잘못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시스템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파급된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들은 연일 한국이 선진국에 비하여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명박 정권의 공덕을 찬양하고 있다. 왜 이번에는 한국보다 훨씬 빨리 회복하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지 않는 것일까?


지난 정권에서는 대통령이 자원외교를 위해 수많은 나라를 방문하고 많은 결실이 있었음에도 크게 보도한 일이 없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다수는 모르고 지나간 일이다. 그런데 지금 정권에서는 별것도 아닌 공사수주조차 대통령의 공으로 대서특필을 한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을 50%대로 올려놓았다.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이다. 아마도 각하께서 잊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얻을 기대이익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에 정직한 보도는 애당초 기대할 일이 못된다. 공정성, 정직성, 독립성은 한국의 주요 신문에게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뿐이다.


이들 신문사에게 앞으로 돌아갈 이익은 과연 무엇일까? 무수히 많겠지만 우선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만 보더라도 대단한 것이다. 점점 종이신문 장사가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들 신문에게 방송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 미디어법이 바로 그 것이다. 지금 이들의 보도는 이명박 정권에게의 충성경쟁에 불과하다. 그 들에게 방송을 하나씩 모두 나눠주기에는 모자라고 결국 더 많은 충성을 보여야 탈락하지 않고 하나를 얻어 챙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보도를 보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그런 신문을 여전히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 것도 아까운 돈을 내고 본다면, 당신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다. 혹시 지나치다 흘깃 보게 되더라도 그 들이 보도하는 것이라면 정확히 반대로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정하지도 않고, 매우 부정직하며, 독립성이라곤 처음부터 추구하지도 않았던 신문에서 세상의 흐름을 읽으려 한다면 소경에게 길을 안내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그 것들은 독이다. 눈을 씻고 찾아도 약될 일이라곤 없다.


검찰, 국정원,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만 무서운 해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사회적 해악은 바로 정치구조조차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바꾸곤 해 왔던 거대신문들이다. 이 들은 국민이 원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일조차 방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진정으로 무서운 민주주의의 적은 바로 잘못된 언론이다. 정권과 혼연일체가 되어 주거니 받거니 이익을 챙겨 나가는 이들이 마치 독버섯처럼 사회전반을 오염시켜 나가고 있다. 오히려 국민의 의식 속에 조금씩 독버섯의 포자를 퍼뜨리고 있는 중이다. 생각하면 소름이 돋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들이 원하는 사회는 무엇일까? 생각해볼 일이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인가? 정치

본래 검찰의 의무는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를 법의 이름으로 추상같이 단죄하되, 선량한 시민을 법의 이름으로 보호하는 것이 바로 사회정의일 것이다. 다만 자신들의 업무처리에 있어서도 법률적 절차를 지켜야하고 법에 복종해야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검찰을 그리 달가운 시선으로 바로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들을 마치 저승사자처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자신의 행위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선량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표적이 되기만 하면 처참한 곤혹을 피할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검찰은 두려운 존재일 뿐 달가울 리가 없다.


그 동안 검찰의 수사로 인하여 희생된 목숨이 수 없이 많았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검찰의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이 검찰의 수사도중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야했다.


그렇게 유명한 분들도 검찰의 손에서 목숨이 유린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힘없는 서민들은 오죽하겠는가? 혐의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자신들의 수사대상을 처벌받도록 만들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고, 그렇게 기소와 승소에 집착하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의미인 사회정의는 의미가 박약한 것이다.


문제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 사례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리 드물지 않다. 과거 어떤 중소기업에 근무하던 시절 직접 목도한 사건이다. 기계의 수입과정에서 법해석의 차이에 따라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면서 수 십 억대 밀수사건으로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혹시라도 피의자 측의 반격이 있을까 싶어서 미리 검사가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공소유지가 어려워지자 검사가 스스로 피의자와 모종의 거래를 시도한다. 유죄를 이끌어 내는 대신 집행유예로 조기에 재판을 종결하고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재판부와 변호사까지 협의가 된 일이었다. 끝까지 싸우면 무죄를 자신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심한 고초를 더 이상 겪기 싫은 피의자는 결국 포기하고 제안을 받아들여 유죄를 인정하고 말았다. 신속히 옥고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검찰의 입맛대로 요리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썩어빠진 언론과 검찰이 유착을 형성하여 누군가를 노린다면 그 대상은 여지없이 엄청난 피해를 입거나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수많은 기업인과 유명 정치인 그리고 훨씬 더 많은 민초들을 검찰은 희생시켜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부끄러운 줄을 전혀 모르고 자신들의 조직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산다.


언론에 더하여 정치권력까지 합세하면 정말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다. 군사정권 시절 인혁당 사건처럼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주문생산 기소까지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들 이들의 손아귀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결국 죽음으로 내몬 과정에서 과연 검찰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하여 그렇게 집요한 노력을 했을까 의문이다. 상대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혀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정치권력의 시도라고 의심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매일 확실치 않은 피의사실을 브리핑하여 언론에 보도되도록 해서 누가 이익을 얻을지를 생각해볼 일이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그룹 중에서 나름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의 새로운 표적이다. 이번에도 역시 몇몇 언론과의 피의사실 흘리기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또 하나의 노무현을 만들고 그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검찰이 마치 살인마처럼 인명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각인되는 것은 온 국민의 불행이다. 검찰은 이 땅의 양심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찰이 철저히 달라져야한다.


첫째, 피의사실을 공포하는 행위자를 색출하여 재판정에 세워야한다. 노 전 대통령의 수사상황을 하루하루 브리핑하여 온 국민에게 홍보한 홍모 검사, 지금 또 언론에 혐의를 흘리며 교묘히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그 누군가를 재판정에 세워서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불법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검찰의 단죄라면 누구도 달게 받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끊고 독립적 기관으로 서야한다. 스스로의 기득권을 버리고 검찰을 독립시킨 전 대통령마저 자신이 독립시킨 검찰의 손에 희생된 마당에 기대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검찰의 권력은 너무도 막강하여 정치권력과 유착을 반드시 끊어야 옳다. 지금 검사들의 정치권 진출통로로 역할을 하는 정당이 어느 당인지 살펴보면 문제가 한눈에 보일 것이다. 바로 그 문제를 국민이 나서서 응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기소권의 독점에 대한 적절한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고위공작자를 수사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서 검사들도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유효하게 작동될 수 있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그 들이 스스로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처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둬야 하는 것이다.


넷째, 검찰조직의 일체감을 깨야한다. 모두가 제 식구 감싸기를 하며 서로서로 보호해주는 일이 있어서는 정의를 말할 자격조차 없다. 그들은 이미 패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누구의 어떤 잘못도 자신들의 조직원이라면 단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들에게 국민은 피해를 입고 있다. 조직 폭력배와도 매우 흡사한 일체감은 하루속히 버려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은 검찰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희생되는 정치인이 없어야 한다. 또 국민들도 검찰이 죄지은 일없이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지 않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적 의도에 의하여 검찰이 사용되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검찰도 법 앞에 평등한 존재로 스스로 겸손히 자리매김하는 날이 오려면 국민의 깨어있는 의식과 판단력이 절실한 일이다. 국민은 민주공화국의 주인이자 최후의 심판을 내리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4대강 정비사업에 집착하는 정권 경제

한동안 잘 나가던 중동의 두바이가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버즈두바이가 건설되고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몰려들며 흥청거리던 그 곳이 이제는 세계경제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두바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 두바이에는 많은 돈이 몰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엄청난 규모의 건설공사가 시작되고 건설노동자들을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버즈두바이는 바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상징물일 것이다.

 

하지만 리먼부라더스 파산과 미국의 파생금융상품 대란이 이어지며 세계경제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유가는 급속히 하락하고 두바이도 점차 일자리가 줄어들며 건설노동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점차 유입되던 자본들도 조금씩 이탈이 시작되고 두바이는 썰렁한 공사현장들이 곳곳에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바로 토목과 건설로 형성된 버블의 붕괴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철을 대한민국이 밟으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정비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경제가 위기국면을 벗어나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토목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더 많은 버블을 만들고 위기의 원인을 키울 뿐 장기적으로 이로울 것이 없는 일에 혈세를 쏟아 붓는 일이다.

 

정권이 내세우는 4대강 정비사업의 필요성도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첫째, 4대강을 정비하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주장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수질은 오히려 크게 악화될 것이다. 수중보를 설치하고 바닥을 준설하면 자연적 흐름을 잃은 물은 고여서 썩을 것이 뻔하다. 그 물을 상수원으로 쓰려면 또 다시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여 수질개선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 홍수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 또한 전혀 근거가 없다. 한국이 강수량의 계절적 편차가 심하여 홍수를 자주 겪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4대강의 주류에서 홍수가 나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홍수가 지류나 소규모 하천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왜 4대강을 정비하여 홍수를 대비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지류나 소규모 하천을 정비하는 것이 예산도 적게 들고 효과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셋째, 인공적 구조물이 설치되면 될수록 끔찍한 흉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구조물들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여 복원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것이다. 과거 현대건설이 맡아서 했던 한강의 구조물이 생태계를 살려서 한강에 물고기가 살게 되었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한강의 생태계 부분복원은 수질 오염원을 찾아서 오폐수 처리를 효과적으로 했기 때문이지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되고 바닥이 준설돼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넷째, 4대강을 정비하면 관광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기까지 하다. 아무도 자연생태계가 살아있지 않은 인공구조물을 구경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인공구조물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대상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천들이 관광수입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자연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결코 인공구조물과 준설 때문이 아니다. 시드니의 곳곳을 강처럼 흘러드는 좁은 바다물길도 자연과의 조화가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다.

 

4대강 정비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대선 때 내걸었던 대운하를 위한 사전작업이 아닌 가 의심하는 국민들이 많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는 만큼 국가재정의 악화를 피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걱정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일이라면 정권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옳다. 그 것이 민주주의 원리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토목사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건설업 경기는 좀 나아질 수 있다. 또 일시적으로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의 고용사정은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임기응변적 처방에 엄청난 국고를 쏟아 붓고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정권을 잡은 세력은 경기가 좋은 것처럼 국민을 속이기 위하여 토목과 건설에 재정을 투입하고 싶어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늘 그렇게 국민을 속여서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확대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후에 다가올 후유증과 후폭풍은 고스란히 서민대중에게 전가되어 왔던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자에게 마약을 늘려서 투입하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만들지만 후에 중독의 정도가 더욱 강해지면 점점 치료만 어려워질 뿐이다.

 

서두에 거론한 두바이가 좋은 예이다. 건설수요가 과도하게 부풀려지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착각에 빠지지만 곧 다가올 엄청난 고통은 누가 나서서 감당할 것인가? 이제 한국의 경제규모도 세계에서 12위와 13위를 오가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는 토목과 건설이라는 마약을 끊고 견실한 장기적 토대를 다져야할 때가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소득층의 시장참여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거주비와 집값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사교육비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도록 교육제도를 보완하는 일도 절실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계상황에 노출된 극빈층을 구제할 수 있도록 복지재정의 확충이 절실한 과제이다.

 

복지재정은 토목공사비와 달리 곧 저소득층의 소비활동이 사용될 것이고, 그 것은 또 기업에게 시장기회를 확대해줄 것이다. 이는 또 고용시장의 상황을 개선하고 경제를 선순환 하도록 유인하게 된다.

 

이제는 버즈두바이를 볼 것이 아니고, 4대강 정비사업과 같은 토목공사를 벌일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기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경제는 토목과 건설이 살린다는 구시대적 사고를 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질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면 설혹 일시적으로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거대한 규모의 국가재정을 토목공사에 투입할 것이 아니라 서민복지에 직접 지출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일이다. 부디 토목공사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사고에서 그만 깨어나 주기를 바란다. 이 일은 정권의 명운이 달린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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