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0일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올림픽 선수단이 연일 선전하고 있다. 선수들의 승전보가 전해질 때마다 국민들은 환호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승패와 상관없이 선수들이 그 동안 흘렸을 땀과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올림픽은 확실히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 같다.
올림픽의 최대 수혜자는 집권세력.
이명박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인사난맥상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던 시기에 올림픽이 열렸다. 촛불집회로 대변되는 국민적 저항은 정권을 곤란한 처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곤란한 처지의 정권은 올림픽을 계기로 점차 자신감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국민의 관심이 온통 선수들의 선전하는 모습에 쏠리는 동안 정권의 지지율도 상당히 회복되었다고 한다. 선수단이 금메달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1%씩 올라간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이다. 확실히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 선전하는 동안 정권은 그 수혜를 입고 있는 것이 사실처럼 보인다.
정권은 올림픽을 정권홍보에 활용하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못한다. 대통령이 직접 우리선수들을 응원하러 나가고 장관들이 관심이 높은 경기에 자주 나타난다. 특히 소관부처 장관인 유인촌 씨는 중계방송 화면에 등장하는 일이 잦다. 선수단과 정권이 일체감을 갖는 것으로 비춰지면 확실히 정권에 대한 여론반전에 도움이 될 것이고, 정권은 그 것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문제도 있었다. 대통령이 응원중 거꾸로 된 태극기를 흔들어서 국민의 눈총을 받았다. 과거의 전례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거센 비판에 직면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또 실제로 네티즌들의 비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를 회복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특별히 잘한 일이라곤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지지율이 회복된 것이다. 물론 올림픽만의 덕으로 해석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국내외 정치,경제적 상황이 지지율 상승에 연결될만큼의 변화가 없었다. 결국 올림픽 수혜설을 부인할 수는 없는 상황임이 확실해 보인다.
대규모 퍼레이드?
대한체육회는 선수단이 귀국할 때 대규모 퍼레이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참가해서 인천공항부터 서울 청계광장까지 가는 코스까지 정해진 모양이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방안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참석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것은 대한체육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바로 선수단의 국민적 인기와 환호에 편승하여 정권의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3S(Screen, Sex, Sports)로 국민의 관심을 끌어 정권의 입지를 강화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전두환의 폭압통치 시절을 상기해 보자. 선전하고 돌아온 선수단을 무개차에 태워서 서울시내를 행진하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환호를 보냈다. 또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통화하는 장면을 방송하곤 하였다. 지금 이 시대에 그러한 장면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기분은 그리 상쾌하지 못하다.
대한체육회의 위상을 강화하고, 선수단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퍼레이드가 계획된 것이라고 한다. 대한체육회의 위상이 선수단 퍼레이드를 하면 제고되는 것인지 의문일 뿐 아니라, 선수단의 사기는 그런 겉치레와 전혀 상관없이 이미 높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의도가 더욱 의심스럽다. 이미 다양하게 발달한 매체들과 인터넷을 통해서 선수단은 국민들의 격려와 환호에 충분히 노출되고 있다. 대한체육회의 지원활동에 대한 평가도 충분히 내려지고 있다.
선수들에게 자유를...
대한체육회가 일하는 방식에 대하여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수영에서 새로운 금자탑을 쌓은 박태환 선수의 경우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는 자유형 400M에서 동양인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M에 출전해서 은메달을 땄다. 비록 연습을 병행하기 어려웠던 1,500M에서 예선탈락을 했지만 그는 국민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 그에게 예기치 않았던 고문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 4년을 절치부심하며 열심히 훈련하였고, 훌륭한 성과를 냈다. 경기가 모두 끝난 그는 하루속히 귀국해서 가족들과 서로 기쁨을 나누고, 휴식도 취하며, 보고싶은 친구들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25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며 선수단을 응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 것도 텔레비젼도 없는 숙소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박태환 선수처럼 훌륭한 성과를 내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선수조차 그런 상태라면 다른 우리선수단은 오죽할까 싶다. 많은 선수들이 25일 있을 대규모 퍼레이드에 억지춘향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 없이 안쓰럽다. 그들은 지금 그동안의 훈련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감내해왔다. 이제 경기가 끝났으니 가장 그리운 것은 가족과 친구와 휴식이다. 대한체육회의 의도로 인하여 선수들의 자유가 심각히 구속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가 끝난 선수는 성적에 불문하고 충분한 휴식이 당연히 주어져야옳다. 그들을 여하한 명분으로도 퍼레이드등에 동원하는 일은 비민주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선수들이 엉뚱한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마땅하다. 경기가 끝난 선수들을 왜 억지로 붙잡아두려 하는가? 이런 일련의 일들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강변한들 누가 얼마나 믿어줄 수 있겠는가?
경기가 끝난 선수들에게 이제는 충분한 휴식과 자유를 허하라. 그렇지 않고 퍼레이드 운운하는 것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깃든 것으로 해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왜 열심히 잘 싸운 선수들이 정치적으로 활용당해야 하는가? 대규모 퍼레이드는 지금이라도 즉각 취소하는 것이 옳다.
그 것이 아니라도 이미 국민은 선수들에게 뜨거운 환호와 격려를 전하고 있다. 또 그러한 반응들이 실시간으로 잘 전달되고 있다. 대한체육회의 노력과 성과도 적절한 평가를 이미 받고 있으며, 위상도 충분히 올라갈 것이다. 정치적 의도가 깃든 행사를 끝내 추진한다면 오히려 대한체육회의 위상은 정치적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급전직하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충분히 선진국의 흉내를 내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어느 선진국이 올림픽 선수단의 대규모 퍼레이드를 하겠는가? 지금은 차라리 선수들에게 잠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선수들은 또 다음을 위해 땀흘리고 훈련한 일이 남아있다. 잠시라도 짬이 있을 때 그들이 충분한 자유를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대한체육회가 시급히 할 일이다.
# by 비토세력 | 2008/08/20 10:56 | 사회,문화,교육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8월 18일
올림픽이 한창 국민의 눈과 귀를 앗아가는 지금 공기업에 대한 선진화(?)가 진행되고 있다. 해묵은 논쟁거리였던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민영화는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진행되는 것일까? 과연 지금 진행되는 정권의 공기업 처리방향이 국익에 합치하는 것일까? 마치 민영화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기업은 무엇인가?
공기업은 지분에 대한 소유지분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각기 담당하는 고유업무를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정부가 압도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형식적으로는 당연히 공기업이다. 그러나 고유한 업무를 중심으로 본다면 본질적인 공기업이 아닌 상당수의 공기업이 존재한다.
특히 외환위기를 맞아 민간기업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지분을 정부가 인수하여 공기업이 된 기업들이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면 쌍용건설, 대우조선, 그리고 우리금융지주 등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기업들은 잠정적으로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것일 뿐 업무상 공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민간부문이 담당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정부가 출자하여 운영하는 공기업도 있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서는 생산이 안되거나 자원배분의 과정에서 시장실패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이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 필연적으로 독과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업, 경제성이 없어 민간이 공급을 회피하는 사업등 바로 본질적 의미의 공공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본질적 공기업이다.
공기업은 개혁의 대상인가?
많은 사람들이 공기업에 대하여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늘 있었다. 그들이 생산하는 재화나 용역이 고비용에 생산되고 공급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질 뿐 아니라 가격에 전가되지 못한 원가는 국민이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공기업의 경영주체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서 생산성에 상관없이 높은 임금을 책정하여 받거나, 재원을 낭비한다고 여겨진다.
일 리가 있는 지적이다. 민간기업의 경우 주인인 대주주가 나서서 강력한 감시와 통제를 가한다. 대주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당연히 조직이 효율성을 높이게 되고 성과지향적 노력을 하게 된다. 확실히 사기업이 높은 업무효율성을 나타내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비하여 공기업의 경영은 방만한 측면이 불가피하다. 국민 모두가 주인이기 때문에 누구도 주인이 아닌 현상이 벌어진다. 말하자면 선량한 청지기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필연적으로 경영진이 스스로 거액의 상여금을 지급하고, 법정요건을 초과하는 퇴직금을 지급하는 일도 빈번하다. 업무의 처리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고의적으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일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기업은 완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정부의 지속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또 감사원이나 소관부처의 감사를 받아야한다. 때로는 경영에 대한 평가를 받으며, 평가결과에 따라 인사는 물론 처우가 달라지는 일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업들이 완전 방치된 것처럼 전제하고 논리를 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또 여러가지 통제장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의 대명사처럼 방만한 공기업이 있다면 그 것은 행정부가 일을 잘못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예산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며, 결산을 감사할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 여전히 방만하게 운영되도록 방치하였다면 정부가 일을 잘못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기업의 비효율은 정부의 잘못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공기업의 임직원을 탓하기에 앞서 감시자의 역할과 통제권을 적절히 행사하지 못한 정부를 탓하는 것이 먼저이다. 정부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비효율이라면 공기업의 성격상 피할 수 없는 것이거나 감수해야할 수준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공기업은 일정부분 비효율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공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공익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오로지 효율성과 이윤만을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제거가능하고 제거해야할 비효율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정부의 몫이다. 항상 공기업이 개혁의 대상일 뿐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자체로 편견이거나 여론몰이의 결과일 가능성도 높다.
공기업의 바람직한 변화방향은?
공기업은 우선 업무의 성격을 바탕으로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 과연 공공적 필요성이 높은가? 독과점적 특성을 갖는가? 필수적인 것이나 이윤창출이 불가능한 것인가? 이러한 기준으로 분류한 후 거기에 적합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옳다.
첫째, 공공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고, 독과점적 특성이 없으며, 이윤을 창출하기에 충분한 경우이다. 이러한 공기업은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신속히 매각하는 것이 옳다. 예를 들면 쌍용건설, 대우조선, 우리금융지주는 본래 사기업이었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공기업이 되었다.
고려할 사항은 기술의 해외유출이나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가장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는 시점을 정해야 한다. 해외자본이 인수하여 핵심기술을 빼돌릴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그렇게 매각하여 회수된 공적자금이 낭비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국가채무를 상환하고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공공재만을 생산하지는 않고, 독과점적 특성도 희박하며, 이윤을 충분히 창출하고 있는 공기업이다. 예를 들면 주택공사나 토지개발공사 같은 공기업의 경우이다. 일반 주택을 건설하여 분양하거나 택지를 개발하여 민간부문에 공급하는 등 마치 건설회사와 똑같은 업무를 한다. 또 충분히 과도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을 겨냥한 사업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서민주택의 분양이나 임대주택의 건설등은 분명한 공익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이 일반 건설회사처럼 주택건설과 분양에 나서는 것은 그 재원을 서민의 주거안정에 사용하기 위함일 뿐이다.
그들이 과도한 이윤을 창출했다면 그것은 정부의 경영평가의 방법이 불합리하여 조장한 것에 불과하다.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 있으니 정부가 스스로 방향을 수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옳다. 특히 경영평가에 있어 기준은 이윤창출이 아닌 공익의 창출이어야 한다.
셋째, 공공재를 생산하고 있고, 독과점을 피할 수 없으며, 이윤을 창출하기에 쉽지않은 부문이다. 한전, 의료보험, 상수도 등에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부문은 공공재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야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독과점을 피할 수 없다. 이윤을 창출하려면 국민의 부담을 늘려야한다.
이러한 사업들은 부분적으로 비효율이 존재하더라도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 옳다. 민영화는 절대로 피해야할 일이다. 사기업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대주주의 이윤을 위한 동기가 작용하는 것이다.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민영화가 되는 순간 내부의 효율성은 증가할 테지만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를 막을 길이 없어진다. 전기, 의료보험, 수도등이 사기업의 독점적 이윤추구에 맡겨진다면 서민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질 것이다.
민영화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뭐든 민영화를 하면 효율성이 높아지고 저절로 낮은 가격에 질 높은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소박한 생각이다. 민영화가 이미 서민들을 사지로 몰아간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목도하고 있다. 미국의 의료비 폭증과 캘리포니아 정전사태는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한다. 공기업이 경영상 내포하는 부분적 비효율을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사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부리는 횡포를 감내할 것인지 말이다. 공기업은 정부가 통제할 길이 얼마든지 열려있다.
그러나 사기업에 정부가 통제를 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사기업이 극대화를 추구하는 이익을 서민대중이 모두 충당해주려면 민영화로 제거된 비효율보다 훨씬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민영화된 공공부문에서 쏟아져 나올 실업의 문제도 서민대중이 감내하지 않으면 안될 또 다른 문제이다.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높여진 효율성이 대기업과 재벌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기여하고도 모자라 더 많은 부담을 서민에게 요구한다면 감내할 수 있겠는가? 민영화는 부메랑이 되어 서민대중을 겨냥할 것이다. 민영화는 함부러 찬성을 일이 결코 아니다.
본래 사기업이 해야할 일은 하던 공적자금 투입기업은 적절한 절차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민영화해야한다. 민간기업과 역할충돌을 빚는 공기업은 그 역할을 분명하게 정리하여 공익을 창출하도록 통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할 수 밖에 없는 필수적 공기업은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민영화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주장하는 우리사회 일각의 주장은 기득권층의 더러운 욕망을 대변할 뿐이다.
# by 비토세력 | 2008/08/18 11:40 | 경제 | 트랙백 | 덧글(3)
2008년 08월 13일
이명박 정권이 광복절을 맞아 대규모 특사를 단행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사면을 단행한 것인지 모르겠다. 오로지 우리사회의 유명인사들이 망라되었다는 것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정권이 사면의 명분으로 제시한 것은 국민화합과 경제살리기이다. 화합이라는 단어는 항상 사면 때마다 붙여졌던 것이다. 그러니 이번 사면의 명분은 경제살리기인 셈이다.
재벌총수는 경제인인가?
대규모 기업집단을 우리는 재벌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런 재벌의 모임을 경제계라 칭한다. 또 재벌의 총수를 경제인이라 한다. 재벌이란 단어는 이미 우리의 고유한 단어로 영어사전에 올라갔을 정도이니 언급하지 않겠다.
과연 재벌들의 모임은 경제계라 부르는 것은 타당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재벌은 사실 경제력이 과도하게 편중된 우리의 경제구조적 문제점을 말해줄 뿐 그 자체로 경제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 많은 건전한 중소기업이 있다. 기업만이 경제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재벌들의 집단을 경제계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마치 그들이 잘되는 것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것처럼 호도되기 쉬운 용어의 혼용일 뿐이다.
재벌의 총수들은 경제인일까? 이 것도 역시 아니다. 본래 경제인이란 가장 합리적으로 소득활동을 하고 가장 합리적으로 소비에 참여하는 사람을 일컽는 말이다. 그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의 재벌총수들은 도저히 경제인이라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불법과 탈법을 밥먹듯이 하는 재벌의 총수들이 경제인일 수는 없다. 그들은 비경제인이다. 그들을 경제인이라 칭하는 이유도 역시 그들에게 한국경제의 흥망이 달렸음을 강조하기 위한 음험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결국 사면의 대상으로 선정된 재벌총수들은 경제인이 아니다. 따라서 경제살리기를 위해서 그들을 사면했다는 논리도 뜯어볼 구석이 많아 보인다. 그들을 사면하고 그들에게 혜택을 주면 마치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기득권층을 비호하는 거짓 논리일 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법질서를 조소하는 이 말이 널리 퍼졌다.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는 잣대가 일관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민이 아기에게 우유를 사먹일 돈이 없어서 작은 절도죄를 범하면 추상같은 처벌을 내려지고, 재벌의 수백억, 수천억을 꿀꺽하면 관대한 처벌이 내려져왔기 때문이다. 네티즌의 사소한 사실관계 오인에 의한 잘못된 글쓰기가 강력한 처벌을 받는가 하면, 힘있는 정치인들의 거대한 범죄가 종종 관대한 처분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판결문을 쓸 때 자주 애용하는 문구가 있다. '죄질이 무거우나 그 동안 기업을 하면서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하여...' 이런 문장이다. 정치인의 경우도 그러한 방식의 면죄부성 판결이 내려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제적 기득권층,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데 사법부가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서 법질서는 힘없고 돈없는 서민들에게만 추상같이 지켜라고 강요하였다.
이러한 풍토는 법의 철학을 무시하는 일이다. 법이란 강자들이 함부러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는 사회에서 약자를 법의 이름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돈이 많거나 힘이 센 사람은 법의 보호가 그리 절실하지 않다. 차라리 법이 자신들의 힘을 제약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이 없다면 힘없는 서민들은 항상 죽음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는데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법부는 항상 국가경제에의 기여를 말하고, 사회에의 기여를 말하며 강자들만을 철저히 비호해왔다. 오죽하면 탈주범의 입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절규가 나왔겠는가? 사법부는 스스로 통렬한 반성과 뉘우침이 있어야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도모지 법질서를 지킬 수도 없을 뿐 더러 법의 보호가 필요한 약자들만 법을 지켜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사법부가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 항상 관대한 처분을 해 왔던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가진 사법권조차 늘 기득권층에게 혜택이 주어진 것은 더더욱 불행한 일이다. 특히 이번에 단행된 특별사면의 경우는 극명하게 기득권층에게 혜택이 집중된 특징이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경우 이미 사법부의 판결자체가 문제가 되었던 경우이다. 상투적인 경제에 기여도를 감안한다는 이유로 죄질에 비하여 가벼운 처벌이 내려졌다. 그 것도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대상이 되었다. 이미 법원이 명령한 사회봉사 명령조차 아직 극히 일부만 이행된 상태이다. 수백억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빼돌린 혐의가 이렇게 가볍게 해결되고 말았다.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 심각한 폭행치상 및 교사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사건이다. 판결에 있어서 역시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이유로 처벌이 관대해졌다. 그런데 그 마저도 이렇게 사면이 되고 말았다. 과연 평범한 서민이 그러한 폭행혐의를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의 경우도 그렇다. 사실 분식과 편법으로 엄청난 국가경제적 파장을 일으켰던 인물이 아닌가? 시일이 꽤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때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분노를 느낄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재벌의 총수이기 때문에 사면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밖에도 수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사면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는 법질서를 지킬 기득권층이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가 되면 사법부가 관대하게 판결하고, 정권이 얼마안가 사면복권을 해버릴 것인데 준법의지를 다질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한 사면은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 아닐 수 없다.
법질서만 지켜도 경제성장률이 1%는 높아질 것이라고 발언했던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가 말한 준법은 기득권층을 제외한 서민들만의 준법을 말하는 것인가? 스스로 이렇게 법질서를 허물어 버리는데 과연 서민들이 법질서를 존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경제살리기를 말하고 있다. 과연 범죄를 저질러서 한국경제에 타격을 입히거나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킨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해주면 저절로 경제가 살아날까? 그들에게만 의존하여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정도라면 우리경제는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또 앞으로도 언제든지 무너질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법질서를 지켜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경제가 진짜 경제이다.
기득권층은 더욱 법을 지켜야...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은 법질서의 혜택을 더 많이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재산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도 법질서가 살아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니 더욱 법질서를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할 처지에 있다. 가진 것이 많은 자가 지킬 것도 많은 법이다.
그런 그들이 법질서를 넘어서는 특혜를 요구하고 그것을 즐기려 한다면 결국 우리사회는 지탱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지킬 것이라고는 목숨과 몸뚱아리 뿐인 서민들이 오히려 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회는 확실히 이상하다. 지켜야할 기득권이 더 많은 자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준법하는 것이 옳다.
또 사법부는 그런 기득권층의 불법에 추상같은 처벌을 가하여 법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옳다. 대통령은 절대로 기득권층을 위해 사면권을 사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재벌총수는 관대한 처벌을 받고 곧 사면되는 반면, 노동자는 절박한 처지에 파업한번 하고는 장기간 철창신세를 져야 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켜야할 것이 많은 자들부터 철저히 법질서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들이 먼저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법을 존중할 때 비로서 지킬 것이 별로 없는 서민들도 법질서를 존중할 것이다. 그들의 범죄와 거기에 따른 처벌은 국가경제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범법행위가 국가경제를 심각히 위협할 뿐이다.
힘있고 돈많은 자들이 먼저 나서서 사회질서를 위해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들과 그들을 봐주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법부 그리고 그나마 남은 죄의 대가를 사면해주지 못해서 노심초사하는 정권이 있는 한 이미 이나라는 법치주의 국가라 볼 수가 없다.
# by 비토세력 | 2008/08/13 13:11 | 정치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8월 13일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연일 선전하며 승전보를 전하고 있다. 벌써 금메달을 5개나 땄다. 은메달이 6개, 동메달도 1개다. 당초 예상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높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또 선수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이나 선수단의 임원들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이해할 수 없는 눈물.
우리는 종종 선수들이 경기후 눈물을 흘리는 경우를 본다. 결과가 좋아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도 있고, 결과가 좋지 않아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도 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는 항상 환호와 안타까운 탄성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금메달을 따서 환호하거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아름답다.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이나 동메달이라도 환호하고 기뻐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금메달이 아니라도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런데 유독 한국 선수들의 경우 은메달을 따고도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짓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유도에서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왕기춘 선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하게 8강전에서 갈비뼈에 부상을 입었다. 고통스러워 다음 경기를 포기할수도 있었다. 하지는 그는 최선을 다해서 결승에 올랐고, 은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그런 그가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려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가 한국유도의 간판스타 이원희 선수를 이기고 올림픽에 나간 것은 사실이다. 그랬기에 그에게 금메달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이원희 선수나 국민들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다. 선발전에서 당당히 이원희 선수를 이겨서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기 때문에 이원희 선수에게 미안할 일이 아니다. 부상투혼까지 발휘하며 노력한 것만으로도 국민에게 박수받을 일이지 죄송할 일이 아니다.
물론 그 선수의 타인에 대한 배려어린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것을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새 금메달이나 좋은 성적에만 너무 열광하고 집착하였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특히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상당한 예우를 하는 것과 달리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분명히 고쳐야할 잘못된 일이다. 국민의 인식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왕기춘 선수 외에도 우리는 많은 안타까운 경우를 보게 된다. 경기중 다리근육에 경련이 일어난 역도의 이배영 선수도 그렇다. 금메달까지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선수였다. 하지만 용상 1차시기에서 근육경련이 일어 2차, 3차 시기를 거푸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욱 우리가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야 할 대상이다. 그렇게 우리의 스포츠 문화가 변해야 할 것이다.
언론의 태도.
올림픽의 생생한 장면을 시시각각으로 전하는 방송사들의 중계를 보는 재미도 제법 크다. 특히 이미 올림픽에 출전경험이 많은 선수출신 해설자들의 생동감있는 방송은 흥미롭다. 스포츠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아나운서들도 이목을 끈다.
그런데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하여 흥분하고 사실의 전달이 불명확해지는 문제가 있다. 또 검증안된 선수출신 해설자들의 막말이나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발언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인기있는 종목에 편중된 편성도 눈에 보인다. 마치 금메달이 전부인 양 과도한 찬양의 태도도 귀에 거슬린다. 방송 3사가 거의 똑같은 장면을 겹치기로 방송하는 것도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이다.
선수가 이겨서 금메달을 따면 물론 충분히 기쁜 감정을 좀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국민이 다 함께 기뻐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도하게 흥분하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은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 또 듣고 보는 시청자들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감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마치 금메달이 모든 문제를 덮을 수 있다는 식의 태도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선수출신 해설자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끄는데 매우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과 적절하지 않은 방식의 발언이 시청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방송사들이 스타 선수출신을 해설자로 영입하는데 과도한 경쟁에 나서며 검증도 부족했고,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시키지도 못했던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방송사가 인기있는 종목을 방송하는 것은 시청률에 집착하는 방송사의 생리상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KBS와 MBC는 공영방송이다. 편성시 공익적 고려가 상당부분 가미되어야 옳다. 열악한 환경에서 노력하는 비인기 종목도 가급적 자주 방송해주고, 좋은 성적이 예상되지 않는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장면도 찾아서 방송해줄 필요가 있다. 성적지상주의를 오히려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방송3사가 똑같이 금메달을 목청껏 외치고 강조하는 동안 시청자들도 알게 모르게 성적지상주의에 물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결과에 관계없이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들도 종종 조명해주려는 노력이 아쉽다. 또 인기있는 경기를 3사가 모두 겹치기로 계속 반복하여 보여주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
혹자는 올림픽이 인간의 전쟁심리를 대리만족하는 도구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또 순수한 아마츄어리즘이 실종되고 돈에 물든 것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종종 정정당당하지 못한 경기나 판정들로 얼룩지는 일도 발생한다. 또 그러한 비판을 받아 마땅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올림픽의 정신은 완전히 훼손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최선을 다해 당당하게 경쟁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며,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것이 올림픽의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에 가장 충실한 승리는 값진 것이다. 설혹 패배를 했더라도 깨끗히 승복하는 정신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다면 금메달에만 목을 메는 성적지상주의 엘리트 체육은 그리 권장할 일이 아니다. 상업적 동기에 의하여 올림픽의 정신이 훼손당하는 것도 막아야한다. 각 국가간의 메달경쟁을 경마를 즐기듯 하는 태도도 버려야한다. 제도적으로 금메달을 따면 많은 보상이 따르고, 그렇지 못하면 외면하는 장치를 마련해선 안된다. 쇼비니즘에 의해 경쟁상대국을 혐오하는 행위는 가장 경계할 일이다.
우선 은메달을 따고도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문화는 고쳐야한다. 세계대회에서 2위를 했다면 그가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경우라도 대단히 좋은 성적이다. 마음껏 그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도 올림픽의 순수한 정신에 자신들의 태도를 비춰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한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1위만을 우대하는 시스템도 손을 보아야 맞다. 국민도 과도한 민족주의적 태도는 자제하는 것이 옳다.
이제부터라도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는 물론이고, 열심히 노력한 많은 선수들도 어깨를 펴고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은메달을 따고도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없었으면 좋겠다.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 선수가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우리는 금메달에 집착하기 위해서 올림픽에 참가한 것이 아니다. 종종 노력한 꼴찌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올림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by 비토세력 | 2008/08/13 11:17 | 사회,문화,교육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8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KBS이사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였다. 공영방송의 사장을 임기중 해임한 것도 문제이고, 해임까지 오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편법적 수단을 사용한 것도 큰 문제이다. 많은 국민은 일련의 과정을 정권의 방송장악수순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KBS를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시킨 폭거라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대통령은 KBS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가?
법해석상의 이견들이 있다. 대통령이 KBS사장을 임명하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당연히 해임도 가능하다는 것이 집권세력의 주장이다. 임명권을 가진 사람은 따로 정하지 않아도 자연히 해임권도 갖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실시해서 정연주 사장을 해임권유할 명분을 찾았고, 이사회는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곧 바로 해임안에 서명을 하였다.
그러나 방송법의 개정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억지스러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본래 방송법에는 대통령이 KBS사장에 대한 '임면권'을 갖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고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꾸었다. 다시 말하면 임명은 대통령이 하되 면직을 시킬 수는 없도록 하는 취지였던 것이다. 개정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보통의 경우 임명권을 가진 자가 해임도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관례상 상당한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방송법의 경우 임명권을 그렇게 해석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개정의 취지가 겨냥한 바를 존중하지 않고 관례적 해석을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결국 정연주 전사장은 이미 KBS를 떠났지만 대통령의 해임조치가 법적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 되었다. 정연주 전사장이 해임조치가 부당하다며 법적인 판단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법의 개정취지를 감안하여 옳은 판단을 해야할 역사적 소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해임사유와 해임에 이르는 과정.
정권은 이미 취임전부터 정연주 사장을 눈에 가시처럼 여겨온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KBS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온 바가 있다. 그들이 편파방송의 예로 가장 많이 거론한 것은 2003년 대통령 탄핵사건과 탄핵반대 촛불집회일 것이다. 이 것이 내밀한 해임의 사유는 아닐까?
국민의 80%이상이 반대한 탄핵을 강행한 것이 국민적 저항을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방송사의 편파방송 때문에 여론이 악화된 것으로 여겼다. 또 찬성과 반대를 기계적으로 반반씩 배분하지 않았다며 불만이었다. 하지만 당시 거의 대부분의 국민은 탄핵을 반대하였고, 찬성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할 수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압도적 여론이 형성된 상황에서 그 것은 결코 편파방송이 아니다. 억지에 불과하다.
지난 정권말기에 방송위원의 망언도 있었다. 전라도 세력, 좌파 빨갱이 세력에 의하여 방송이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방송을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다시 그려가야 한다는 섬짓한 발언까지 오갔다. 끝없이 정연주 사장에 대한 공세가 이어졌다. 정권이 출범한 후에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검찰이 정연주 사장을 수사하고, 감사원이 기왕에 예정된 감사를 앞당겨 강도높게 실시하였다. 대통령 측근들의 발언도 위험수위를 넘었다. 대통령의 국정방향과 맞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느니, 개정입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해임권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눈에 가시로 여겨진 정연주 사장을 제거하기 위한 전방위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감사원은 개인적 비위사실을 발견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실경영이나 인사파행을 빌미로 이사회에 해임을 권유하였다. 이사회는 국민적 반발과 KBS사원들의 반대를 경찰까지 투입하여 막고 해임안을 의결하였다. 경찰의 투입은 KBS의 치욕으로 영원히 기록될 사건이다. 사장이 KBS에 배치된 경찰의 철수요구를 지시하였음에도 간부들이 무시하였다. 급기야 집행권한이 없는 이사장의 요청으로 내부에 경찰이 진입하였다. 우발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드디어 대통령은 '임면권'이 아닌 '임명권'을 확대해석하여 해임안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과연 명분은 무엇이고, 과정은 왜 이렇게 치졸한 것일까? KBS의 직원들이 느낄 자괴감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들의 공분을 무엇으로 달랠 것인지 의문이다. 이렇게 까지 해서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면 정권에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까? 뭔가 잘못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연주 전사장은 업무상 배임을 하였는가?
검찰은 정연주 전사장을 업무상 배임혐의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KBS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여 세금을 환급받은 일이 있다. 결과적으로 사법부의 조정을 수용한 것이 KBS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조정을 수용하여 500여억원을 환급받았으나, 조정을 거부하고 소송을 끝까지 수행했다면 3~4배에 이르는 금액을 환급받을 수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황이나 법적 근거가 아무리 명확하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런 추론은 가능성에 불과하다. 패소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패소할 경우 막대한 소송비용등을 KBS는 추가로 부담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소송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조정을 수용하면 당장 5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환급받을 수가 있다. 경영상의 판단의 문제이다. 배임혐의를 두는 것은 과도한 일이다.
또 KBS는 국민의 방송이다. 국가 또한 주권자인 국민의 것이다. 국민의 방송이 국고에서 세금환급을 더 많이 받거나 좀 덜 받고 조정에 응한 것이 국민에게 이익도 손해도 아니다. 어차피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 아닌가? 공영방송이 악착같이 국가를 상대로 많은 금액을 환급받기 위해서 조정을 거부하고 소송을 수행해야 옳다는 것인가? 경영상의 판단의 문제일 뿐 배임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정연주 사장을 두둔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수 많은 소송이 조정으로 끝을 맺곤 한다. 양측이 모두 조금씩 양보하여 조정으로 소송을 끝내는 것이 불법이거나 배임에 해당한다면 사법부의 조정은 대단히 그 의미가 폄훼되는 것이다. 또 소송을 수행하는 당사자들의 경우도 많은 비용을 부담하며 끝까지 소송을 진행하여 결말을 보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표면적으로 해임의 주요사유가 된 업무상 배임이 아직 검찰의 수사단계에 있을 뿐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혐의적용이 무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법부가 이 역시 현명하게 판단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 보는 것이 정당한 정권의 태도였다. 업무상 배임이 아닐 가능성도 높고, 아직 혐의가 확정되는 단계도 아니기 때문에 정권의 해임은 부당하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어야한다.
방송법의 해당 조문과 개정취지에 따르면 대통령의 해임권한은 없다. 해임에 이르는 과정은 매우 부당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정권의 방송장악을 위한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임의 주요사유인 업무상 배임은 확정된 혐의가 아닐 뿐 더러 적용이 억지스럽다.
그래서 지금 국민들은 KBS를 정권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결코 공영방송이 국민의 곁을 떠나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점에 있어서는 KBS의 사원들이나 노조도 공감할 것으로 믿는다. 이제 국민이 KBS를 상실하지 않도록 하는데 힘을 모아야할 차례가 되었다.
과거 KBS노조는 정연주 사장의 퇴임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물론 노조가 사장의 경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행동들이 정권의 나팔수를 만들기 위해서 취해진 행동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노조도 정연주 사장이 물러난 이상 정권의 방송장악 기도에는 단호한 태도와 행동을 보일 차례가 되었다.
KBS의 구성원들은 모두 명심해야 한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다. 경영권을 정권이 장악하도록 방치해선 안될 것이다. 점차 방송의 편성권이나 인사가 국민의 편이 아닌 정권의 편의를 위해 남용될 것을 걱정할 때이다. 또 방송사 내부에 경찰이 난입하여 굴욕을 당한 지금의 사태에 엄중한 대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구성원들의 처절한 노력이 없이는 국민의 방송, 공영방송을 지킬 수 없다. 노력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사장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미 이사회는 정권의 입맛에 철저히 맞게 구성된 상태이다. 그래서 사원들의 공공성 수호노력이 어려울 것임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처절한 노력이 눈에 보인다면 국민적 지지가 모아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누가 뭐래도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의 지지가 있다면 국민의 방송지키기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KBS구성원 여러분의 가열찬 노력을 기대하며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여러분은 국민의 방송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국민은 여러분을 응원할 것이다. 공영방송이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에 다시 한번 죄를 범하는 것이다. 부디 힘을 내서 공영방송을 사수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편성권을 정권에 빼앗기지 말기를 당부한다.
# by 비토세력 | 2008/08/12 10:48 | 정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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