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밥 먹여준다? 정치

난생처음 서평이라걸 써 본다. 사실 서평이라면 좀 관련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쓰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저 평범한 소시민인 사람이 서평이란걸 쓰고 있다. 그것도 유명저자가 아닌 비슷한 처지의 평범한 시민이 쓴 책에 대해서 말이다.

 

2012년은 대한민국에게 정치적 격변의 시기이다.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뤄지는 것도 그렇고 이명박 정권의 국민생활을 송두리채 흔드는 실정들이 국민의 투표본능을 깨우고 있는 것이 그렇다. 나꼼수가 메이저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중동 및 정권에 장악된 공영방송들이 급격히 그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것이 그렇다.

 

이시기에 시의적절한 책한권이 나와주었다는 데에 깊은 안도감이 느껴진다. 물론 김어준, 김용민, 선대인, 우석훈, 조국 교수등의 저서가 유난히 많은 국민에게 읽혀지고 있지만 유명하지 않은 시민이 정치서포터스로서 쓴 책은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고 그만큼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우선 책의 재목부터가 범상치는 않다. “정치가 밥 먹여준다”이다. “천만 정치덕후 양성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점도 흥미롭다.부제처럼 정치를 깊이 이해하고 관전할 뿐 아니라 적극 참여하는 정치판이 된다면 우리정치가 지금처럼 후진 모습을 벗어날 수 있지않을까 자뭇 기대가 된다.

 

저자는 딴지일보 정치부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 인물이며 “물뚝심송”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혹시라도 내 아이디 “비토세력”을 기억하는 분들있다면 “물뚝심송”을 당연히 기억하실 것이다. 나보다는 좀 유명한 아이디고 거의 같은 공간에서 글질(?)을 했었기 때문이다..

 

“물뚝심송”은 486세대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작가가 아닌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486이다. 대학시절 6.10항쟁을 직접 겪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정치참여와 정당개혁 등에 선수가 아닌 서포터스로 참여해왔다. 인터넷에 많은 글을 남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환호를 때로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책의 문체는 딴지체(?)다. 인터넷 딴지일보에서 어떤 패턴으로 굳어진 문체로 매우 친근하고도 편안하게 다가갈 것이다. 혹자는 점쟎치 못하다거나 경망하게 느낄 수도 있을 테지만 너무 예의바른 문체로는 글의 전달력이 떨어지고 거리감도 생기게 마련이다. 읽기 편하고 쉬운 것이 요즘의 대세아닌가? 듣기 편하고 귀에 쏙쏙 박히는 “나는 꼼수다”처럼 말이다.

 

딴지일보의 총수이자 나꼼수의 히어로 김어준이 추천사를 써준 것으로 봐서 일단은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책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 노혜경시인도 역시 이 책에 관련해서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고 하니 나름의 신뢰를 확보한 셈이다.

 

내용도 나름 충실하게 구성되었다. 선수용이 아닌 정치서포터스용 정치교본이랄까? 그런 면에서의 활용도가 충분해 보인다. 한국의 정치와 정당사들이 충실한 자료찾기로 뒷받침되어서 시종 흥미진진하다.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마다 거의 빠지지않고 다루고 있으며, 마치 스포츠경기 처럼 생생한 묘사들이 들어있어서 재미를 더한다.

 

이책을 굳이 이렇게 글로 써서 추천코자하는 이유는 이렇다. 정권의 심각한 실정과 부도덕성은 극에 달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에 따른 국민의 정치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물론 가카의 위대한 업적이다.

 

이런 시기에 단순히 관심과 분노만을 가지고 움직여지는 대중보다는 좀 더 깊이있게 정치를 들여다보고 통찰력을 길렀으면 좋겠다. 그래야 미래의 정치발전을 시민의 힘으로 견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중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자칫 히틀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통해 한국의 정치사와 현상들을 이해하고 난 후의 민중은 좀 더 양질의 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저자와의 친분이다. 저자를 잘 알고 함께 활동을 했던 관계로 이 책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게 된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끝으로 정치는 정말 알고 보면 스포츠 경기처럼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넘치는 분야라는 저장의 주장에 동의한다. 서포터스 입장에서는 경기의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어렵지만 정치는 국민이 직접 참여해서 투표로 승부를 가린다. 관전만하며 환호를 보내는 스포츠 경기와는 전혀 깊이가 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아마도 정치가 정말 스포츠 경기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미FTA폐기를 촉구하는 시드니 한인들의 집회 정치

한미FTA가 2012년 3월 15일 0시를 기해 발효된다. 2월 25일(토요일)오후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열렸다. 이제 모든 절차가 끝나고 서민들의 삶에 실질적 악영향이 미치기 시작할 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발효를 위한 절차가 모두 완료되어 사실상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낭패감도 고개를 들고있다. 그럴수록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제 남은 길은 무엇인가를 자문하며 답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쉽게 희망은 손에 잡힐 수 없는 상황이다.


시드니에서도 이러한 국내의 절박한 상황을 공감하는 한인들이 모였다. 시드니 민족교육문화원이 중심이 되어 여러가지 필요한 준비를 하였으며, 진보성향의 독서모임 '시나브로'와 1,2차 집회를 준비했던 호주한인포럼이 서로 연대하여 한미FTA폐기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호주한국일보와 코리아타운 등 한인매체들이 집회를 홍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2012년 2월 25일 저녁 6시(현지시각)에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스트라스필드 광장에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집회참가인원 50여명과 광장주변에서 집회에 호응을 보여준 한인들도 적지 않았고 지나가던 현지인들까지 응원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민족문화교육원의 정영란씨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였으며,집회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노래하는 세상'의 노래공연과 참가자들의 자유발언 그리고 틈틈이 연습한 율동도 곁들여졌다. 비장한 내용을 가지고 모인 집회지만 흥과 재미를 곁들이는 새로운 방식의 시위문화가 이곳의 한인들에게도 이미 스며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참가자들 중에는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들은 물론 유학생이나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곧 한국으로 돌아갈 한인들도 있었다. 한국인이 아닌 호주인이나 다른 나라 출신들도 영문피 켓을 보고 내용을 짐작한 듯 함께 참여하여 호응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어서 이채로웠다.


유학생이나 곧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피부로 와 닿을 한미FTA의 파장을 걱정하고,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은 모국에 대한 애정을 담은 걱정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국에 나와 살지만 모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싶다는 바램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특히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모국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부심을 갖고 자라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매 발언마다 굴욕적 한미FTA를 날치기하고 국민의 반대여론이 비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효절차까지 진행해버린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이날 집회에서의 구호들은 "굴욕적 한미FTA폐기하라", "서민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몬 이명박 정권 타도하자"등의 다소 과격한 구호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한미FTA의 날치기를 막아내는데 무력했을 뿐 아니라 발효절차가 진행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대응조치를 하지 못한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보이면서도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미FTA를 재협상 하거나 폐기하겠다는 데 희망섞인 기대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집회가 진행되는 도중 경찰이 몇명씩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은 한국에서의 집회와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집회를 막으려고 하거나 집회참가자들을 통제하는 것보다 집회를 방해하거나 하는 돌발사태등에 오히려 이곳 경찰은 신경을 쓴다. 아직 집회나 시위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답답해진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막바지로 갈수록 아마도 앵무새과에 속하는 종류인듯 한 새들이 광장 주변의 나무에 몰려와서 울어대는 바람에 귀를 막아야할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 곳이 원래 해질 무렵에는 이 새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앰프소리,악기소리,노래소리,새소리가 섞여서 고막을 찢을듯한 상태였다. 집회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새들이 본의 아니게 방해를 해버린 셈이다. 새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련된 순서를 모두 마치고서야 집회는 끝났다.


집회를 정리하며 일부참가자들은 모여서 사진을 함께 찍었고 저녁을 겸하여 뒷풀이 자리까지 상당수가 참가하였다. 집회에 대한 평가는 물론 총선과 대선 그리고 야권연대등을 화제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총선과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응징을 염원하지만 통합민주당의 한미FTA에 대한 태도나 공천내용과 야권연대에 임하는 자세등에 대하여 대체로 우려하는 의견이 많았다.


 


존재감을 상실한 야당 정치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판에는 야당이 없다. 이름조차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감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친이계는 여당노릇을 하고 친박계는 야당노릇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진짜 야당은 점점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하다. 좋은 야당이 없는 정치는 그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 전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답하기에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혹자는 야당에 주목을 끌만한 인물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또 야당이 여당과 구별될만한 정책적 차별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나라당 내의 양대 계파 간 갈등이 워낙 부각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일 리는 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지역구도에 있다. 얼핏 이해가 안 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치는 지역구도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인구구조의 변화가 지역 구도를 강화하여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역구도 정치의 근원을 살펴보자. 해방과 정부수립 이전부터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감정이 존재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집권과 독재 그리고 지역편중 개발에서 태동하기 시작한다.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집권세력의 책략(보리문둥이 단결론)이 있었고, 특히 1971년 대선에서 호남의 김대중 후보와 영남의 박정희 후보라는 대결구도는 결과적으로 지역구도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영, 호남 간 지지도가 그리 확연히 갈리지는 않았다. 차라리 도시와 농촌의 지지가 훨씬 두르러지게 갈려 있었다. 이른바 여촌야도의 구도가 그 것이다. 또 영남도 부산과 경남지역은 김영삼을 중심으로 야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뚜렷했기 때문에 여야가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1987년 다시 직선제에 의하여 대선이 치러질 무렵에는 전국이 4등분된 구도를 하고 있었다. 대구와 경북은 민정당과 노태우, 부산과 경남은 통일민주당과 김영삼, 호남은 평화민주당과 김대중, 충청지역은 신민주공화당과 김종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른 바 지역할거 구도가 완결을 보았다. 그나마 야당이 3개로 나뉘기는 했지만 집권세력을 견제할 수는 있었으니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후에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정국에 부담을 느낀 집권세력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시도하면서 한국정치를 결정적으로 망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한 것이다. 김종필이 민자당에 합류한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으나 민주화 운동의 한축이었던 김영삼이 참여한 것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야합이다.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평화민주당의 김대중만 야당으로 남아있는 구도가 되었다. 호남을 제외한 전국이 정치적으로 뭉쳐지고 호남이 고립되는 구도가 된 것이다. 한국정치를 망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야합은 매우 부당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한국정치를 망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국민이 집권 군사정권을 견제하라고 선출해준 정치인들이 군사정권과 야합 했으니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고, 둘째는 정치인들이 신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쫓아 야합하고도 집권하는데 성공하여 매우 나쁜 선례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철새정치인이 탄생하는 시금석이 된 것이다. 셋째는 독재세력을 승계한 자들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던 정치세력을 압도하는 구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3당 야합에 의하여 집권한 김영삼은 사상초유의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온 국민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정치적으로 응징을 가해야할 일이다. 국가부도의 위기를 초래한 집권세력을 쉽게 용서하는 나라는 없다. 물론 10년간 반대세력에게 투표하여 민주화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높은 한나라당 지지율을 보면 너무 이른 용서가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한국정치가 3당 합당으로 형성된 지역구도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지역구도 정치의 중심인물들은 모두 정치의 일선에서 물러났다. 문제는 그들이 남긴 정치구도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표적 야당이라고 하는 민주당은 결국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겨우 존립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 지역의 인구를 합해도 영남인구보다 현저히 적다. 이제 지역적 기반을 수호하는 방식으로는 한나라당의 영구집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 한국정치의 절망적 요소가 자리한다.


지금 민주당의 낮은 존재감은 바로 그러한 구도의 문제이다. 또 거기에 더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수도권 패권주의에 앞장선 서울시장 출신이라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의 내부 마찰은 이런 정치구조 아래서의 차기구도를 둘러싼 득실계산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종시가 중심적 문제처럼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은 차기에 누구를 대선후보로 정할 것이냐는 권력다툼의 문제가 더 핵심이다.


친이계는 수도권패권주의를 중심으로, 친박계는 박근혜 전대표의 높은 지지율을 중심으로 집권전략을 구상하며 충돌하고 있다. 이 들에게 야당들은 그리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미 지역구도가 야당의 집권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대선보다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제 1 야당인 민주당의 존재감 상실은 이러한 구도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집권의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잘못이 없이 희생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 들이 구도에 희생된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스스로 국민의 사랑을 받을 만큼의 노력을 하지 못한 점은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의 잘못은 무엇인가? 3김정치가 끝나는 시점에서 한국의 정치는 중요한 업그레이드를 했어야 마땅하다. 특히 일인보스와 다수의 추종자로 구성된 정당의 구조를 혁파하고 새로운 민주적 정당의 전형을 구축하여 국민에게 다가섰어야 마땅하다.


여전히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국회의원 자리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을 획득하고 지키는데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역구도 정치를 압도할 정도의 가치지향과 정당민주주의를 확립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도권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세력에 대항하여 강력한 지방분권의 패러다임을 제시했어야 하지만 그런 이슈를 한나라당내 친박계에게 선점당하고 말았다.


또 여전히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낙후되어 계파간의 나눠먹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만든 유령정당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당이 정치인들을 끼워내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국민의 상당수에게 어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성공한 전례도 있다. 2002년 국민경선으로 불리하던 대선구도를 유리하게 이끌었던 것이 그 것이다.


정당은 여전히 국민과 유리되어 정치인들끼리 나눠먹는 구조이니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사실 여당과의 정책적 차별성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다. 오로지 정치인들의 이익 나눠먹기에만 관심을 갖고 정당의 민주화도 정책적 지향점도 상실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지역구도가 한국정치를 지배한다면 한나라당은 영원히 집권할 것이다. 그 것을 극복하려면 확실히 다른 이슈와 확실히 다른 정당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전히 유령당원들을 만들고, 정치인들이 대의원 숫자를 나눠먹으며, 그런 유령과 같은 대의원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정당이 국민과 호흡하고 국민 속으로 파고들 방법은 없다.


한국정치가 한나라당내 계파간의 경쟁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야당들이 소외되고 있다면, 야당이 살 길은 진정한 민주정당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확실히 한나라당과 차별화된 서민과 대중의 삶에 천착하는 정책지향을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비슷한 기득권층 비위맞추기로는 점점 존재감을 상실해갈 뿐이다. 올바른 야당이 없는 정치는 국민에게 재앙이며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뭔가 달라진 바른 야당이 있어야 정치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야당들의 환골탈태가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다.


개혁이 시급한 것은 사법부가 아니라 검찰 정치

요즘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에게는 사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고 있는 모양이다. PD수첩의 제작진에 대한 무죄선고를 계기로 사법부를 손보고 싶은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일부 수구단체의 노인들은 대법원장과 법관들에게 테러까지 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PD수첩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하등의 결함이 없고 완벽하게 증거와 논리를 갖춘 판결이라는 점이다. PD수첩이 허위사실을 보도해서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집권세력이 검찰을 시켜 무리한 수사를 했고, 무혐의 의견을 가지고 있던 수사팀을 교체까지 하면서 기소를 했다. 당연히 그 들의 유죄를 증명할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

 

PD수첩의 번역을 담당하던 정지민씨의 증언만이 검찰이 의존한 거의 유일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레사 빈슨씨의 어머니가 발언한 변종 CJD는 통상 vCJD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는 곧 인간광우병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인들이 미국의 소송자료까지 제출하여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밝혔고 재판부는 증거에 근거하여 무죄판결을 한 것이다.

 

판결이 나온 후 집권세력의 대응은 치졸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법관들의 연구모임에 불과한 '우리 법 연구회'를 지칭하여 '하나회'를 운운하고, 마치 판사들이 이념에 물들어서 재판을 하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사법부의 개혁을 운운하는 꼴은 더더욱 가관이다.

 

사법부에 여전히 개혁되어야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한 일이다. 문제는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사법부를 개혁의 대상으로 운위하는 꼴은 볼썽사납다는 말이다.

 

또 '하나회'가 무엇인가? 12.12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던 5공 세력이 그들이다. 그들이 만든 민정당이 다른 야당과 야합해서 민자당이 되었고, 이름을 바꿔서 신한국당이 되었다. 또 그 신한국당이 이름을 바꿔 지금의 한나라당이 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들의 뿌리에 침을 뱉으며 그리 당당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을 기반삼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할 민주공화국이다. 박정희 정권시절 사법부가 정권의 입맛에 정확히 맞는 판결들을 주문 생산하던 추억은 이제 버려야한다. 정권에 반대한다고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고, 때로는 법정에 세워 더러운 죄명을 마구 선사하고 투옥하던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할 일이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갔던가?

 

사법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증거와 사실에 근거하여 판결하는 일은 모두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집권세력만 자신들이 마구 권력을 남용하는데 걸림돌이라 느낄 뿐, 매우 옳고 고무적인 일이다. 오히려 그런 판결을 항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모든 권력기관을 손아귀에 쥐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휘두르고 있다. 검찰, 국세청, 경찰, 국정원 등 지난 정권에서 독립적 지위를 확보했던 기관들이 이제 모두 집권세력의 통치수단이 되고 있다. 조선, 동아, 중앙 등 거대신문은 본래 지금의 집권세력을 편들어 왔고, 그나마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독립성을 찾는 듯 했던 방송들도 이제 집권세력을 비판할 수 없는 처지로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사법부조차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 한다면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다. 무슨 왕조국가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지금 시급한 개혁의 대상은 사법부가 아니라 검찰이고, 국세청이며, 경찰과 국정원이다. 국정원은 이런저런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경찰은 이미 국민을 공권력의 힘으로 제압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국세청은 전직대통령의 측근을 편법까지 동원하여 세무조사하고 결과를 집권세력에게 제공하여 정치적 보복을 도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에 뒤질세라 검찰은 측근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수사하였고, 급기야 전직대통령까지 억지로 수사의 대상에 올렸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측근들까지 모두 잡아들여 형벌을 가하며 전직대통령의 혐의를 밝히려고 갖은 애를 썼다. 날마다 확실하지도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려서 여론재판을 가했고, 결국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간 것이다. 지금도 검찰은 여전히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을 겨냥하고 있다. 정권이 좋아하는 일만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의 검찰이 집권세력에게도 엄혹하게 단죄를 가하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PD수첩의 제작진을 기소한 것도 결국 그렇게 정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검찰의 개혁이 화급한 이유가 담겨있다. 검찰이 그렇게 계속 정권에 봉사하게 된다면 그 결과 국민은 주권을 잃고 정권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검찰이야말로 하루속히 개혁되어야할 대상이며 철저히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야할 대상이다.

 

정권의 구미에 맞는 검찰은 극심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음에도 그저 등이나 두들겨주고, 정권의 주문에 맞지 않는 판결이 좀 나왔다고 사법부를 개혁대상으로 거론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잦아든 사회는 이미 독재국가일 뿐이다.

 

누구라도 나서서 집권세력을 비판할 수 있었던 지난 정권이 그립다. 심지어 지금의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대통령을 마음껏 조롱하고 마구 근거 없이 비난하고도 처벌받은 일이 없었다. 당시 혹자는 대통령 욕하는 것이 국민스포츠가 되었다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집권세력이 바로 차마 듣기에 민망한 욕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자신들은 그러한 자유를 누리더니 이제 집권하고 나서 그런 일은 용인하지 않겠다니 참으로 이율배반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고단한 민초들이 집권자를 마음껏 욕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인 것이다. 사는 것이 고달픈데 그런 비판조차 못하게 입막음을 당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사법부까지 자신들의 입맛에 맞고, 모두 집권자를 찬양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민주공화국을 포기하고 속히 왕정을 선포하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이 씨의 나라가 될까?  아마도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세종시의 건설에 얽힌 정치적 함수 정치

한국의 정치권은 지금 세종시의 수정과 원안추진을 놓고 시끄럽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물론 충청권에서의 득표를 위한 전략적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과밀화와 국토의 불균형 발전은 반드시 해결해야할 시대적 과제이기도 했다.


당시 야당의 이회창 후보는 당연히 이런 공약에 반대했다. 자신의 고향이 충청도였지만 그의 정치적 기반은 한나라당이었다. 바로 수도권의 기득권층과 영남의 표를 결집하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기득권에 반하는 공약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거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나고 행정수도의 이전은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특히 2004년 한나라당과 구 민주당의 연합에 의한 대통령 탄핵으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한 후에는 쉽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바로 수도권의 기득권과 관련한 이해득실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이 강력히 반대했을 뿐 아니라 반대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이명박 시장 측과 가까웠고 지금은 법제처장에 기용된 이 석연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도 수도권에 기득권을 상당히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는 그 기득권을 수호하는 쪽으로 결론이 지워졌다. 성문헌법을 가진 국가에서 관습헌법을 들어 위헌이라 했고, 분명히 조선과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의 경국대전을 들어 한성이 수도라는 것을 헌법사항으로 보았다. 아마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차용한 궤변이었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곧 대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것이 바로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건설이었고, 여야가 합의하여 세종시가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당시의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의원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원도 아닐 뿐 아니라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당시의 이명박 후보는 표가 다급한 나머지 소신과는 달리 세종시를 확실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말하자면 당선되고 나서 말을 확실히 바꾼 것이다. 보통 여야가 합의에 의하여 처리한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다시 집권자의 뜻에 따라 뜯어고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물론 정권의 수정주장에도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행정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 것이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IT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청와대와 부처 간의 물리적 거리가 그리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정치권이 바로 이 이슈를 가지고 정치적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할 뿐이다. 그동안 한국의 선거와 정치구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지역감정이었다. 항상 지역감정만 조장하면 한나라당은 백전백승이다. 영남의 유권자가 충청과 호남을 합한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그러한 신화가 깨지고 말았다.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영남의 표를 철저히 독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997년에는 이인제의 출마로 수백만 표를 빼앗겼고, 2002년에는 영남출신인 노무현 후보에게 또 25%가 넘는 표를 빼앗겨서 거듭 패배하고 말았다. 이제 영호남 간의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는 항상 이길 수가 없음을 자각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100% 승리를 장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수도권과 지방의 대결이 그 것이다.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다면 그 어떤 전국단위 선거도 항상 압승이 보장된다. 수도권의 인구가 전국인구의 5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오히려 세종시의 원안추진이 훨씬 필요해 보이는 이유이다.)


또 한 가지의 문제는 차기의 한나라당 후보경선과 관련된 문제의식이 잠재하고 있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박근혜 의원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순순히 내주기가 싫을 것이다. 세종시 관련 법안은 박근혜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서 당시 여당과 합의해서 처리해준 법안이라는 점에서 뭔가 그 공을 축소할 필요도 느꼈을 법하다. 수도권의 기득권을 중심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충청권의 표를 확실히 챙겨둘 것인가 하는 친이계와 친 박계의 선택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것이다.


본래 처음에는 반대를 했으나 지금은 한나라당을 나와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삼는 정당을 만든 이회창씨도 목소리를 제법 높이고 있다. 바로 충청권을 자신의 득표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과 구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정치적 이득을 위한 계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옳은 것이 무엇인지 결론적으로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기로 유명한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인구밀도는 세계최고의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를 고루 사용하지 않고 좁은 수도권에 모두 모여서 북적대고 있다. 교통이 정체되고 공해가 극심해서 도심에서는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이다. 지방의 인구는 줄고 수도권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과연 그렇게 서울을 중심으로 살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지방은 공동화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모처럼 지방에 가면 노인들만 몇 분이 동네를 지키고 젊은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보기 어렵다. 빈집들이 을씨년스럽게 보일 정도다. 점점 인구가 줄어서 더욱 사람이 살기 어려운 시골마을이 늘고 있다. 앞으로는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전국단위 모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일까?


수도권은 점차 과밀화가 심해져서 경제적인 측면의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특히 높은 주거비와 교통비 및 생활비의 문제는 세계의 어느 도시에 비해도 경쟁력이 떨어질 정도이다. 이런 상태로는 수도권도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부적합한 도시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를 국토의 중심부에 건설하고 점차 지방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역사적 책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시를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하는 것은 수도권의 인구과다가 극심할 뿐 아니라 수도권에 그만큼 많은 기득권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수도권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이 세종시의 건설로 그리 타격을 받을 것도 없지만 막연히 피해의식을 갖고 반대한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부도덕성을 돌아봐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찌되건 단지 자신의 금전적 이득만을 극도로 챙기는 것을 어찌 도덕적이라 하겠는가? 부도덕한 국민은 항상 부도덕한 정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도덕이 유행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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