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돈과 나

노무현 전대통령이 박연차씨와의 돈거래를 스스로 고백하였다. 혹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맹비판을 퍼붓는다. 반면 일부 열혈 지지자들은 사안의 중대성을 애써 무시하며 감싸려는 경향을 보인다. 2002년 대선이 있기 전부터 그를 지지해온 입장에서 필자는 당혹감과 실망이 교차하며 마음이 복잡하기 이를 데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를 지지하였는가?

 

다시 처음부터 복기를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정치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 부정부패, 정경유착, 권력남용, 줄서기와 패거리 정치가 정치혐오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정치발전의 장애물은 지역주의와 그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지역구도였다. 우선 지역구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유일한 정치인으로 노무현의 상징성에 매료되어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역구도에 의한 정치는 그 동안 민주공화국의 원리를 해하는 요소였다. 선거의 승패가 지역구도에 의하여 갈리는 데 정치인들이 옳은 정치로 국민에게 봉사할 이유가 없다. 지역정서에 영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가 돼 버리는 것이다. 지역구도 정치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걸러내지 못한다. 정경유착도 권력남용도 줄서기도 역시 막을 수 없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구도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당당히 섰던 노무현은 매력있는 정치인이었다. 물론 부정부패나 정경유착, 권력남용과 패거리 정치와도 비교적 거리가 먼 정치인으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기존의 정치틀을 완전히 뛰어넘는 청정한 존재였다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도 이미 기성정치인 이어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걸었던 희망의 요체는 지역구도의 정치를 극복하려는 염원이었을 뿐이다.

 

참여정부 5년의 공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엇갈린다. 기득권층의 평가는 합리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조건적 평가절하 수준이다. 합리적 논리를 결여한 비판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 반면 진보진영의 평가는 비교적 논리를 갖추긴 하였으나 무척 냉혹하다.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의 무차별 비판이 수구세력의 정치적 이익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귀담아 들어볼 가치는 있는 비판일 것이다. 한미FTA의 무리한 추진같은 것이 나름의 논리를 충분히 갖춘 비판의 예가 될 것이다.

 

지지층의 평가는 때로는 과도할 정도로 부풀려진 측면도 없지는 않다. 깨끗한 정치를 했다는 평가는 벌써 상당히 평가감을 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물론 비교적 객관적 사실에 가까운 치적도 없지 않다.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여 휘두르는 것을 중단한 것은 쉬운 일도 아니며 매우 가치있는 일이었다.

 

부작용도 많았고 부분적으로 좌절된 측면도 있으나 국토의 균형발전을 추구한 일도 시대적 필요성이 절박한 것이었다. 과거의 정권들과 달리 패거리 정치를 추구하지 않았던 점도 충분히 평가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정책을 즉흥적이고 자의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충분한 내부토론과 시스템적 검증을 시도한 것도 옳았다. 퇴임 후 낙향하여 지방에 정착한 것도 의미있는 선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보수신문의 공세와 한나라당의 협공에 무릎을 꿇고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또 내부의 결속력이 미약해 일찍부터 집권여당이 사분오열한 것도 리더쉽의 부재를 탓할만한 일이다. 그 동안 추진하던 정책들이 정권교체로 인하여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는 것은 참여정부의 최대실책이라 하겠다.

 

부적절한 돈거래

 

이제 부적절한 돈거래까지 터지고 말았다. 과거 정권들의 대규모 부정부패에 비교하면 약소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 빚에 시달려 후원기업인에게 부적절한 돈을 받았다니 동정의 여지도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덜 부패한 증거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언급한 바와같이 잘못을 잘못일 뿐이다. 그 사안의 질적 내용에 따라 합당한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 돈을 받은 여권인사들과의 형평을 논할 사안은 아니다. 누군가 교통질서를 위반하고 나서 다른 모든 위반자를 적발하고 난 후에 자신도 처벌을 받겠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지금 검찰이나 정권이 편파적인지 아닌지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잘못의 당사자나 지지자들이 주장하기에는 매우 궁색한 일이다.

 

아직 수사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점이 있는지,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런 돈을 받아야 했는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법에 따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수준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사가 끝나고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질 시점이면 이미 국민에게 널리 내용이 알려질 수 있을 것이며, 국민의 정치적 판단도 이루어질 것이다. 불필요하게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를 지지해온 사람들의 절망감이다. 본래 헐뜯기만 하던 세력의 비판은 그리 아플 것도 없다. 잘못이 없을 때도 비난만하던 사람들에게 객관적 평가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가 정치적으로 추구하던 가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인 자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사람들의 평가 또한 공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다수의 의견이다. 그 것을 기대하려면 사건의 실체가 좀 더 밝혀진 후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지금은 매우 당혹스럽고 난처하다. 그러나 사안이 중대할수록 신중한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추구하던 가치마져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아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던 가치는 그 자체로 적절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다만 잘못이 있다면 자연인 노무현이 감당할 일이다.

 

노무현의 잘못과 그가 추구하던 가치는 구분돼야...

 

지금 대한민국의 뉴스는 온통 노무현 전대통령이 박연차씨에게 돈을 받은 일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사안의 폭발성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또 비중있는 뉴스로서 가치가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침소봉대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아직 밝혀지지 않고 의혹에 머물러 있는 사안조차 모두 사실인 것처럼 과장해서 보도하는 일도 있다. 또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그대로 받아쓰기하는 보도들을 접하면 서글프다.

 

사안은 분명하다. 잘못을 했고, 그 잘못은 검찰의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적절히 책임지우면 될 일이다. 역대정권들이 모두 부패하였으니 그나마 덜한 이번 일을 덮자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것이 밝혀 졌으니 무능할 뿐 아니라 부패하기까지 했던 세력이라 매도하는 태도이다.

 

아직 얼마나 받았고,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가 추구했던 정치적 가치마져 모두 잘못된 것일까?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것도, 국토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것도, 사회복지의 확대정책도, 권력기관의 독립성 확보도 모두 잘못된 것일까? 분명 자연인의 잘못과 그가 추구하던 가치는 분리할 수 있다. 잘못은 잘못대로 처벌하면 그만이다. 가치는 가치대로 각기 다른 평가를 내려야 한다. 마구 섞어서 깡그리 부정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불순한 일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나는 자연인 노무현을 그 자체로 추종한 것이 아니다. 그가 추구하던 가치를 공유하고 그 것에 대하여 지지를 보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별로 좋지 않은 자연인이라 평가한 일도 없다. 다만 자연인의 성패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치는 공유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한 자연인의 성공은 뭐 그리 나눌 수 있는 것도 없는 법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 훨씬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조차 그렇게 부적절한 돈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그 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일까? 하는 점이다. 또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충분히 활용하고자 할 집권세력의 의도대로 대부분의 언론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사실관계를 보도하고 조심스럽게 논평하는 언론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하자. 그러나 잘못한 사람이 추구하던 것이라도 옳거나 가치있는 것이라면 그 것은 그 것대로 평가하자. 혼동하고 섞어서 모두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말자. 그가 잘못 했다고 하더라도 지역구도는 극복돼야 한다. 그가 실망스럽더라도 국토의 균형발전은 필요한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임이 밝혀지더라도 국정은 충분한 토론과 시스템적 접근방법으로 가야한다. 그가 부정부패의 온상이라 하더라도 권력기관의 독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가치와 그 것을 상징하는 자연인의 잘못을 혼동하지는 말자. 그를 지지하였고, 그에게 실망도 하였으나, 그가 내세웠던 가치를 나는 여전히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이 상징하던 바로 그 가치지향을 나는 아직도 지지한다.

 

 

 

by 비토세력 | 2009/04/09 14:06 | 정치 | 트랙백 | 덧글(1)

나는 왜 조국을 떠나는가?

공개적으로 글을 안쓰고 지낸 지 꽤 오래됐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실타래처럼 얽히는 때도 있었지만, 그 보다 다른 일에 몰두해 있어서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입니다. 대한민국을 떠나 먼 이국 땅으로 가려고 준비하는 중입니다. 15년간 다니던 회사를 이달 말에 그만두고 다음 달에는 호주로 이민을 갑니다.

 

안타까운 조국의 현실

 

작금의 경제위기와 정치판의 모습은 국민을 끝없는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청년실업율과 불안한 실물경제는 서민대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국가재정의 건전성도 이미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고령화는 가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극심한 내수부진이 우리에게도 먼 후일의 일만은 아닙니다. 답답합니다.

 

정치권은 적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합니다. 허무맹랑한 처방과 시기에 맞지않는 정책들을 가지고 다만 다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좀 발전이 있었던 민주주의는 빠르게 퇴조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권위주의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며 임기웅변식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국민이 누려야할 권력에 대한 비판은 현저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눈치를 살피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정치권력의 언론장악 시도도 점차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판 좀 했다고 잡혀가거나 수사를 받는 네티즌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비판하기를 두려워할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전직대통령의 측근들은 줄줄이 수사를 받거나 구금되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측근기업인으로부터 현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이 돈을 받은 일들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야에 따라서 검찰의 수사강도나 의지는 현저히 달라 보입니다. 이제 전직 대통령까지 그에게 돈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의 경중을 떠나 철저하게 수사하여 의법처리해야 합니다. 또 형평에 어긋난 법적용이 있어선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형평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답답한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경제는 희망이 안보이고, 정치는 점점 퇴행하며, 국민의 말할 자유도 위축되고 있습니다. 언론조차 권력의 손아귀에 장악되어가고 있습니다. 법을 엄정히 집행해야할 권력기관들의 줄서기도 이미 완전히 부활한 것 같습니다. 답답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조국을 떠날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라면 남아서 부당한 권력과 쟁투를 벌이는 것이 옳았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치신 수 많은 민주선열들께서 그랬던 것처럼 그런 투쟁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나는 투사가 아닙니다. 또 다른 자기역할을 거부하지도 부인하지도 못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나는 두아이의 아버지입니다

 

한여자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역할이 있습니다. 가족이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상실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그런 역할입니다. 누구나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일조차 쉽지않고 버거운 느낌이 듭니다. 내 가정의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것이 너무 소박하게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것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절실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나름 적절히 적응된 생활을 정리하고 낯설고 어색한 이국땅을 찾아가는 이유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일상의 삶을 끝내 지킬 자신이 없어서 떠나는 것입니다. 만약에 실직을 하거나 건강을 잃거나 그 어떤 이유로라도 생활비를 벌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곧장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웠습니다.

 

만일 실직을 한다면 나로 인하여 이 세상에 온 두 아이들의 삶은 험난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경우에 필요한 국가의 역할이 너무나 미비합니다. 아니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가가 나의 가족을 적절히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며 경제활동을 했는데 왜 국가는 내가 어려울 때 적절한 보호를 해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것을 위해 좀 더 많은 세금을 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습니다.

 

곧 있을 미래의 불행을 대비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족하게 여기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미래는 닥치는대로 대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암울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높은 주거비용과 사교육경쟁

 

대출을 받아서 산 집 때문에 매월 100만원이 훨씬 넘는 주거비용이 지출되어야 했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부담이었습니다. 다만 집 값이 과도하게 비싼 것은 분명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평생 집값을 치르느라 가처분 소득이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미래의 불행에 대비할 여력도 소진되기 마련인 것이죠.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선행학습을 시키느라 지출하는 사교육비도 문제입니다. 누가 더 많은 돈을 투입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사회적 계급이 정해지는 것은 모두에게 결국 불행이 될 뿐입니다. 극히 일부의 승리자를 위해 모두가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몰지각한 사교육비 경쟁에 뛰어들 능력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홀로 독불장군처럼 아이들을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난감한 일이죠. 이미 사교육을 위해 공교육이 상당부분 양보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세를 거스르고 혼자만 다른 길을 가기도 어렵습니다. 또 그 저열한 경쟁의 대열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감당할 능력이 안됩니다.

 

설혹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사교육비를 퍼부을 여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일에 동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종일 아이들을 닦달하고 고문하는 일은 옳지도 않으며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 대한 생각이 이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적절한 수준의 교육만 받고 여유있게 노는 법도 배우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결국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싼 집값을 치르며,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지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어서 선택한 또 다른 길이 저에게는 호주로의 이민 이었습니다.

 

수직적 계급사회와 경직성

 

우리사회는 겉으로는 모두가 동등한 자유사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매우 수직적이며, 경직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연령에 따른 수직적 관계, 소득과 직업에 따른 계급의 경직성 등으로 상황에 맞게 유연한 대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불합리한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때로는 고령자의 불합리한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 불경죄가 됩니다. 상급자의 부적절한 일처리에 반대하는 것이 배제되고 왕따를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가 다수에 의하여 가혹한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모두가 한줄로 늘어서서 수직적 계급을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상위계급에 있는 사람의 잘못이 모두의 잘못이 되어 그릇된 결과를 낳습니다.

 

분명 직업에 귀천이 알게 모르게 존재합니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적은 소득으로 연명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편하고 쉬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소득도 높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풍토도 있습니다. 그러한 풍토는 사회의 경직성을 더욱 단단히 고착시킵니다.

 

이런 경직성과 계급적 사고는 대단히 큰 사회적 비용을 수반합니다. 회사의 임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실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직후 눈높이를 낮추어 말단사원의 직무에라도 일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체면 때문에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상관없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회사도 타사의 임원출신을 말단으로 근무시키려 하지는 않습니다.

 

조직의 인화를 해칠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작용하고 맙니다. 그래서 실직은 곧 파멸이라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취업과 채용이 이루어진다면 그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경직성이 국가의 역할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입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그러한 역할을 국가가 거의 감당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민을 하려고 마음먹은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 것입니다.

 

이민은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 일인가?

 

이민을 간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내나라를 떠나서 무슨 영화를 보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좋은 자연환경과 사회복지를 거론하며 부럽다고 합니다. 두가지 다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립니다.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과연 장미빛 미래를 꿈꾸며 가는 것일까요? 제 대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과의 정다운 교류가 있고, 익숙하고 정든 환경이 있는 데 그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당연히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할만큼 삶에 여유가 없어서 가는 것입니다.

 

좋은 자연환경과 사회복지 혜택도 매력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여유있고 넓은 자연속에 살아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평소에 부지런히 일하며 세금내고 어려움에 처할 때 국가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는 것도 한편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의 땅에서 적응하며 사는 데에는 각고의 인내와 고통이 수반되는 일일 것입니다.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겁니다.

 

결국 이민도 또 하나의 선택에 불과한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꼼꼼히 살펴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유리할 것인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상황이 이민을 가는 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 다음에는 가서 겪어내야할 여러가지 또 다른 어려움에 대한 각오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를 살펴야 합니다.

 

나는 다정한 지인들과의 교류를 손실하며 이민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잘 준비된 상태도 아닙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면 역시 장미빛 미래가 아닌 답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그 곳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근근히 연명하는 삶을 살아도 할 수 없다고 각오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미래에 내가 감당해야할 어려움이 그보다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미래를 암담하게 예측하도록 만든 대한민국을 또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되겠지요? 외국에 나가면 고국이 더욱 그리워지고 애국심이 생겨난다고 하더군요. 그리워도 참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고, 그동안 발전된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소중한 가치들을 상실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특히 서민대중의 미래가 점점 암담해지는 일은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멀리서나마 뿌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9년 4월 8일

 

비토세력.

 

by 비토세력 | 2009/04/08 16:41 | my stories | 트랙백 | 덧글(3)

이명박 졸개론과 막말에 욕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처음으로 실시된 국정감사가 별 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막말과 정치적 이해득실만 난무했던 국정감사였다. 국회도 행정부도 국민의 답답한 가슴에 천불만 더하게 만들었다. 막판에 있었던 이종걸 의원의 '이명박 졸개론'과 유인촌 장관의 욕설이 18대 국회 첫 국감을 상징하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질 낮은 국회의원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리하는 입법기관이다. 최소한의 자질을 갖춰야 함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국회의원들의 허무한 코메디를 자주 보게된다.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국회의원들이 주권자인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곤 한다.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비단 '이명박 졸개'라는 소리를 과감하게 내밷는 이종걸 의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지역구 현안사업에 올인하는 모습은 그럭저럭 자질론으로 비판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자신에게 공천을 준 정치적 보스에게 줄서서 잘보이려 처절히 노력하는 모습도 그러려니 하고 참을 만하다. 그러나 당연히 자신이 해야할 중요한 임무를 망각하고, 이익을 위한 정치공세를 퍼붓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니 국민이 가장 신뢰하지 않는 직업군중 국회의원이 단연 으뜸이 된 것이다. 게다가 어쩌면 그렇게 품위없는 막말을 쏟아 내는지 차마 눈뜨고 보아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허위 폭로와 삿대질에 고함에 호통이나 치는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래서 언론에 자신의 행태가 보도되면 나름 선전효과를 거뒀다고 자부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리저리 당적을 옮겨 다니며 철새행각을 벌이는 자들도 있다. 이 번에 문제를 일으킨 이종걸 의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지역 당협위원장 선거에서 열심히 지지를 호소하여 당선된 후 불과 10여시간만에 탈당을 감행한 전력이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조석변개를 하였는지 궁금한 일이다. 결국 탈당후 대통합 민주신당을 거친 후 지금의 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다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행정부의 국정에 대하여 감시해야 할 국정감사라 하지만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그냥 '이명박'이라 칭한 것도 그렇고, 국무위원들을 빗대어 '졸개'라 표현한 것도 과도하다. 아마도 그렇게 막말이라도 해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이 건 좀 과도할 뿐 아니라 선출해준 지역민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이 또한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충실한 행동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항상 질낮은 국회의원을 선출하고야 마는 우리 국민들이 더욱 더 통렬히 반성할 일은 아닐까? 결국 그 들을 선출해준 사람들이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자질조차 의심스러운 국회의원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주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질 낮은 국무위원

질이 낮기로는 국무위원들도 만만치 한다. 저질 질문에 더한 저질 답변으로 응수하는 모습이 참 잘어울린다. 의원들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 동문서답을 하기 일수고, 종종 어줍잖은 훈계까지 늘어놓는 경우도 보인다.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뿐 정작 중요한 사안은 어물쩡 넘어가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기 어렵다.

자신들은 아주 적절히 국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모든 잘못은 지난 정권의 무능 탓이라는 듯 전정권 흠집내기에 바쁘다. 자신들이 과거 맹렬히 비판하던 짓을 스스로 더 많이 저지르면서 모두 다 과거정권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분명히 스스로의 잘못에서 기인한 일들이 국민의 눈에 보이는 데 자신들은 모두 잘했다고 우긴다.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는 물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들도 무시한다.

이번에 유인촌 장관의 경우도 정말 목불인견이었다. 자신이 모시는 보스를 직함도 없이 '이명박'이라고 불러서 인지, 아니면 자신을 포함한 일단의 무리를 '졸개'라 칭해서 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에 대응하는 태도는 정말 안하무인이었다. 반말에 욕설까지 섞어서 마구 작렬시키는 그에게 과연 국무위원의 자리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태도야말로 자신을 믿고 기용해준 대통령의 체면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일이다. 그런 국무위원을 신뢰하고 계속 기용하는 대통령의 수준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 과연 그 것이 대통령에 대한 도리였을까? 또 대통령을 뽑아준 주권자들에 대한 도리였을까?

이런 사건으로 상징화된 국회와 행정부의 모습에 깊은 절망을 느끼는 것은 결국 주권자인 이나라의 국민이다. 그 들의 눈에 과연 국민은 어떤 존재인지 의구심이 든다. 그냥 바보같이 항상 속아서 대충 표를 주는 우스운 존재들일까? 스스로 돌아보아 자격이 안된다면 그 자리를 사양하거나 사퇴했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수립한 전통

한나라당은 지난 10년간 야당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정치권의 주류였다.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사안은 대부분 국회에서 통과될 수 없었다. 그 들에게 당시의 대통령 들은 국가원수도 행정수반도 아니었다. 그저 정치적으로 공격할 정적일 뿐이었다. 그 들의 그런 생각은 국민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다.

최병렬 씨가 한나라당의 대표로 있던 16대 국회에서 있었던 일화가 생각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데 당시 대통령을 그냥 '노무현'이라 반복적으로 칭하면서 욕하고 있더란다. 그 장면을 목격한 당시의 유시민 의원이 '최병렬이는 요즘 뭐하나?'하고 말하니 자신들의 대표이름을 함부러 부른다고 버럭하더라는 것이다. 참 우스운 일이다.

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회지도층이 술자리에서 건배를 할 때마다 '노시개'라고 외쳤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점쟎은 체면에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모여서 직접 당시의 대통령을 비하하는 연극까지 만들어 쌍욕을 섞어가며 공연한 일도 있었다. 결국 그렇게 노무현 때리기는 국민스포츠가 되었다.

지금도 역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아냥하는 여러가지 말들이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있다. 이런 저열한 일은 누가 시작했건 상관없이 이제 그만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정권에서 자신들이 그 일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그만하자고 주장할 자격조차 없다.

수구언론들이 연일 지난 정권을 비난하더니 지금은 정부를 감싸기에 바쁘다. 한나라당이나 그 지지자들 역시 당시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수준의 모욕을 감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인데 누구를 원망할 셈인지 궁금할 뿐이다.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욕하는 것을 유행시키면 야당이 정치적으로 이득을 본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주었는데 누가 나서서 말릴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이 참으로 묘한 전통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이종걸 의원이 '이명박 졸개'라 칭한 것은 혹시 한나라당의 과거 수법을 배워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미 노무현 욕하며 충분히 이익을 본 한나라당의 전략을 밴치마킹한 것은 아닐까? 거기에 장관이 버럭하고 싸질러 버린 것은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모두 국민의 책임이다

이제 이런 저열한 방식은 정말 그만 보고싶다. 하지만 지난 세월동안 실컷 당했던 자들에게 그런 일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그만하자고 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 묘한 전통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결자해지라 했다. 저질 국회의원들을 선출한 국민, 저질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정권을 뽑은 국민도 통절히 반성해야할 때이다.

저질 국회의원들을 사퇴시키고, 저질 국무위원들을 임명하는 정권에 응징을 가하는 것도 역시 국민의 몫일 수 밖에 없다. 그들끼리 나누는 저질스러운 행태를 이제는 국민이 나서서 응징해야 할 차례이다. 결국 투표 잘하라는 말이다. 아무나 자신의 집값을 올려줄 사람에게 투표하는 저질스러운 국민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저질스러운 국회와 행정부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이명박 정권도,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주인이 머슴들의 잘못된 행태를 방치한 것이 문제다. 그 들에게만 욕을 퍼부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모두 잘못 선출한 국민의 탓이다. 그들에게 사퇴하라고 소리를 질러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혜롭고 현명한 투표로만 해결될 가능성이 남아있는 일이다. 부디 주권자가 각성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그래도 이종걸 의원하고 유인촌 장관은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종걸 의원은 선출해준 지역민을 위해, 유인촌 장관은 임명해준 대통령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자리를 유지하고 앉아서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야 되겠는가? 국민의 책임이지만 그래도 당신들은 물러나야 할 것같다.

by 비토세력 | 2008/10/27 14:26 | 정치 | 트랙백(4) | 덧글(0)

부동산 대책에 대한 염려

 

이명박 정부가 6.11 그리고 8.21에 이어 또 다시 부동산 시장대책을 내놓을 모양이다. 이번 대책에 포함된 것은 투기지역 지정해제, 미분양 물량 사들이기, 건설사 보유토지의 매입, 공공택지 계약해지 등이다. 과연 꽁꽁 얼어붙은 시장이 이번 조치로 인하여 다시 움직일 것인지 효과가 의문이다. 또 이번 조치가 가져올 부작용도 우려스럽다.

투기지역 해제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그 동안 부동산 버블을 일으켰던 진원지였다. 그나마 투기적 가수효가 이제 막 사라지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갖은 수단을 다 써도 투기적 가수요를 잠재우지 못하다 마지막 카드를 사용하고서야 겨우 진정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수단은 바로 LTV(Loan To Value ratio)와 함께 DTI(Debt To Income)이었다.

LTV는 부동산 담보인정비율이다. 현재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이 부동산의 담보인정비율을 60%로 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특히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소재하는 부동산은 40%만 인정한다. 이 조치로 인하여 투기적 가수요가 상당히 억제된 것은 분명하다. 물론 내집마련을 위해서 대출을 받는 경우에도 어려움을 겪게되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매우 유효한 투기억제책이었다.

DTI는 대출자의 소득범위내 총부채 상환비율이다. 처음에는 투기지역내 6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살 경우 40%로 제한했다. 그러나 2007년부터는 모든 주택에 DTI를 적용하도록 확대시행 하였다. 말하자면 개인이 년간 대출원리금을 상환하는 데 소득의 40%이내의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신규대출을 취급할 때 DTI를 계산하여 그 한도내에서만 대출을 해준다.

백약이 무효일 것 같던 부동산 시장이 드디어 잠잠해지고 서서히 하향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세계적 금융위기가 엄습하며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침체일로를 걷고 있기도 하다. 사실 다른 나라들이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염려하는 시점에 그나마 한국이 견디고 있는 것은 이러한 규제의 영향도 크다.

그런데 지금 투기지역 지정을 해제하면 다시 부동산 담보비율이 40%에서 60%로 상향된다. 당장 시장이 침체된 상황이니 투기광풍이 다시 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도 과도한 가계부채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 모처럼 하향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켤 가능성도 있다. 자산의 버블붕괴로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예를 볼 때 지금은 버블을 걷어내야할 때인 데 현실에 대한 대응치고는 반대되는 처방으로 보인다.

향후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나면 한국의 부동산은 또 다시 한번의 버블과 뒤 이어 버블붕괴로 인한 금융위기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선은 다급하게 보이는 상황이라도 정책의 과잉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분양 주택의 환매조건부 매입

지난 수년간 한국의 건설사들은 부동산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투기적 과수요에 편승하여 마구잡이로 주택을 공급하였다. 비교적 안정적 수요가 보장되는 수도권에는 택지가 별로 공급될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요가 있을 것같지 않은 지방에 과도한 차입을 해서 주택을 지었다.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 서둘러 사업승인을 받느라 바빴다.

장기적 수요예측이나 철저한 사업성의 분석이 없이 마구잡이로 떼 돈을 벌려고 달려들었다. 정부의 규제정책이 효과를 나타내고 미국에서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문제가 발생하면서 점차 된서리를 맞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건설업자들의 과도한 욕심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그 들의 냉철하지 못한 사업계획과 사업성 분석의 허술함이 미분양 사태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주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조치는 철저히 반시장적 조치이다. 지금의 집권세력이 자주 들먹이는 좌파정책의 정수이다. 사기업이 자신들의 잘못된 사업을 추진하다 문제가 발생한 것을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은 반드시 도덕적 해이를 수반한다.

또 수 많은 국민의 세금부담을 결과적으로 늘리는 일이기도 하다. 어려움에 처한 서민들에게는 아무런 구제조치도 하지 않고 도덕적 해이를 염려하던 정권이 건설업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려 해서는 안될 일이다. 환매조건부라 하지만 해당 기업들이 언제 경영실적이 개선되고 다시 환매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수요가 없는 아파트를 결국 정부가 떠 안고 마는 결과이다.

미분양 아파트의 문제는 정부가 해결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건설업자가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고 반값에 분양을 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그 손해는 업자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고, 반값에도 팔리지 않는다면 거저라도 스스로 팔아서 해결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일이다. 건설회사를 구제해준다고 국내경기의 회복이 빨라질 가능성도 없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건설부문의 과잉투자는 언젠가 반드시 한번 붕괴를 경험하고 넘어갈 일이 아닌가? 너나없이 산간오지에라도 아파트만 지어서 분양하면 대박이라는 안일하고 대책없는 회사들을 살려서 무엇에 쓰겠는가? 그들이 적절히 퇴출되야 비로서 건실한 건설회사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집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답은 역시 내버려 두는 데 있다. (Let it be!)

건설사 보유토지의 매입과 공공택지 공급계약 해지

이미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건설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라면 그다지 쓸만한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엉터리 사업성 예측에 기반하여 매입한 택지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지금 건설사가 유동성의 위기를 맞지 않았다면 수요가 없는 엉뚱한 곳에 또 다시 고층 아파트를 지어서 미분양을 양산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역시 대부분은 건설사의 잘못된 경영의사결정에서 생겨난 문제이다. 그 것을 정부가 나서서 해소해줄 아무런 명분이 없다. 정부가 나서서 매입을 한다면 그 것은 국민의 부담으로 해결하는 것과 같다. 미분양 아파트 매입과 동일한 기준에서 도덕적 해이를 낳을 것이다. 쓸 데 없는 자산을 정부가 사들이는 결과다.

철저히 대상토지를 심사하여 집에 대한 수요가 충분한 지역이나 서민용 임대주택등의 용도에 맞는 경우로 한정해서 시행해야할 일이다. 아무도 살고 싶지 않아하는 장소에 택지를 조성하고 정부가 그 것을 사들여서 무엇에 쓰겠는가? 유용한 물건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잘못을 저지른 건설사가 안고 자폭하는 것이 옳다.

현재의 집권세력이 입버릇 처럼 떠들던 좌파정책을 특별한 변명도 없이 쉽게 뽑아드는 것은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정권에 반대하는 다수의 서민대중은 물론 정권과 한나라당을 철저히 지지하는 세력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의 그간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지도 않고 이렇게 반대되는 정책을 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효과는 미지수, 부작용은 상수

이번에 이명박 정권이 발표하는 대책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투기지역을 해제한다고 당장 주택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건설사들에게 특혜성 지원을 하더라도 그들이 다시 수익성있는 사업을 찾아서 고용과 투자를 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정권이 시장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재정만 쏟아붓고 효과를 못내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부작용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에 당장은 아니라도 점차 버블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서서히 잦아드는 버블을 유지하여 잠재적 부실을 안고 가야할 가능성도 높다. 경제주체들에게 더 이상은 도덕적 해이를 핑계로 인내하라고 요구할 명분이 없어진다. 각 주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여러부문에서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어진다.

특히 그동안 견실하게 유지돼 오던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국가신인도를 하락하게 만들고 더욱 극심한 위기론과 공포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 모처럼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혼동스러운 메시지를 던질 때가 아니다. 차라리 그동안 과도했던 버블을 정리하고 가는 인내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옳다.

효과는 미지수이고, 부작용은 피할 수 없는 상수이다. 이런 정책을 지금 쏟아붓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제 시장이 서서히 위기를 극복하고 내성을 키우는 데 정부의 역량을 쏟아야 한다. 차라리 서민가계에 재정을 지출하여 직접 지원하는 것이 훨씬 유용한 일이다.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정책이라도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있어야 하고 충분히 시중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처방으로 보인다.

by 비토세력 | 2008/10/21 15:34 | 경제 | 트랙백 | 덧글(0)

경제혼란, 변동성, 그리고 정책의 과잉

 

지구촌의 경제가 대혼란을 겪고 있다. 대공황을 지난 후 이렇게 엄청난 혼란을 겪은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자고 주장하던 신자유주가 세계경제의 흐름을 지배하던 것이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기관의 국유화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격변하는 경제환경은 경제주체들의 피로도를 높일 뿐 아니라 적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금융시장의 극심한 혼란

세계의 자본시장은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서로 뒤엉켜있다. 거대한 금융자본은 물론 헤지펀드들과 투기자본들까지 전세계를 돌아다닌다. 그래서 지금의 금융위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거의 없다. 극도로 폐쇄된 나라가 아니라면 혼란에 휩싸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러한 금융시스템의 동요는 미국을 진원지로 전세계에 강력한 폭풍이 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사태와 파생금융상품의 문제로 그 폭풍은 본격화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의 금융자본이 그동안 누려온 과도한 이윤추구의 자유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정부가 적절한 수준의 시장실패를 사전에 통제할 수단을 모두 놓아버린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맞물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금리정책이 뇌관에 불을 붙여버린 일대 사건이다.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경기는 과열을 염려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염려가 늘어갔고, 연준은 5%수준까지 금리를 점차 올렸다. 부시의 집권이후 경기의 침체기미가 나타날 때마다 급속히 금리를 인하하였다. 결국 1%까지 인하를 한 후에 멈췄다. 1%의 금리는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인상률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였다.

행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규제해체가 수 많은 파생금융상품과 금융자본들의 투기를 부추겼다. 또 낮은 금리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여 투기광풍을 만들었다. 이 때 연준의 앨런 그린스펀은 다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1%이던 연방금리는 5%에 육박하게 되었다. 단기간에 금리가 5배를 왔다갔다 한 것이다. 결국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들의 매물이 증가하며 집값은 곤두박질을 하고 말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화되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물론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하여 원자재의 가격이 폭등하고 세계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빠뜨린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자국의 쌍둥이 적자(무역수지+재정)를 해소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테지만 전세계가 심대한 악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전 세계는 한물에 쌓인 고기가 되어 극심한 고통을 함께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부침은 지구촌 전체를 함께 흔들고 있는 것이다.

변동성

경제정책의 중요한 덕목중 하나로 회자되는 것이 있다. 바로 경기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철학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경기가 과열되면 그 것을 식혀야 한다. 금리를 올리고, 지급준비율을 높여서 유동성을 흡수하며, 재정흑자를 늘려서 조절한다.

또 경기가 냉각되는 시기에는 금리를 인하하거나 지급준비율을 낮춰서 유동성을 공급한고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등의 정책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이런 모든 정책이 바로 과도한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의 급격한 과열도, 냉각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급격한 변동성은 피해야 하는 것일까? 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시장주체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급격히 경기가 과열되는 경우에는 곧 이어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뒤 따른다. 고물가는 소비를 위축시키고 투자과 고용을 위축시킨다. 과도한 변동성은 악순화의 고리를 만들기 십상이다. 반대로 경기급냉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한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게 마련이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기 마련이다. 높은 산을 오르거나 깊은 골을 내려갈 때는 모두가 힘들다.

그래서 항상 정책의 우선순위는 과도한 변동성을 막는 데 둘 수 밖에 없다. 물론 경쟁력이 있는 시장주체들에게는 과도한 변동성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자본력과 정보력 그리고 예지력이 있다면 변동성이 클수록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경쟁력을 지닌 경제주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변동성이 과도할수록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과도한 변동성이 경제주체들을 고통으로 몰고간 사례는 무수히 많다. 아니 지금 현재도 전세계가 이 고통의 와중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대공황이 그랬고, 오일쇼크가 그랬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그랬다. 지난 10여년 동안 엄청나게 상승한 집값이 여전히 우리경제에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변동성은 당연히 줄여야한다.

정책의 과잉

각국의 행정부가 종종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정책의 부재보다 정책의 과잉이다. 정책의 부재는 정책의 과잉에 비하여 그 파장이 크지않다. 그래서 잘못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정책과잉의 사례를 살펴보자.

개발독재의 시기에 한국은 강력한 수출드라이브와 노동탄압 정책을 구사하였다. 물론 그 것이 세계가 깜짝 놀랄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내수기반은 상대적 취약성을 면치 못하였다. 또 대외변수에의 취약성과 극심한 양극화 그리고 열악한 분배구조는 이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성장률이 좀 낮더라도 근원적 경제의 기반을 튼튼히 만들었어야 한다.

문민정부 시절 세계는 드디어 개방과 자유무역의 파고가 불어왔다. 김영삼 정권은 본격적으로 세계화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또 무리하게 일인당 국민소득 일만달러를 넘기려고 노력하였다. 일련의 시장자율 확대조치도 무리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외환위기를 맞았고 수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가계들이 파산을 피하 수 없었다. 이 때부터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 되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정부도 정책의 과잉을 자주 보여준 바가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 기업의 합병, 노동시장의 유연화, 카드의 남발과 부동산 규제의 급격한 폐지 등이 그 것이다. 외환위기를 신속히 벗어난 점은 인정받아 마땅한 일이나 그 과정에서 경제주체들의 고통은 너무도 컸다. 또 카드채의 문제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정책수단을 너무 많이 없애버린 것은 커다란 휴유증을 남겼다.

참여정부의 경우도 혁신도시의 건설이나 지방분권을 위한 정책들이 상당한 휴유증을 남겼다. 토지보상비로 풀려나간 과도한 유동성이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결국 지금 남아있는 미분양 아파트들은 그런 투기광풍의 잔재들이다. 집값을 잡기 위하여 정책을 숱하게 쏟아 냈지만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미국의 금융파생상품과 부동산 버블붕괴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의 문제는 바로 정책과잉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시장의 주체들이 각기 이기적 동기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본질을 간과하고 과도하게 규제를 풀어버린 휴유증이다. 또 금리를 가지고 경기를 마구 조절하려고 인상과 인하를 반복하며 시장을 흔들었던 휴유증도 심대한 것이다.

정책의 과잉은 뒤 이어 엄청난 변동성 확대를 낳고, 변동성의 확대는 곧 바로 대부분의 시장주체들에게 고통이 된다. 정책 당국자들이 더욱 신중한 고뇌를 아끼지 말아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경제를 운용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염려는 바로 이점이다. 정책의 과잉이 자주 목도된다.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외환시장에 대한 성급한 구두개입이 원화가치를 급속히 떨어뜨렸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직면하자 외환보유고를 풀어서 환율을 방어하려한 것도 그렇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일련의 조치들도 향후 일어날 후폭풍을 염려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바로 세계적 흐름과 보조를 맞추지 못할 것에 대한 염려이다. 지금 극단화된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한계에 도달하였다. 이미 은행의 국유화까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대통령의 입에서는 규제철폐의 의지가 흘러나온다. 모든 정책은 과유불급이다.

by 비토세력 | 2008/10/15 10:45 | 경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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